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함께 살았습니다.
그와 나, 우리는 함께 살았습니다. 두 번의 겨울, 두 번의 여름을,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찬 비가 내리던 어느 2월에 우리는 만났습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보았습니다. 서로의 허기와 외로움을.
우리에게도 한 때 가족이 있었습니다. 먹여주고 어루만져주고 돌봐주는 손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내 가족은 나를 차에 태우고 한참 집에서 먼 곳으로 갔습니다. 내 가족이 나를 내려준 곳이 이 곳입니다. 내 가족은 나를 돌아보지 않고 바로 차를 출발시켰습니다.
뭐가 잘못되었을까... 자책과 두려움으로 꼬박 하루를 차를 내린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가족은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습니다. 나를 가족으로 들였던 그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원망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비록 나를 버렸지만, 나는 그들을 그리움으로 회상합니다.
우리 잘못이 아니야…
역시 버림받은 그가 내게 말했습니다. 그 말에 나는 한참 울었습니다. 그는 울고 있는 나를 두고 멀리 허공을 바라보며 내가 울음을 그치기를 기다렸습니다. 울음이 잦아들고 나자 그가 나의 얼굴을, 목을 핥아주었습니다.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마치 다치기 쉬운 존재를 다루는 것처럼 그는 나를 정성스레 핥아주었습니다. 따스한 혀가 나에게 닿을 때 내 눈에서는 소리 없는 눈물이 다시 흘렀습니다. 내 눈물은 그의 혀에까지 닿았습니다.
우리는 함께 살았고 온기를 나누었지만 허기를 채울 수는 없었습니다. 목숨 있는 것들에게 끝없이 천형처럼 찾아오는 허기. 어느 날 나는 그를 두고 혼자 나섰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사는 장항습지에 찾아와서 먹을 것을 갖다 두는 사람을 보아두었으니까요.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다 먹어치우고 나서야 그에게 미안했습니다. 허기는 공평한데, 먹이는 혼자 먹었으니까요. 놓인 음식을 다 먹고 나자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는 사람이 만들어둔 덫, 포획틀에 갇혀 있었습니다. 문은 닫혔고 나는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두려움이 일었으나, 이내 체념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 포획틀이 나를 어딘가로 데려다 주었으면… 더 이상 허기와 추위와 싸워도 되지 않는 그런 곳으로. 내 가족이 있던 삶으로 나를 다시 데려다 주었으면…
정오의 해가 기울어 오후가 되도록 사람은 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가 나를 찾아냈습니다. 그는 고라니의 흔적을 쫓아 아침 일찍부터 멀리 나갔던 차였습니다. 쇠창살 안의 나와 밖의 그가 눈이 마주쳤습니다. 원망의 눈빛은 없었습니다. 그는 대체 무슨 일이냐고 눈으로 나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그는 내 옆에 놓인 텅 빈 밥그릇을 보았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한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서둘러 우리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는 우리에 갇힌 나를 보았고 이내 밖에서 나를 지키고 있던 내 남편을 보았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내 남편에게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남편은 아무런 경계도 없이 그를 맞았습니다. 그의 손길에 머리를 맡기고 그의 다정한 말을 조용히 들었습니다.
남자는 내가 갇힌 포획틀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옆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나의 얼굴을 핥아주었습니다. 잠시 물러가 있던 남자는 물을 담은 그릇을 가져왔습니다. 나는 물을 마셨습니다. 마치 영혼 깊숙이 목이 말라 있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