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선생님들께,
12월 8일 오늘 새벽 0시를 기해 수도권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2.5 단계가 시행되었습니다. 이제 많은 것을 멈추고 가급적 홀로 있어야 하는 때입니다. 매년 마지막 달이면 일 년에 한 번이나마 만나던 동창생들도, 회사 동료들과의 송년 자리도, 시끌벅적 크리스마스 파티도, 신년 해돋이 여행도 다 멈추어야 하는 시간입니다.
샛숲학교 버드나무 교실조차 멈춘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샛강 숲을 가꾸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일주일에 다섯 번, 혹은 세 번은 교실을 열어왔습니다. 사회가 다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고, 자연 속에서 소규모 자원활동을 하는 것은 안전한 터라 상당히 품이 들고 만만치 않은 운영이었지만 이어왔습니다.
코로나 방역수칙을 잘 지켜준 자원봉사자들도 대단히 고마웠습니다. 한여름에도 야외에서조차 마스크 한 번 내리지 않고 생태교란종을 끌어내리는 것과 같은 일을 하며 땀을 흘렸지요. 그러나 여전히 걷잡을 수 없는 코로나 확산세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야 하는 터라, 샛숲학교 야외프로그램도 이제 전부 멈추었습니다.
#까칠하냐, 난폭하냐, 때 아닌 수달 논쟁
흑곰에 대해서 쓴다.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선 아무것도 쓸 수 없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쓰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이를테면 흑곰의 마음 같은 것. 마음을 대신하는 눈길 같은 것. 눈썹 끝에 맺혀 떨어지는 눈물 같은 것. 머나먼 북극권으로 사라지는 한줄기 빛 같은 것. 한 줄기 빛으로 다시 시작되는 오래전 아침 같은 것. 산더미만 한 덩치에 보드랍고 거친 털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제니 ‘흑곰을 위한 문장’ 중에서 인용)
어제 한강 사무국 단톡방에서는 때 아닌 수달 성격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시작은 ‘한강의 수달 생태지도’ 리플렛 문구입니다. 수달에 대한 소개 글에 ‘외모는 귀여우나 성격은 난폭하다’고 적힌 것이 적절하냐 아니냐, 하는 논쟁이었습니다.
평소 야생동물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박이사님은 수달에게 난폭하다는 표현은 좀 어울리지 않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피력했고, 은미씨는 시민들에게 친근하고 사랑받는 수달을 한강에서 잘 살게 하자는 취지의 일을 우리가 하기 때문에 그저 ‘까칠하다’ 정도로 하자고 했지요.
한창 동서남북 일에 분주하던 염키호테 대표님은 사실 수달이 난폭한 것이 맞다, 그러나 표현이 정 그렇다면 ‘사냥의 명수’ 정도로 하자고 제안했지요.
이런 것만 봐도 우리가 수달에 대해 얼마나 모르는지, 또 수달에 대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보았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저 수달들에게 샛강에 와서 살면 우리들의 생태계 복원 홍보에 도움이 되겠다 싶은 마음이 먼저였지요.
이제니 시인이 ‘흑곰을 위한 문장’에서 ‘이를테면 흑곰의 마음 같은 것, 마음을 대신하는 눈길 같은 것’을 상상했듯이, 우리도 수달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싶은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게 흑곰이든 수달이든 혹은 요새 샛강에 부쩍 많아진 박새이든, 그 존재들에 대해 존중과 호감을 가지고 가만가만 잘 대해주어야 하겠습니다. 북극 어딘가에 흑곰도 있고, 한강에 수달과 박새도 있기에, 우리의 좁은 세계가 확장되고 연결되며 풍부해지는 것이 아닐까요.
요즘 정은대리는 수달을 찾아서 한강 권역을 부리나케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수달만큼이나 활동성이 좋고, 생태공부에 대한 열정이 뜨겁습니다. (어제도 사무국 톡방에 향기로운 수달 똥 사진을 여러 장 올렸습니다. ^^) 그가 샛강에서 수달을 데리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면 슬그머니 웃음도 납니다.
#매일 새의 숫자를 세는 남자
그저께와 어제는 재두루미, 대백로와 기러기가 같은 곳에 모여 잠을 잤네요. 물론 무리가 서로 섞이지는 않고…
재두루미는 25마리가 잠을 잔 것을 어제 확인했습니다. 조만간 다른 아이들이 더 있는지, 더 있다면 어디서 잠을 자고 있는지 알아봐야겠습니다. 혹시 알고 계시는 분이 계시면 말해주세요. 알려주시는 분께는 따뜻한 밥을 사겠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 ㅎㅎ (2020.12.07 박평수 이사 페이스북 글)
그는 요즘 매일 새의 숫자를 세고 있습니다. 어둑한 새벽에 집을 나와 장항습지로 가서 새들의 동정을 살피고, 해가 떠오르는 것을 바라봅니다. 멀리서 날아온 재두루미와 기러기들이 잘 먹고, 잘 쉬고 있는지, 매일같이 확인합니다. 일년 내내 생태교란종 관리 활동을 하고, 부유쓰레기 걷어내기를 멈추지 않았으며, 이제는 겨울이 내려앉은 습지 들녘에서 홀로 들어가 새들을 바라봅니다. 인적이 없어 쓸쓸할 법도 한데 그는 오히려 벅찬 날들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코로나로 다들 힘들지만, 올해도 장항습지의 철새들을 위해 모금함을 열었습니다. 새들은 코로나가 뭔지 모르고, 환경오염이 뭔지 알 길이 없으며, 왜 해를 거듭할수록 기후가 달라지는지 그 이유를 모릅니다. 그저 새들은 그들이 타고난 숙명과 본능으로 살 길을 찾아 겨울마다 시베리아에서 우리 땅으로 날아옵니다. 그들이 잘 쉬고 가도록 십시일반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새들이 날고, 고라니가 뛰어야 우리도 같이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새들이 다 떠나버린 적막한 습지는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이제 우리 홀로 걸어요.
만나고 싶고 보고 싶지만, 당분간 우리 홀로 지내도록 해요. 그것이 오래 사랑하는 길입니다. 샛강에서는 비대면 자연 산책을 준비했습니다. 혼자 걸으시면서 자연을 깊이 만나실 수 있도록 안내 자료를 만들었어요. (안내지에 있는 새나 나무를 찾으시면 선물도 드리려고 해요.)
혼자서라도 앞서 숲길을 걸어가 보세요. 이내 누군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아늑하고 걷기 좋은 길에 ‘샛강로’와 ‘샛숲길’을 표시하여 리본도 달아 두려 합니다. 홀로 걸으시더라도, 저희 한강이 구석구석 나무와 새들을 돌보는 마음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와중에 오는 금요일 (12.11) 한강길 사진전도 엽니다. 올해 몇 차례 강길을 걸으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강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기록했습니다. 박현진 사진작가가 쉽게 자연을 담는 법을 가르쳐주었지요. 사진전은 열지만 구경하러 나오시지는 마세요. 우선 온라인으로 담아 보여드릴 예정이고, 이후에 샛강센터에서 오래 보실 수 있게 걸어 둘 생각입니다.
코로나가 우리 일상을 멈추고, 경제를 멈추고, 만남을 멈추지만, 멈추지 못한 것들도 분명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고 싶은 열망, 춥고 낮은 곳에 있는 이들에 대한 연민, 아이들과 동물들에 대한 걱정과 배려… 그 모든 것에 더해 서로 잘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 부디 건강하게 버텨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멈추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하시고 평안한 날들 되시길 기원합니다.
2020.12.08 .
멈추지 않은 샛강 숲에서
한강조합 사무국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