활동후기

중랑천, 생다진천, 여주 남한강에서는 시민들의 참여로
가꾸고 즐기는 프로그램과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한강애인들찾찾소 💗 한강조합은 '샐러드'다 (김경숙)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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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고, 찾아오는 소중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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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박평수 조합원님에게 지명을 받았는데, 두 분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20년 전 분당에서 고양시로 이사하면서 우연히 고양환경운동연합 회원이 되었는데 그때 운영위원장이셨던 박평수 위원장님을 처음 뵈었어요. 그때부터 시작된 인연이니 20년은 되었네요. 제가 당시 저희 아파트 단지의 부녀회장이 되면서 고양시와 고양자원봉사센터, 그리고 저희 아파트 사이에 MOU를 맺고 햇빛 21 환경봉사단을 만들었어요. 제가 사무국장으로 7년 정도 실무를 담당했는데 점차 입소문이 나서 청소년 회원이 300명이 넘었었죠. 청소년 단원들과 함께 장항습지와 성사천 정화 활동, 철새 먹이 주기 활동도 열심히 했고, 겨울에 눈이 오면 우리 동네 눈 치우기 같은 일도 했습니다. 제가 생태, 환경에 눈을 뜨게 되고 결국 숲해설가로 살게 된 것은 박평수 위원장님 영향이라고 해야겠죠. 




01. 당신의 이름에는 어떤 의미나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인데, ‘서울 경(京)’ 자에 ‘맑을 숙(淑)’ 자를 씁니다. ‘서울 경’ 자는 이름에 쓰이면 맑다, 크다, 빛나다‘라는 뜻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실은 중·고등학교 때 반에 꼭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어서 A, B, C 이런 식으로 불렸기 때문에, 제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 그래서인지 이름에 크게 의미를 두고 살아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02. 지금까지 당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저는 꽤 감성적인 편이고 글을 쓰거나 그림 그리는 것, 손으로 뭔가 만드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런 성향은 어머니에게서 온 것인데, 어머니는 시대적으로도 그렇고 형편상 그런 재능을 맘껏 펼쳐 보이지는 못하셨지만, 혼자서 조용조용 조각보 같은 것을 만드셨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집을 정리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가 혼자 바느질해서 만들어 모아두신 것들이 무척 많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놀라기도 했고,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제겐 여동생만 둘인데 동생들도 관련 전공을 한 것은 아닌데 오십에서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서 모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세 자매가 함께 전시회를 한번 열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두 동생에 비하면 제가 가장 실력이 떨어지지만요.

 



03.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요?

 

30년 넘게 전문 번역가로 살았고 아무래도 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1997년에 나온 책인데 150만 부 이상 팔려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죠. 어딜 가서도 제 소개를 할 때 그 책 얘기를 하면 대부분, “아, 저 그거 읽어봤어요.” 하시죠. 그리고 꼭 이어지는 말이 꽤 팔렸으니 인세 좀 받았겠다고 하시지만 당시 매절 계약으로 170만 원 정도를 받은 게 전부였으니 조금 아쉽긴 해요. 하지만 번역가로서 저를 알린 작품이니 고마운 마음이 더 큽니다. 

《화성남자 금성여자》는 남자는 화성에서 오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고 할 만큼 서로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관계에서 여러 문제가 생겨난다는 내용이에요. 서로가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지 상대방을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만들려고 애쓰면 문제가 생긴다는 거죠.




04. 번역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번역은 대학에 다닐 때 우연히 출판사에서 일하시는 분을 알게 되어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했어요. 그때는 지금과 같은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누가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 작가의 책을 서둘러 번역해서 먼저 출간하는 것이 관건이었죠. 그래서 책 한 권을 여러 부분으로 쪼개서 여러 명이 각각 번역해서 취합하기도 했어요. 번역자마다 문체가 다를 테니,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방식이었지만 누가 먼저 내느냐가 가장 중요했으니 가능했던 일이었죠. 그렇게 스무 살 때 시작한 번역을 약 35년 동안 했고 50여 권의 번역서를 냈습니다. 인생의 오랜 시간을 번역가로 살아온 셈이에요. 




05. 남의 책을 번역하다보면 자기 책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어요?

