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의 마음
먼저 노을이 있습니다. 정희가 처음 한강조합에 면접보러 온 날 해가 지며 노을빛이 서쪽 하늘에 번져 있었습니다. 설레고 약간 떨리기도 한 마음을 누르며 정희는 노을이 번진 하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넉넉히 일찍 도착해서 샛강생태공원으로 들어서 오솔길을 걸었습니다.
한여름의 매미 소리, 풀벌레 소리, 드문드문 들리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정희는 걸음을 멈추고 참느릅나무를 올려다보았습니다. 팔을 뻗어 나무의 거친 듯한 수피도 만져보았습니다. 너 참 아름답구나. 정희는 중얼거리며 나무의 숨결에 귀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시계를 보았습니다. 아직도 면접 30분 전. 정희는 물가로 조금 더 걸음을 옮겨봅니다.
연못에서 혼자 물 속을 뒤적이던 왜가리 한 마리가 보였습니다. 안녕 왜가리. 오늘 정희는 어쩐지 샛강에 있는 누구에게나 말을 걸고 인사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왜가리가 무심한 듯 고개를 들어 돌렸습니다. 그리고 이내 날개짓을 해서 날아갑니다. 정희는 어쩐지 앞으로 매일 샛강을 보게 될 것 같은 예감에 행복해집니다.
다음으로는 버드나무 교실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참느릅나무와 왜가리와 인사를 나누어서 그랬을까요. 정희는 한강에 입사를 하게 되고 이제 매일같이 샛강에 옵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버드나무 교실에서 그녀의 딸보다도 어린 청소년들을 만났습니다.
여전히 날은 무덥지만 버드나무 교실에 온 아이들은 장화를 신고 작업 모자를 눌러 쓰고 팔 토시를 한 채 그들 키만한 풀들과 싸웁니다. 머뭇대지 않고, 꾀도 부리지 않고 구슬땀을 흘립니다. 정희는 아이들과 오솔길에 주저 앉아 땀을 식힙니다. 어디서 왔는지, 몇 살인지, 앞으로 뭘 공부하고 장차 뭘 하고 싶은지 서로 이야기도 나눕니다. 어제는 교육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고3 아이가 생태계 다양성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줍니다. 정희는 어린 학생들에게서도 배우는 것이 있으니 참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샛강에서 일을 시작한지 열흘 남짓 되었습니다. 정희는 벌써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듯 많은 것들이 친숙하고 마음이 편합니다. 한강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과 기대를 잘 충족시킬 수 있을까 더러 어깨가 무겁긴 하지만, 담담히 하나하나 해나가보려고 마음을 먹습니다. 그런 정희에게 든든한 친구가 있습니다. 바로 선영.
선영을 한강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오래 전 동료를 다시 새로운 직장에서 동료로 만나다니… 선영은 새로 온 정희를 위해 많은 것들을 말해주고, 세심히 챙겨주곤 합니다. 같이 도시락도 나누어 먹고 일에 대해서도 상의를 하지요. 종종 퇴근도 같이 합니다.
수달 언니들을 만나고, 한강수야 선생님들과 일을 의논하고, 버드나무 교실의 청소년들을 만나는 시간, 샛강의 나비와 벌과 나무들을 만나는 시간, 또 꽃과 바람과 노을과 눈맞춤하는 시간… 한강에서의 정희의 마음은 여름 무지개처럼 말갛고 희망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