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성 B612호의 어린 왕자
소행성 B612호에 사는 어린 왕자에게는 약간 심술궂은 허영심은 있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꽃이 있었습니다. 그 꽃은 장미였어요. 어린 왕자의 장미는 신선한 물을 좋아하고 바람은 싫어했어요.
한강별 Y048호에 사는 아재 왕자에게는 한여름 무더위를 견디며 선홍빛으로 피어나는 꽃이 있었습니다. 그 꽃은 백일홍이었어요. 아재 왕자의 백일홍은 시원한 물을 좋아하고 심술궂은 햇빛은 싫어했어요.
소행성 B612호에 살던 어린 왕자는 지구별에 놀러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미꽃이 만발한 정원을 보게 되었어요. 그 곳에는 B612호에 살던 꽃과 똑같은 꽃이 오천 송이나 피어 있었습니다. 어린 왕자는 자기 꽃이 지극히 평범했다는 걸 알고 속상해서 울었습니다.
한강별 Y048호에 사는 아재 왕자는 꽃을 두고 주말 내내 여강 도리섬과 일산을 다녀왔습니다. 도리섬 ‘강변 놀자’ 준비와 일산에서 장항습지 다친 분을 만나 위로하느라 그는 Y048호에 남겨두고 온 꽃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주말 지나고 월요일 아침 한강별 Y048호에 출근한 아재 왕자는 가방을 부릴 틈도 없이 허둥댔습니다. 주말 내내 심술궂은 해에게 시달린 그의 꽃들이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팔을 축 늘어뜨린 아이처럼 줄기와 잎은 땅에 닿을 듯이 쳐졌고 강렬한 빨강도 빛을 잃어 창백했습니다.
아재 왕자는 물조리개를 들고 물을 찰찰 흘리면서 뛰어다녔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꽃을 살리고 싶었으니까요. 놀랍게도 백일홍들은 신선한 물을 받아먹고 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듯이 하나 둘 생기를 찾았습니다.
소행성 B612호의 어린 왕자는 호랑이도 무섭지 않다는 등 허풍을 떠는 자기 꽃이 싫어졌습니다. 바람을 막아라, 신선한 물을 어서 가져와라… 까다롭게 요구하는 공주 같은 행동도 얄미웠습니다. 그래서 꽃에게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후회했지요. “그 꽃은 내게 향기를 뿜어주고 마음도 환하게 해주었어.” 하는 말로 그리워합니다.
한강별 Y048호의 아재 왕자는 주말 내내 꽃을 돌보지 못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아재 왕자의 백일홍은 잘난 척하지도 않고 원하는 것도 내세우지 않는 수수한 꽃들입니다. 아재 왕자에게는 오직 그의 돌봄만을 기다리는 백일홍이 전부였습니다. 아재 왕자의 백일홍은 거대한 우주에서, 그 안의 지구라는 행성에서, 또 그 안의 한강별 Y048호에서 그와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경이로운 존재이니까요.
“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은 네가 네 장미꽃을 위해서 들인 시간 때문이야.” (생택쥐페리 <어린 왕자> p105 문학동네)
*한강별 Y048호는 ‘영등포구 여의동로 48 여의샛강생태공원’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