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마음
그 나무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나무는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일평생 제 뿌리를 보지 못하는 나무의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이제니 ‘나무 식별하기’ 중에서)
재작년 가을 태풍 링링이 샛강을 휩쓸고 갔을 때 굵은 버드나무들이 백 그루도 넘게 쓰러졌습니다. 커다란 몸뚱이와 무성한 가지를 지닌 나무들이 강풍에 털썩 속절없이 쓰러졌지요. 대기 중에 드러난 뿌리는 물에 빠진 사람이 살려 달라며 뻗친 여러 개의 팔 같기도 하고, 막막함으로 크게 벌린 입 같기도 했습니다.
어떤 나무들은 서로 기대어 살아갑니다. 뿌리를 얽기도 하고, 둥치를, 줄기를, 가지를 얽거나 기대어 서로 떼어질 수 없는 사이로 함께 살아가지요. 그들은 대체로 운명을 같이합니다. 샛강센터 앞에도 사람으로 치면 서른 살쯤 된 버드나무와 열 살쯤 된 팽나무가 서로 뿌리를 얽고 살고 있었어요. 그들도 태풍에 함께 쓰러졌지요. 그러나 버드나무의 가지들을 과감하게 다 잘라내자, 버드나무는 땅을 디디고 벌떡 일어섰고, 어린 팽나무도 덩달아 일어설 수 있었지요. 같이 손을 잡고 일어선 것처럼 말입니다.
나무의 눈은 바라본다. 나무의 눈은 안아준다. 나무의 바깥에서는 비가 내린다. (이제니 ‘나무는 잠든다’ 중에서)
같이 숲을 이루어 살아가는 나무들의 일생도 사람의 일생과 다르지 않습니다. 타인에게 기대어 살아가야만 하는 약한 사람이 있듯이, 나무 중에도 다른 나무에 기대어 살아가거나, 약하고 볼품없게 여겨지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오래된 버드나무 옆에 새로 가까이 뿌리를 내린 플라타너스가 버드나무가 편안히 자라는 것을 방해하거나, 세 그루의 나무가 붙어 서서 햇빛을 다투고, 서로 질 세라 먼저 하늘을 향해 팔을 뻗기도 합니다.
어떤 나무들은 나쁜 나무라고 해서, 볼품이 없다고 해서, 다른 나무에게 부담을 준다고 해서 베어지거나 뿌리가 뽑히기도 합니다. 저는 인간들이 하는 그런 결정들, 쟤는 쓸모가 없어, 쟤가 있으면 옆에 애가 결국 죽을 거야, 쟤는 너무 말라 비틀어졌어… 그런 판단으로 나무의 운명을 결정할 때마다 마음이 시큰거립니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심각한 장애를 갖고 태어나도, 어떻게든 살려 보려고 하고, 사랑과 돌봄을 더 주며 키웁니다. 그러나 나무는… 다를까요?
#열매의 마음
먹이를 주는 세계의 작은 열매를 주워 들고 간다. 열매는 붉고 가지는 꺾여 있었습니다. 열매는 말이 없는데 나는 열매의 마음을 듣고 있다. 꺾여 있는 가지 위에 아픔이라는 말이 얹히고 있다. 언젠가 속해 있었던 나무에 대해, 언제고 떨어져 나온 꽃에 대해, 산등성이로 내려앉은 빛은 나무와 나무의 마음이었다. (이제니 ‘열매의 마음’ 중에서)
근래에 샛강 산책로에 수로 공사가 있었습니다. 포크레인이 와서 땅을 파고 커다란 송수관로들을 땅 속에 묻었습니다. 우르릉 쿵쿵 산책로를 지나는 포크레인에 버드나무와 앵두나무, 팽나무 가지들이 속절없이 부러졌고, 어떤 나무들은 크게 베인 생채기가 생기고, 어떤 나무들은 아예 뽑혀 버리기도 했습니다.
항의를 하자 공사를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나무를 다시 심어주겠노라 합니다. 그러나 죽은 나무들은 어디로 가는지, ‘나무의 마음’이 뭔지, ‘꺾여 있는 가지 위에 아픔이라는 말이 얹히는’것이 뭔지, 그들은 알 길이 없습니다.
나는 보이지 않는 한 그루의 나무와 함께 매일매일 이 아침의 언덕 위에 서 있습니다. (이제니 ‘발화 연습 문장 – 떠나온 장소에서’ 중에서)
오늘은 7년째 되는 날입니다. 7년이라는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어떤 이들에게는 7년이 하루 같기도 하고, 영원 같기도 하지 않을까요. 시인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한 그루의 나무와 함께 매일매일 이 아침의 언덕’ 위에 서서 기다리는 마음을 가늠해봅니다.
어둠 속에서 바람을 맞으며 나무와 나무가 서 있었다. 나무와 나무는 멀리서 보면 모두 하나로 보였다. 들리지 않는 장송 행진곡을 들으면서 하나하나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었다. (이제니 ‘발화 연습 문장 – 두번째 밤이 닫히기 전에’ 중에서)
어디론가 멀리멀리 떠나가는 나무들, 모두 하나로 보이는 나무들, 아이들… 참 싱그럽고 빛나던 그 아이들. 사무치게 그리운 사월의 아침입니다.
풀이 많은 강가에 너는 서 있다. 풀이 많은 강가에는 그림자가 많고, 풀이 많은 강가에는 그리움이 많다. (이제니 ‘풀이 많은 강가에서’ 중에서)
2021.04.16
세월호 7주기 아침에… 사월의 나무들과 함께
한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