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편지 82_긍정적인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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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coophangang 등록일21-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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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편지 82 
긍정적인 밥

시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함민복 시 ‘긍정적인 밥’ 일부) 

한강 선생님들께, 

요즘은 밥을 먹고 사는 일에 대해 종종 생각해보게 됩니다.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위기가 길어지고, 거리두기 단계가 높아지면서 저희도 몇몇은 사무실에서 간단히 밥을 지어먹곤 합니다. 밥을 짓고, 서넛이 멀찍이 떨어져 앉아 한솥밥을 나누어 먹고, 설거지를 돌아가며 하죠. 쌀이나 김치, 반찬거리들은 서로 조금씩 가져와서 되는대로 소박한 점심을 지어먹습니다. 

가끔 오시는 손님이 있으면 숟가락 하나 더 두고 같이 먹습니다. 별 반찬이 없어도 맛있게 잘 드시니, 보면서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염키호테님은 저에게 밥이나 국이 양이 너무 많다고 타박합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줄이기가 참 어려운 것이, 누군가 밥을 먹다 부족하다고 느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늘 있기 때문이죠. 

지금이야 동글동글 달덩이 같은 얼굴이라 한동안 “얼굴 참 좋아졌군요” (살이 올랐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겠죠? ^^) 인사말을 예사로 들었습니다만, 어린 시절의 저는 자주 배가 고팠습니다. 삐쩍 말라 앙상한 맨다리를 드러내고 학교를 오가던 아이였어요. 도시락을 싸고 다닌 적이 거의 없었지요. 반찬다운 반찬이 없고, 양념이 좀 부족한 듯한 김치가 전부였으니까요. 그래서인지 풍족하게 먹는 일에 대한 집착이 있습니다. 

모든 생명있는 것들은 먹고 살아야 하지요. 저희 한강 식구들은 샛강에서 또 장항습지에서 깃들어 살아가는 많은 동물들을 봅니다. 샛강에서는 박새, 뱁새, 딱새, 직박구리 같은 흔한 새들에 더해 그제는 활발히 놀고 있는 족제비도 보았습니다. 장항습지에서는 월동을 하러 온 재두루미들과 큰기러기 떼, 그리고 고라니, 너구리에 더해 들개들까지 있지요. 

한강이 일하는 샛강에서나 장항습지에서나 그들 동물들과 우리들은 이미 한식구나 다름없습니다. 옆에서 같이 부지런히 살아가는 존재들이 애틋합니다. 그러니 겨울철 공원이나 습지 안에서 마주치는 그들이 밥은 먹고 사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마음이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폭설이 내린 어느 날, 눈을 맞으면서도 찔레 붉은 열매를 부지런히 쪼아보던 직박구리를 오래 멈춰 서서 바라보았지요. 붉은머리오목눈이 대여섯 마리가 갈대 숲과 찔레 덩굴 사이에서 부지런히 먹을 것을 찾는 모습에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겨울 들어 꾸준히 밥을 주고 있습니다. 샛강에서는 땅콩과 쇠기름을 먹이통에 담아 여기저기 걸어 두었습니다. 자주 먹으러 오는 박새 얼굴이 얼마나 통통한지 귀엽고 사랑스러워 한참 보며 미소지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샛강 동물 친구들 먹이를 챙기던 정은 연구원이 점점 수달을 쫓아다니느라 조금 소홀해졌습니다. 먹이통이 바닥을 보일 때가 종종 있더군요. 

샛숲학교가 다시 열렸습니다. 기존에 하던 버드나무 교실, 얼리버드 등에 더해 ‘샛숲 친구들 먹이 주기’를 신설했습니다. 수달언니가 샛강 새들 챙길 겨를이 줄어든 사이, 대신 새들을 돌봐줄 어린이들의 도움을 받으려고요. 땅콩버터와 고소한 기름, 빵 등으로 버드 케이크도 만들어 숲 안에 걸어줄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오픈하자마자 벌써 신청이 쇄도하고 있네요. (밥을 나누는 일! 저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전에 ‘카카오 같이가치’ 모금함 3백만원 달성 소식을 전했던가요? 이 모금함은 <철새들도 힘내라, 장항습지 철새 먹이주기> 목적으로 개설했는데, 정말 많은 시민들이 십시일반 밥을 보태주셨습니다. 이 편지를 받으시는 한강 선생님들도 많이 동참해주신 걸로 압니다. 며칠 전에 이 돈으로 볍씨와 땅콩 등을 넉넉히 주문했습니다. 이번 주에는 드디어 재두루미를 비롯한 우리 손님들이 겨울나기 먹이를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먹고 사는 일이, 때로 눈물겹기도 하지만,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요. 코로나 위기로 먹고 사는 일이 막막해진 분들도 주변에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면 또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저 저희가 하고 싶은 일은 밥을 좀 나누는 일,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 사람들과 이웃 동물들을 챙기고 마음을 두는 일입니다. 

샛숲학교에서는 오감으로 숲을 산책할 수 있는 ‘시가 있는 샛강 산책’이나 ‘숲의 속살 속속들이’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또한 곧 다가올 봄을 위하여, 봄꽃 나들이 프로그램도 수달언니가 진행합니다. 슬슬 기지개를 켜고 살살 나들이를 오셔도 좋겠습니다. 

따뜻한 밥 잘 챙겨 드시고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2021.02.22 
새들도 배부르게 먹는 샛숲에서 
한강조합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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