2024년 한강 조합 오픈채팅방에서 여름부터 ‘금요일 톡파원’으로 활동하면서 나무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맨 첫 글은 여름철에 요란하게 울어대는 매미에 관한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매주 한 꼭지씩 쓴 글이 책 한 권으로 묶고도 남을 만한 분량이 되었어요. 그래서 원고를 정리해 출판사 서너 곳에 제안했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당하고 지금은 조금 좌절한 상태예요. ㅎㅎ

그런데 책을 출간해 본 분들에게 “출판사 서너 곳에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고 이야기했더니, “출판사 100곳에는 뿌려야지 인플루언서도 아니면서 지금 무슨 건방진 소리를 하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더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자비출판을 해서라도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06.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다고 생각하는 시기는 언제인가요?

 

약 35년 동안 번역가로 살다가 고양시로 이사 오면서 자연 속에서 행복해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숲해설가 동무들을 만났고 2021년에 숲해설가 자격증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동료들과 힘을 합해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고 벌써 6년 차로 접어들었네요. 

제 인생은 55세 전후로 완전히 180도 바뀌었어요. 그전에는 집에 있는 걸 좋아했고 책상 앞에 붙어서 살았습니다. 번역이라는 일이 늘 마감에 쫓기는 일이잖아요. 처음 일을 맡을 때는 “단행본 한 권을 번역하는 데 두 달이면 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아요. 그러면 하루에 서너 장 정도 번역하면 충분하겠다고 계산하죠. 아주 어려운 학술서적을 번역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시작하면 집안일도 생기고 여러 일이 겹치면서 조금씩 일정이 밀려요.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하루에 스무 쪽씩 번역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식음을 전폐하고 집안일도 모두 내려놓은 채 번역에 매달려야 했어요. 번역 일 자체는 재미가 있고 보람도 있는 일이지만 그런 생활을 30년 동안 하다 보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러다 거짓말처럼 우연한 기회에 삶의 패턴이 정반대로 바뀌어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는 삶을 살게 됐는데, 그게 저를 너무 행복하게 하더라고요. 




07. 살아온 시간을 돌아봤을 때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계기나 사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분당에서 고양시로 이사해 숲해설가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 박평수 위원장님을 만났고 너무나 귀한 벗들, 숲동무들을 만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최근 5~6년 사이에 제 삶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책상 앞에 모니터 앞에 붙어 살았었는데 지금은 숲해설가로서 여러 단체에 속해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도란도반의 여러 사업과 프로그램의 서류 작업 때문에 컴퓨터를 붙잡고 살긴 합니다. ㅎㅎ 




08. 요즘 가장 기분 좋게 하거나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자연을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저를 가장 행복하게 해요. 특히 동료들과 어울려 생물들과 눈 맞춤하는 시간을 정말로 좋아합니다. 우리나라 26개 람사르 습지 중 짧은 기간에 19군데나 답사를 다녀왔으니 참 많이도 돌아다녔네요, 인터뷰를 하는 오늘도 오미화, 명정화, 김해숙 선생님과 아침 6시 30분에 만나 창릉천 모니터링을 했습니다. 

요즘 여러 환경교육과 단체 활동으로 바쁘게 지내면서도 늘 숲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갈증이 있어요. 머리가 복잡한 일이 있으면 “개명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정말 보물같은 곳이거든요. 최근에 다녀온 파주 삼릉도 참 좋더라고요. 숲속에서는 온갖 잡념이 싹 사라지고 몰입이 되는 느낌이에요.




09. 한강조합을 처음 알게 된 때와 계기는 무엇인가요?


한강조합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21년 고양지부 내에 도란도반이라는 생태공부모임이 만들어지면서였어요. 저희 모임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햇빛조합과 한강조합의 회원이 되는 것이 일종의 필요조건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저 역시 처음부터 한강 조합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가입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가입하고 보니 정말 좋은 분들이 모여 있었고 지금은 너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0. '한강조합'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여의도샛강생태공원을 지키기 위해 힘을 모으고 마음을 모았던 모습들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특히 힘든 상황에서 사람들이 함께 싸우는 모습이 제게 큰 울림을 줬습니다. 이렇게 즐거운 투쟁도 있을 수 있구나, 감동적이었어요. 저도 미래한강본부 앞 시위에 함께했었고, 당시 불렀던 노래들의 개사를 제안하기도 했었죠. 




11. 한강조합의 활동이나 교육 및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중랑천을 정말 멋지게 가꿔 놓은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중랑천 원앙 축제도 좋았고요. 그전에 한강조합에서 가꾼 꽃밭을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요. 당시는 잠자리나 나비를 쉽게 볼 수 있는 계절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중랑천에 가니 꽃이 피어 있어서 나비와 잠자리가 찾아와 있더라고요. 그때 “꽃이 피는 시기에 차이를 두면 곤충들이 계속 찾아올 수 있구나. 이렇게 꽃밭을 가꾸는 일이 정말 중요하구나”라는 것을 느꼈어요. 

