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습지에서의 세 번째 봄
오늘 5월 21일, 장항습지는 한국에서 24번째로 람사르 사이트로 등록되었습니다. 한강조합이 장항습지에서 맞는 세번째 봄에 생긴 큰 경사입니다.
람사르 협약은 ‘특히 물새 서식지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으로 습지 보전과 현명한 이용에 대한 최초의 국제 협약입니다. 1975년 이란의 람사르에서 채택되었고, 우리나라는 1997년에 가입했지요. 한강하구 장항습지를 람사르 습지로 등록하기 위해 고양시와 환경부가 노력해왔고, 장항습지를 아끼는 한강조합을 비롯한 시민들의 노력도 적지 않았습니다.
한강조합은 올 봄에도 장항습지 보전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무논에 물을 대며 새들이 잘 지낼 수 있도록 보살피고 쓰레기를 걷어내는 일을 줄기차게 하고 있습니다.
#장항습지에서의 세 번째 겨울
장항습지에서의 세 번째 겨울, 매일같이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에 장항습지로 향했습니다. 월동하는 재두루미 수를 헤아려보며 밤새 잠은 잘 잤는지 살폈습니다. 오랫동안 장항습지에 들어와 살면서 고라니들을 물어뜯곤 하던 들개도 잡아 데리고 나왔습니다. 야생화된 유기견이었는데, 그에 대한 연민의 마음도 컸지만 습지에서 거친 포식자로 살게 둘 수는 없었습니다.
#장항습지에서의 두 번째 봄
가시박의 기세는 대단했습니다. 5월 초순 정도에는 나물처럼 부드러운 떡잎을 내밀며 나오는 가시박이지만, 하루가 다르게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합니다. 드넓은 장항습지에서 주인 노릇을 해온 버드나무들도 가시박의 기세에 어쩔 줄을 모릅니다.
저희는 봄에서 여름까지, 또 여름에서 초가을까지 끝없이 일을 했습니다. 더 이상 맨손으로 치워내기 어려운 가시박 덩굴을 낫을 들고 걷어 냈습니다. 하늘 높이 치솟은 가시박 덩굴 앞에 낫을 들고 선 사람을 보며 다윗과 골리앗 같다는 생각마저 했습니다.
여름에 홍수가 크게 나서 한강이 범람했습니다. 그러자 한강하구 장항습지에 떠밀려온 쓰레기도 엄청났어요. 작년에 한강조합이 장항습지에서 걷어낸 쓰레기만도 40톤입니다. 쓰레기는 꾸역꾸역 장항습지로 모여듭니다. 물골에, 갈대 사이에, 강가에… 여기저기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쓰레기들을 치워내야 그 자리에 말똥게가, 고라니와 삵이, 큰기러기와 재두루미가, 버드나무와 갈대와 숨을 편히 쉬고 살 수 있습니다.
#장항습지에서의 두 번째 겨울
포럼을 열었습니다. 장항습지를 아끼는 모든 시민들과 단체들, 고양시와 전문가를 초대했습니다. 한강조합은 1주일에 한 번씩 포럼 개최를 위해 멀리 일산 주엽동을 오갔습니다. 서울에 사는 직원들은 포럼을 마치고 귀가하면 몹시 늦은 밤이 되었지만, 포럼에서의 열띤 토론과 참여, 새로운 계획들에 고무되어 피로를 잊었습니다.
습지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 장항습지의 가치 홍보, 시민들이 함께 가꾸고 돌보는 장항습지, 교육과 모니터링… 무수한 이야기들 중에 장항습지를 반드시 람사르 습지로 등록하자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물새 서식지로서 중요한 습지여야 하기에, 물새들이 살기 좋은 장항습지, 종 다양성이 있는 장항습지를 위해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장항습지에서의 첫 번째 봄
봄이 왔지만 장항습지에는 봄이 오지 않은 겨울의 땅으로 보였습니다. 가시박 죽은 덩굴이 뒤덮은 겨울의 황량한 풍경이 그 곳을 쓸쓸하고 생기없는 곳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바로 우리가 선 자리부터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었어도 끈질기게 버드나무에 감겨 있던 덩굴들, 우리들은 그 덩굴들을 걷어내며 봄을 애타게 불렀습니다. 그러자 봄이 왔습니다. 버드나무 부드러운 줄기에 물이 오르며 초록 빛이 장항습지를 눈부시게 덮었습니다.
#장항습지에서의 첫 번째 겨울
군부대가 철수하고 한동안 출입이 뜸하던 그 곳, 눈이 몇 차례 내려 땅은 질척이고 바람은 맵던 2019년 1월 겨울이었습니다. 우리는 보았습니다. 낯선 행성에서나 볼 법한 황량한 풍경을. 죽은 덩굴이 나무들을 덮어, 흐릿한 잿빛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음산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우리가 하자. 그 때, 장항습지에서의 첫 번째 겨울에 우리가 먹은 마음입니다.
오늘 2021년 5월 21일, 람사르 사이트로 지정된 장항습지를 위해 애써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와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아울러 한강하구 장항습지에 사는 모든 동물과 나무들에게도 고마운 마음, 축하의 마음을 전합니다.
2021. 05.21
비에 젖어 더욱 푸른 샛강 숲에서
한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