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팽나무에게,
어버이날 아침에 제주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제 저녁에도 전화를 했지만, 치매를 앓는 어머니는 그새 잊어버리고 반색을 하십니다. “정말 오랜만이여. 서울에서 전화햄시냐?”
차를 한 잔 우리고 앉아 창밖을 보며 고향 마을을 떠올려봅니다. 어버이날이면 우리집 바로 앞에 있는 마을회관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지곤 했습니다. 힘겨운 농사일에 지친 어머니 아버지들이 이 날만은 모여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어깨춤을 추고 밥과 떡을 나누어 드셨습니다. 경쾌한 노래가락이 지금도 귓가를 맴돕니다.
마을회관 앞에는 저갈못이라는 연못이 있고 그 중심에 당신이 서 있습니다. 제주도의 마을 어귀마다 흔히 있듯이 당신은 오래 마을을 지키고, 마을 사람들과 삶을 함께 해온 팽나무입니다. 우리들은 어릴 때부터 당신 그늘 밑에서 자랐습니다. 술래잡기와 그네 타기, 나무에서 잠자기도 다 당신에게 기대어 했지요.
마을의 젊은이들이 차차 마을을 떠나 도시로 가고, 노인네들은 저 세상으로 하나 둘 떠났습니다. 나 역시 고등학교를 다니러 도시로 떠났고, 어머니도 자식들 뒷바라지하러 서울로 떠났습니다. 마을은 어느새 육지에서 내려온 목사 가족과 혼자 쓸쓸히 사는 노인들 몇몇, 그리고 새로운 농법으로 하우스 농사를 하는 귀농한 농가 몇몇이 남았을 뿐입니다.
서울에서 살며 나는 당신 이야기를 곧잘 했습니다. 밭일에 온종일 매인 어머니를 대신하여 나를 품어주고 키워준 당신, 당신이 내 어머니나 진배없다고, 당신의 반질반질한 나무 기둥, 넉넉히 드리운 튼튼한 줄기, 가을이면 작은 열매들과 갈색 잎을 매달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 해가 저물어갈 무렵에 당신 줄기에 기대어 눈을 감고 바람소리를 들었던 추억…
내가 어른이 되고 다시 당신을 만났을 때는 당신이 생각보다 좀 작아졌다고 느꼈습니다. 어깨가 유순한 외할머니 같은 느낌이었어요. 내가 훨씬 자랐으니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꼈겠지요. 나는 여전히 매끄럽고 반질거리는 당신의 수피를 만지며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죠. 그리고 세월이 또 한참 흘렀습니다.
정확히 어느 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몇 년 전에 고향마을에 갔을 때 마을 연못 저갈못은 정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연못 가운데는 이상하게 생긴 조형물 의자가 놓이고, 연꽃과 물풀이 가득 찼던 연못은 절반쯤 작아졌습니다. 그리고 당신, 넉넉하게 팔을 벌리고 수십 년을 살았던 당신의 팔은 전부 잘려 나가 있었습니다. 나는 언니에게 언제 당신이 이렇게 잘렸는지 물었고, 언니는 ‘이미 한참 된 일’이라 답을 하더군요. 정비가 이루어진 마을 연못가에는 예전만큼 노인들이 자주 앉아 쉬지 않습니다. 도로가 넓어져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의 차가 간혹 쌩 하고 마을길을 숨차게 지날 뿐입니다.
나를 키워줬던 고마운 나의 팽나무 어머니, 당신이 그렇게 수모를 겪으며 겨우 버티고 살고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내가 고향에 남을 수는 없었겠지만, 당신에게 미안합니다. 한동안 잊고 있었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샛강의 나무들 샛강에서도 팽나무를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제법 굵은 팽나무들도 꽤 있고, 여기저기 숲 속에서 생기를 뿜으며 연초록 잎을 가득 틔우는 어린 팽나무들이 있습니다. 저는 용태못을 지나 서울교로 가는 길에 있는 팽나무를 좋아합니다. 남들이 안 보는 사이, 한 번 매달려 보기도 했지요. (좀 무거워서 미안했습니다.)
한강이 하는 일 중에 가장 공을 들이는 것 하나가 어린 나무들을 옮겨 심어주는 일입니다. 큰 나무 그늘에서 2-3 년 자라고 나면 햇빛이 왕성하게 필요해지는 나무들을 양지바른 곳으로 옮겨 주는 일이죠. 그렇게 자리를 옮겨준 나무들이 어느 새 수천 그루가 됩니다. 한강이 하는 일이 그렇다 보니, 샛강의 나무 하나하나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간혹 공사가 문제가 됩니다.
요즘 샛강에서도 무슨 공사가 그리 많은지 모릅니다. 포크레인이 작업을 할 때 어린 나무들, 힘껏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나무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걸까요. 더러 짓밟히고 뽑히기도 합니다. 어제는 애써 심어 놓은 쑥부쟁이를 일부 포크레인이 밟고 지나갔습니다. 제가 같이 심었던 곳이었기에 속상했습니다. 가을께 꽃이 피면 보러 오겠다고 말한 친구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버이들에게 어제 한강에서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적은 보너스’ 증정 티타임을 가졌습니다. 한강에는 열두 명이 직원들이 함께 일하는데, 누군가의 어버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고마운 어버이에게서 잘 자라 한강에까지 와준 분들입니다.
한강의 직원들은 참 열심히 일을 합니다. 순순하고 소박하면서도, 한강의 꿈을 이루어가는 일에 누구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아직은 많은 돈을 벌지 못합니다. 돈보다는 이런저런 좋은 일들, 그러니까 사회에도 자연에도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저희 사업인지라 살림살이가 넉넉하진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직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매우 적은 금액이지만 봉투를 준비해보았습니다. 가족들과 케익 하나 정도 사 먹을 돈을 담았지요. 직원들이 그 마음을 느껴준 것 같아 흐뭇했지요. 마음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며 일하는 것이, 그리하여 서로 행복한 시간을 더해주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한강의 모습입니다.
세상의 모든 어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자식을 낳지 않았더라도,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돌보는 당신, 어려운 처지의 사람에게 관심과 온정을 조금이라도 나누는 당신, 동네에서 쓰레기 하나라도 줍고 살기 좋은 지구를 만드는 당신, 모두 어버이나 다름없습니다.
가정의 달 5월 한강은 ‘가족 기후실천캠프’ 등 가족들이 함께 하기 좋은 프로그램들을 준비했습니다. 한강의 직원들과 샛숲지기들, 시민들이 어버이의 마음으로 가꾸는 샛강에서 기후캠프에도 참여하셔서 행복한 추억 만들고 가셔도 좋겠습니다.
2021. 05.08 어버이날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한강 드림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동로 48 여의도샛강생태공원 방문자센터 Office. 02-6956-0596/ 010-9837-0825 후원 계좌: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우리은행 1005-903-6024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