부러워만 했지 아직 그런 모습을 고양에서 제대로 구현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공무원들과의 관계를 비롯해 여러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 관계자들과 부딪히고 설득해 내며 중랑천의 변화를 만들어낸 것 자체가 정말 놀라웠습니다.




12. 한강조합과 함께하면서 달라진 생각이나 생활의 변화가 있나요? 있다면 무엇인가요?

 

‘투쟁’에 관한 생각이 달라졌어요. 투쟁을 하더라도 사람들과 즐겁게 연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도 서울문산고속도로 반대운동을 꽤 열심히 했어요. 지금은 고속도로가 개통돼 저도 파주시 환경센터 에코온에 갈 때나 금촌에 갈 때 급하면 가끔 그 도로를 이용하고 있지만, 박평수 대표님은 아마 절대 그 도로를 이용하지 않으실 거예요.

저는 행신 나들목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출근 시간에 피켓을 목에 걸고 아마 열 번쯤 1인 시위를 했어요. 결국 서울문산고속도로는 개통됐지만, 당시 설계대로라면 행신 지역 주민들이 원래 다니던 길을 우회해 통행료까지 내면서 방화대교를 이용해야 했어요. 저희 활동을 통해 그것을 막아냈고, 그 점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예전에는 어떤 사업이나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운동이나 투쟁을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50번의 행동이 필요하다면 ‘그중 다섯 번은 참여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제 몫을 했던 거죠. 그런데 한강조합 사람들은 운동을 정말 즐겁게 하더라고요. 계속 ‘환대의 밥상’을 차리면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즐겁게 운동하는 사람들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13. 아직 한강조합을 모르는 분들에게 한강조합을 소개한다면 어떻게 말씀하시겠어요?


한강조합은 강이 제대로 흐를 수 있도록 강을 가꾸고, 사람들이 강에서 다양한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일을 더 새롭고 재미있게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아 함께 웃으며 나아갈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14. 한강조합은 강생태를 가꾸고, 강문화를 일궈서, 세상을 풍요롭게, 시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비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강조합이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기를 바라시나요?

 

더 많은 지역을 연결하고, 한강조합의 가치를 여러 지역이 함께 공감할 수 있도록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지금 고양파주지부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여의도 샛강이나 중랑천, 경기 남부에 활동이 집중돼 있었다면 앞으로는 경기 북부, 특히 고양·파주 지역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면 좋겠습니다. 여러 지역을 폭넓게 아우르면서 한강조합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15. 고양파주지부가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까요?


파주와 고양은 정말 같은 생활권이에요. 제가 에코온 강사로 활동하면서 그 점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고 특히 GTX가 생기면서 그 연결성이 더욱 커졌고요. 일산이 비교적 나이 들어가는 도시라면, 파주는 젊고 계속 확장해 가는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두 지역이 함께 힘을 합하면 서로의 장점을 살려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고양은 고양이고 파주는 파주라고 나누기보다 같은 생활권이라는 관점에서 활동 영역을 넓혀 함께 좋은 일을 도모하면 좋겠습니다.  




16. 앞으로 한강조합 또는 고양파주지부와 함께하고 싶은 활동이 있나요?


우선 강과 관련된 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특히 공릉천은 양주에서 시작해 고양을 거쳐 파주로 흐르고, 한강으로 이어지는 강이잖아요. 그동안 고양 지역의 공릉천에만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면, 지금은 파주의 금촌천에서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역은 나뉘어 있어도 결국 하나로 이어지는 강이고 하천이니까요. 고양과 파주의 경계에 있는 지영교는 저희에게 ‘탐조 맛집’이기도 합니다. 정말 많은 새가 찾아오는 곳이거든요. 다만 아쉬운 점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주민들과 함께 지역 문제와 환경과 생명을 이야기하고, 아이들과 새를 만나고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17. 30년 뒤에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지?”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찡해져요. 그러면서 저희 아이들은 나를 어떤 엄마로 기억할지 생각해 봅니다. 돌아가신 엄마처럼 제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푼 엄마로 기억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아이들에게 친구 같은 엄마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고민이 생겼을 때 엄마를 가장 먼저 생각하고, “엄마에게 이야기해 봐야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제 바람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은 것 같으니 다행이지요.

