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와 샛강숲
“1천년 만의 대홍수”를 불러온 서유럽 폭우는 전후 서구 선진국을 떠받쳐온 견고한 시스템을 거대한 흙탕물과 함께 일거에 쓸어갔다. 최악을 가정해 만든 각종 재난 재해 안전 기준, 이를 바탕으로 설계된 대응 체계와 시설은 현실로 다가온 기후변화 앞에 ‘20세기 낡은 시스템’으로 전락했다. (한겨레신문 2021.07.19 기사 부분 인용)
한강 선생님들께,
소나기에 대해 쓰려는 순간 하늘에 구름이 빠르게 몰려오더니 거센 소나기가 몰아칩니다. 굵은 빗줄기에 나무들은 온몸을 떨며 파동을 만들고 숲이 수런거립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에도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어요. 거친 바람이 더해서 나무들은 시련을 겪는 것만 같았죠. 더위에 지쳐 느릿느릿 거리를 걷던 사람들이 비를 피해 샛강센터로 들어왔어요. 마치 비 오는 날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여드는 제비들 같았죠.
요즘 세계 기후위기는 한겨레신문 표현을 빌리면 ‘물불 안 가린 이상기후’로 인류의 생존문제가 되었습니다.
독일에서는 24시간 동안 100~150 mm 폭우와 홍수로 사망자가 200명에 육박했습니다. 미국 라스베가스는 최고 47.2도, 데스밸리는 최고 54.4도를 보였고 폭염과 산불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중국 쓰촨성에서는 시간당 200mm 이상의 폭우와 홍수로 72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폭염과 이른 열대야가 우리를 힘겹게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지난 해부터 아르코 공공예술사업으로 기후위기 앞에 실천하는 <기후시민 3.5>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결과 많은 기후시민을 만들었다고 자부했어요. 탄소발자국을 줄이고 플라스틱을 줄이고 채식을 하며 기후실천을 하는 사람들을 만들어왔죠. 또한 나무도 심고 생태계보호를 위한 활동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기후재난 소식이 여전히 믿기지 않고 놀랍기만 합니다.
이미 기후재앙이 도래했는데 한가롭게 나무 한 그루 심고, 강물에 떠내려온 쓰레기를 줍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에어컨은 가급적 덜 켜고 가까운 거리는 땀이 배도록 걸어 다니는 것이 기후 위기를 줄이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막연하기도 하고요. 이미 인류의 타이타닉 호는 기울고 있는 걸까요.
미국에서, 독일에서, 중국에서, 일본에서, 기후 재앙이 발생할 때 우리는 가까이 아는 지인이 있기라도 하면 염려하고 안전한지 소식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오래 전 여행을 갔다가 친해진 누군가일 수도 있고, 이민이나 유학을 가서 살고 있는 친척일 수도 있고, 사업 파트너로 알던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저 그들이 별 일 없기를, 무사히 살아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지구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이 다들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건 인지상정이겠지요. 기후재앙을 겪는 그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해줄 수도 있고, 성금을 보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희는 여기 샛강에서 나무 한 그루라도 더 심고 숲을 가꾸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것이 지구 저편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우리의 마음이고 기도입니다.
지금 이 순간 소나기가 감쪽같이 그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