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희
2003년 봄이었어요. 그 때 명희와 나는 남태령 인근 조그만 절에서 만났죠. 부안에서 청와대까지 새만금 반대 삼보일배 행렬이 그 아침 남태령을 지나 낙성대로 가기로 되어 있었거든요. 나는 다섯 살 아이를 데리고 그 곳에 갔어요. 봄이었고 조금 덥게 느껴지는 날씨였어요.
명희와 나, 그리고 내 손을 꼬옥 붙잡은 지우가 행렬의 뒤에서 걸었어요. 삼보일배 행렬이기에 걸음은 느렸고, 우리는 자주 쉬어야 했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에 좋았어요. 지우는 조용히 따라 걸었고요.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아요. 그러나 20대의 한창 여린 마음의 명희는 하고 싶은 일, 꿈꾸는 연애, 그리고 가족들 이야기를 더러 했던 것 같아요. 망설임과 설렘과 막연한 불안감을 토로하던 젊은 여자였죠. 나는 나중에는 걷기 지치다는 아이를 등에 없고 일행을 따라가야 했어요. 아이가 묵직해서 우리는 대열에서 많이 뒤쳐졌죠. 등에 땀은 고이고, 명희는 옆에서 지우의 손을 잡고 가벼운 한숨을 쉬며 말을 건네곤 했어요…
2021년 봄, 그러니까 두 주쯤 전에 명희가 왔어요. 이제 각각 여덟 살, 아홉 살이 된 두 아이를 데리고 왔더군요. 이름은 이정든과 이로울. ‘정이 있고,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지은 아이들의 이름이더라고요. 명희와 정든, 그리고 로울이는 샛강 기후투어에 참여해서 나무도 심고, 새도 보고 그랬어요. 호기심이 많고 맑은 아이들이었고, 맑은 눈빛은 명희도 여전했어요.
명희 하면 전에는 여리고 흔들리던 시절의 눈빛과 말씨가 선명했죠.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명희는 많이 달라졌다고 느꼈어요. 단단해지고, 지혜로워지고, 사려깊으며, 사회에서 뚜벅뚜벅 변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으로 말이죠. ‘함께 일하는 재단’에서 국제협력팀장으로 10년 가량 일한 명희는 이후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꾸준히 일을 하고 있어요.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연대하고 실천하는 일, 새로운 기획과 실험으로 사회에 좋은 파장을 만들어가는 일, 그런 일들을 집요하게 해내고 있는 걸 알았죠. 한강조합도 사회적경제 분야이기에 명희에게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일들이 꽤 있겠더군요.
기후투어에 참여한 명희는 이로울과 이정든, 그리고 아이들의 아버지 이왕용님을 한강 조합원과 후원자로 가입시켰어요. 로울이와 정든이가 엄마를 따라 한강에서 놀며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까 상상해 봅니다. 이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이름처럼 세상을 위해 ‘이로운’ 사람들로 살지 않을까요. 제가 2003년 등에 업고 걸리며 환경 현장에 데리고 다녔던 아이는 지금 인권 단체에서 일하고 있어요.
#형철
‘한강길 1400리를 걸으면서 누구를 비판하는 삶 대신, 사람들과 어울려 강을 가꾸는 길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민들이 강을 지키는 주체가 될 수 있으리라고도 생각했다. 그렇게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을 만들어보고자 결심했다’
(한겨레21. 염형철 인터뷰 글 중에서)
네. 염키호테 님의 이야기입니다. (송경용 한강 고문님은 염키호테 대신 ‘염수달’이라고 부릅니다.) 이번 주 한겨레21에 ‘수달이 돌아오는 한강을 기다리며’라는 특집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겨레21은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조금씩 바꾸고 있는 혁신가 21명’을 인터뷰해서 통권호를 냈습니다. 여기에 저희 염키호테 님의 심층 인터뷰가 실리게 된 것이죠. 읽어보시면 한강조합이 시작된 근원을 소상히 알 수 있어요.
알록달록 복고풍 패션이 돋보이는 정겨운 사진들과 과거 이야기는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재미입니다. ^^
◆ 한겨레 21
http://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0103.html?fbclid=IwAR0V37jkzUy_AYxaIaJY2nkE4J7yjRO7GnV3j1LkA4jJgqL8YLqskQ-qMXQ
#그리고 박준
박준(오늘 샛강센터에 온 박새입니다. 은미씨가 좋아하는 시인의 이름을 붙였습니다.)은 호기심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크고 작은 사고를 치기 일쑤였죠. 박준이 사는 샛강엔 박새, 쇠박새, 진박새… 사돈에 팔촌까지 상당히 많았고, 뱁새, 딱새, 직박구리도 주변에서 놀았죠.
먹을 것도 많고, 꽃도 피어나고, 버드나무도 이파리가 나기 시작하고… 그러나 박준이 요즘 가장 호기심을 보이는 곳은 샛강센터였어요. 오가는 사람도 많고, 종종 그곳에서 생 땅콩 같은 것을 꺼내다 주는 것도 보았거든요. 그래서 오늘 기어이 사고를 쳤어요.
지하창고로 해서 살금살금 들어갔죠. 계단이 보이길래 날아올라갔어요. 그런데 계단이 한없이 높아 보여요. 계단 끝에는 철문이 있고요. 돌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계단이 꼬불꼬불, 어떻게 나가야하는지 당황스러웠어요.
“준아, 준아!”
어디서 애타게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어요. 고개를 돌렸더니 글쎄 창문 밖에 정말 아버지가 있어요.
“아빠 아빠 도와줘요.”
준은 와락 아버지에게 가려고 창문으로 뛰어들었어요. 그러나 단단한 유리… 탁 탁 탁…. 또 탁 탁 탁.
밖에서 아버지도 준을 보며 어쩔 줄 모르고… 둘은 서로 유리창을 두고 계속 부딪치기만 했어요. 부자는 몸에 멍이 드는 줄도 모르고, 이리 허둥 저리 허둥. 준은 기진맥진해서 쓰러질 지경이었어요. 무서운 공포가 준의 마음을 얼게 했어요. 그 순간 뭔가 그물 같은 것이 준의 몸을 덮쳤어요.
어어어어, 아빠!
어어어어, 준아!
순식간에 그물이 홱 걷혔어요. 그리고 박준의 눈앞으로 쏜살같이 날아오는 아빠. 아빠는 깃으로 준의 몸을 자꾸 매만지고 부리로 더듬었어요. 우리 새끼, 준아. 괜찮다. 이제 다 괜찮다…
#강과 숲에서 배우는 기후변화
4월에도 샛강 기후투어와 노을 기후캠프가 이어집니다. 가장 푸르른 계절, 4월에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드는 멋진 시간을 누리세요.
꽃그늘 아래서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2021.03.26
우아한 환호성 윤중로 벚꽃 아래서
한강조합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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