함께 활동해 온 동료들에게는 부드럽고 열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제가 싫은 소리를 잘 못하고 우유부단한 면이 있어서 어떤 단체를 이끌기에 적합한 사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훌륭한 동료들이 있어서 서로 채워주고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잘 해오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저를 아는 사람들에게 생각이 닫혀 있지 않고, 부드럽고 유연한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18.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자신에게 한 마디를 건넨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지금 네가 알고 있고,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 있어”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저는 한동안 어떤 틀에 갇혀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더욱 고맙습니다. 만약 제가 직업과 인생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요.

조금 더 일찍 이런 길을 걸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것이잖아요. 그전에는 어떤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책을 읽고 번역하며 가족만 알고 살던 사람이었다면 그런데 지금은 네다섯 개 정도의 단체에 소속돼 활동하고 있습니다.

좋은 동료들을 만나 같은 곳을 바라보며 즐거운 일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지 몰라요. 제 나이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인데 이 나이에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을 새롭게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말예요. 그러면서 기존의 인간관계를 더러 정리하기도 했어요. 의례적으로 이어오던 관계는 조금씩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19. 새롭게 만들어진 고양파주지부 오픈채팅방에서 어떤 이야기와 정보가 공유되면 좋을까요?


한강조합 오픈채팅방을 보면서 가장 부러웠던 점은 정말 다양하고 풍성한 콘텐츠가 있다는 것이었어요. 여러 활동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다양한 소모임이 활발하게 돌아가기도 하잖아요. “이런 활동을 하니 함께하실 분을 기다립니다”, “환대의 밥상이 준비돼 있습니다”라고 사람들을 초대하기도 하고요.

고양파주지부 오픈채팅방에도 우선 그런 콘텐츠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한 것도 좋고 한강조합처럼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이 최소 네다섯 개 정도는 꾸준히 운영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활동을 바탕으로 정보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가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 한강조합의 조합원이나 후원회원들이 서로 더 가까워지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결국 많이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활동 장소가 너무 멀다 보니 행사에 한 번 참여하려면 정말 큰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도란도반 선생님들에게 함께 가자고 권하려면 여러 번 설득해야 하고요.

구성원들이 서로 더 가까워지려면 각 지역에서 부담 없이 자주 만날 수 있는 활동과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1. 김경숙님에게 한강조합은 __이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강조합은 저에게 ‘샐러드’입니다.

한강조합에 있는 분들은 한 분 한 분이 모두 귀하고 소중한 사람들이잖아요. 샐러드에 들어가는 삶은 달걀이나 양상추나 방울토마토는 하나하나 모두 소중한 재료들이긴 하지만 혼자 놓여 있을 때보다, 커다란 접시 위에 알록달록 함께 담기면 정말 더없이 멋진 음식이 됩니다. 그런 것처럼 저마다 멋진 개개인이 모여 하나의 멋진 조직, 하나의 ‘우리’를 이룬 곳이 한강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22. 다음 '찾찾소'에서 만나면 좋을 분을 추천해 주세요.


개인적으로 아주 잘 아는 분은 아니지만, 다음 인터뷰이로 박경만님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행신동에 ‘배다골 테마파크’라는 곳이 있어요. 지금은 창릉신도시가 들어서게 되었는데, 그곳에 두꺼비가 찾아오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연못 주변의 땅 주인은 할머니셨어요. 사람들이 두꺼비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자꾸 찾아와 들여다보니, 토지가 어떤 규제에 묶여 재산권을 행사하기 어려워질까 봐 저희를 무척 싫어하셨죠. 연못이 아주 큰 곳은 아니어서 당시에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트러스트 방식으로 지켜보자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박경만님은 그 무렵 처음 알게 된 분인데, 벌써 20년 정도 된 것 같네요. 당시에는 한겨레신문 기자로 일하셨습니다. 

2024년에는 도란도반이 고양시의 일곱 개 도시숲 모니터링에서 식물 분야를 맡았었는데, 그분은 탐조 분야를 맡아 함께하셨어요. 일곱 개 도시숲을 각각 두세 차례씩 방문했으니 모두 합하면 스무 번 가까이 되네요. 그분과 도란도반 선생님들이 함께 여러 현장을 다녔어요. 지금은 고양신문의 발행인이신데 무척 소탈하고 재미있는 분이세요. 그래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