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 99_한강에서의 시적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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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coophangang 등록일21-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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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99
한강에서의 시적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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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선생님들께,

때늦은 장마가 시작되던 지난 토요일 저녁에 나희덕 시인이 샛강숲을 찾았습니다인문의 숲 샛숲학교에서 그의 새 책 <예술의 주름들북 콘서트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예술이 주름들>은 시와 예술 사이에 작은 길 하나’ 내는 마음으로 쓰신 책이라고 하네요.

오후 들어 자작자작 내리던 비는 저녁 들어 제법 빗줄기가 굵어졌어요우산을 받치고 손가방과 선물가방까지 들고 온 시인의 머리칼과 얇은 블라우스 가장자리는 젖어 있었습니다그리고 굽이 낮은 구두는 온통 축축하게 젖었습니다.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우리는 모두 매료되었습니다일상에서 시와 시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들을 길어내며 찬찬히 그리고 뜨겁게 인생을 살아가시는 시인의 이야기는 감동이었습니다어둑한 밤 집으로 돌아가는 모든 분들이 가슴에 환한 등불을 켠 것처럼 행복했어요
#한강에서의 시적인 것들

황지우 시인의 시를 인용하며 나희덕 시인은 시적인 것들이 뭔지 설명해주었습니다시적인 것은 무엇인가어디에 있는가시 안에시 바깥에 있는가우리는 어떻게 시적인 것을 찾고 시로 쓸 것인가… 시인은 시의 소재가 되는 시적인 것들은 어디에나 있고 그것은 그저 아름답거나 서정적인 것만은 아니며 비루한 현실에서도 존재하는 것들이라고 했습니다시인은 그걸 포착하고 시적 언어로 바꾸는 사람이겠지요.

시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저는 문득문득 제 주변의 시적인 것들에 대해 생각하곤 했습니다저의 일상에서 제가 보고 느끼고 그로 인하여 기쁨과 슬픔 같은 감정이 생기는 것들에 대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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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김민규님


한강에서 일하다 보면 참으로 많은 존재들을 마주치고 만납니다그 존재들은 물론 사람도 있고 꽃과 풀과 나무새와 곤충과 거북이 같은 것들도 있습니다그리고 생각해보면 그 존재들이 시적인 것들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얼마 전에는 동강에서 모니터링을 꾸준히 하시는 김민규 선생님이 단톡방에 공유해준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어미 비오리가 무려 21마리의 아가들을 데리고 강물 위에서 헤엄치는 모습이었어요그 사진을 보는 순간 울컥한 마음에 눈을 떼지 못했어요.

비오리 엄마는 스물 한 마리의 아가들을 데리고 당당하게 헤엄치고 있었습니다다른 사진에서는 아가 몇몇이 아예 엄마의 어깻죽지에 올라타 물 위를 떠내려가고 있기도 했고요.

이 엄마는 참 다복하구나아가가 스물 한 마리라니!”

나중에 김민규 선생님의 추측을 전해 들었습니다저 아가들은 한 엄마의 아가들이 아니라 자기 새끼들과 다른 엄마의 새끼들까지 거두어 돌보고 있는 것 같다고다른 비오리 엄마는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으나 제 새끼들을 돌볼 수 없는 처지라는 것.

이 이야기를 듣고 나자비오리 새끼들 스물 한 마리와 엄마 비오리는 제 마음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어요내 아가나 남의 아가나 할 것 없이 같이 품어 키우는 엄마그 위대함에 뭉클했습니다근래 한강에서 만난 가장 시적인 것이었지요

샛강에서도 수시로 시적인 것들을 만납니다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나무와 나무아침저녁으로 물가에서 깃을 다듬으며 목욕하는 직박구리순식간에 환하게 피어난 분홍 백일홍버림받은 토끼와 흙의 냄새를 한껏 맡는 거북이

자연에 반해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시적인 것들은 실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무심히 버리는 쓰레기와 오물재미삼아 물고기를 작대기로 내리치던 사내노상방뇨 하고는 적발되자 자신은 교양이 있는 고급 아파트 주민이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하는 사람… 그렇기에 많은 시인들은 사람보다는 자연을 더 오래 지켜보고 시어를 골라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사람들이 만들어낸 감동적인 것도 있었습니다저희가 수달 서식지 보호를 위한 모금을 했는데 그리 입소문을 내지 않았는데도 목표였던 500만원이 달성되었습니다.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마음을 보태 만들어준 돈이었어요주위를 돌아보고 마음을 보태는 일그것이 또한 시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난 토요일 시인은 젖은 구두를 신고 몇 시간이나 샛강에 머물다 가셨습니다괜찮으신지 걱정하자 시인은 구두는 아직도 축축하지만… 좋은 분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와서 마음은 뽀송뽀송하다고 말씀해주시네요.

이제 시작된 장마가 얼마나 많은 비를 뿌릴지 모르겠습니다습하고 축축한 날들이 있겠지요그러나 일상에서 시적인 것들과 예술적인 것들을 끝없이 발견하고 향유하면서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마음만은 잘 마른 빨래처럼 뽀송뽀송 하시길 기원합니다.

나희덕 시인의 시를 한 편 나누며 편지 마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2021.07.06.
시적인 것들이 머무는 샛강 숲에서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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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저녁이 있다. 
                                      나희덕 / 시인
저물 무렵
무심히 어른거리는 개천의 물무늬며
하늘 한구석 뒤엉킨
하루살이 떼의 마지막 혼돈이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바라보려 한다.

뜨거웠던 대지가 몸을 식히는 소리며
바람이 푸른 빛으로 지나가는 소리며
둑방의 꽃들이
차마 입을 다무는 소리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들으려 한다.

어둠이 빛을 지우며 내게로 오는 동안
나무의 나이테를
내 속에도 둥글게 새겨넣으며
가만 가만히 거기 서 있으려 한다.

내 몸을 빠져나가지 못한 어둠 하나
옹이로 박힐 때까지
예전의 그 길이제 끊어져
무성해진 수풀 더미 앞에 하냥 서 있고 싶은
그런 저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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