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편지 88_친절한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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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coophangang 등록일21-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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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편지 88
친절한 나무들

#무례한 사람들
이게 다 염키호테 님 때문입니다.

어제는 종일 햇살이 아늑하고 대기는 파랑 하늘에 초록 물감을 흘려 놓은 듯 눈부신 날이었습니다틈틈이 창밖을 흘끔거리다 급한 일들을 얼추 마치고 오후 늦게 가벼운 산책을 나섰습니다해가 떨어지기 전에 이 봄날 숲길의 고적함을 누리고 싶었거든요.

느릿느릿 걷고 자주 멈추었습니다허리를 굽어 벌써 노랗게 피어난 애기똥풀을 들여다보고가시를 피해 연한 찔레나무 잎을 톡톡 건드려 보았으며라일락 꽃 가지 끌어당겨 향기도 킁킁 맡아 보았습니다실개천 아래서 유유히 노니는 살진 잉어를 한참 보았고청둥오리 한 쌍을 숨은 듯이 서서 바라보면서 오리야오리야” 작게 불러 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나무 데크나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고숲 안쪽 오솔길을 두어 명씩 걷고 있습니다이토록 좋은 봄날이라니

그냥 그렇게 나무와 꽃과 잉어와 새들만 쳐다보고 걸으면 좋았을 텐데걷다 보면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그게 다 염키호테 님 때문이지요그와 종종 같이 공원을 둘러보면 숲을 즐기는 사람이 아닌 영락없는 공원관리인의 눈으로 산책을 하니까요.

선생님여기서 쑥 캐시면 벌금 나옵니다생태공원입니다.”
거기 보호구역이예요일부러 막아 두었는데 왜 들어가셨어요?”

일전에 대낮에 노상방뇨하는 아저씨들에게도 꼬박꼬박 선생님이라 칭하며 말리다가반말에 드잡이라도 할 기세여서 봉변이었는데그는 여전히 무례한 이들에게도 늘 선생님하며 말립니다그 뿐만이 아닙니다. “벌써 환삼덩굴이 올라왔네....” 하면서 산책 중에 쭈그려 앉아 풀을 뽑기도 하고맨손으로 쓰레기를 줍기도 하죠저도 엉거주춤 따라하게 되고요.

어제는 나물을 몇 줌 쥐어뜯으며 점퍼 주머니에 구겨 넣는 아주머니를 만났고 (“나물 채취하시면 안 됩니다.” “그래요몰랐어요.”), 숲 속으로 아무렇게나 자전거를 끌고 가는 아저씨를 만났습니다저도 어느새 공원관리인이 됩니다.

선생님자전거 도로는 저쪽입니다숲으로 끌고 가지 마세요.”
아저씨는 못 들은 척 그냥 갑니다.
저기요그 쪽으로 가지 마시라고요.”  
제가 약이 올라 뒤통수에 대고 소리칩니다그러자 남자는 돌아보고 반말로 대꾸합니다.
아니내가 이 앞에 살아서 이리로 가는 건데그리고 내가 지금 자전거 탔어?”

대거리를 더 하다가 불쾌해질까 싶어 돌아섰습니다. (그나저나 어떤 아저씨들은 왜 초면에 반말을 할까요?) 멋쩍은 마음에 물가에서 오래 잉어들을 바라보았습니다근처를 지나던 다른 아저씨가 제 옆에서 멈춰 서더니 혼잣말처럼 말합니다.
여긴 물이 맑으니 물고기들이 참 많아.”

#친절한 나무들
무례한 사람들도 있지만세상엔 친절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얼마나 다행한 일인지요저는 친절한 사람들을 친절한 나무들이라고 부르고 싶어집니다나무들은 무조건 베풀고나누어 주고다정하니까요.

한강조합에는 아낌없이 주는 친절한 기부 나무들이 있습니다샛강에서 자원봉사를 꾸준히 해주시는 장영탁 선생님은 며칠 전 기후투어 강사료를 전액 기부해주셨습니다노자생태교실에 수강생으로 왔던 신석원 한강 감사님도 기부금 봉투를 건네주고 가셨고요노자생태교실을 열어 주신 김영 고문님은 사례비 없이 그저 동학들을 만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신다며 오히려 자꾸 선물을 가져다주십니다이번에 출간한 책 고전에 길을 묻다도 조합원들에게 선물하라며 많이 가져오셨습니다.

기부금이나 봉사가 아니더라도샛숲학교나 기후실천투어에 열심히 참여하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모두 친절한 나무들입니다즐겁고 유익했다고 상기된 얼굴로 웃으며 말씀해주시는 분들에게서 힘을 받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오에 겐자부로의 <’나의나무’ 아래서>에 있는 문장입니다. ‘나의 나무가 언젠가 할머니가 된 저에게도 이 질문을 던지겠지요저는 가진 것 조금씩 나누며 주변에 친절하게 살아왔노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이렇게 샛강 숲에서 저도 조금씩 성숙해지고 있습니다

#샛숲의 열 가지 정령들
재은과 진우가 이끄는 강과 숲에서 배우는 기후투어가 이번 주 시작되었습니다진우 박사님이 기후투어를 안내하며 샛숲의 열 가지 정령들을 꼽아보았습니다.

1. 낭창낭창한 유록색(柳綠色)의 버들잎 (노란빛을 띤 연한 초록색)
2. 오전 숲길에서 느끼는 따뜻한 봄 햇살
3. 사랑꾼 잉어공주 (수달못)
4. 잉어를 노리는 수달 (샛숲 물길의 지배자)
5. 물장난치는 흰뺨검둥오리와 청둥오리 (생태연못기후변화 생물지표종)
6. 붉은머리오목눈이 지저귀는 소리 (찔레억새달뿌리풀)
7. 버들숲을 지키는 박새군단 (기후변화 생물지표종)
8. 앙증맞은 큰개불알풀 (봄까치꽃, Bird eye, 성녀 베로니카기후변화 생물지표종)
9. 아낌없이 주는 뽕나무신이 내린 보약나무 (뽕나무숲그늘마루데크
10. 샛숲의 애벌레 배추흰나비

4월의 기후투어에 오시면 진우 박사님과 함께 샛숲 정령들을 만나실 수 있어요.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선운사에서’ 일부)

꽃은 피고 지고 시간이 흐르지만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마음 가득 꽃으로 채우는 날들 되시길 바랍니다.  

2021.04.08
햇살과 물결그리고 나무가 춤추는 샛강에서
한강조합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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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협동조합 한강에서 기후시민이 되는 특별한 투어에 초대합니다.
강과 숲에서 배우는 기후변화. 물은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지표입니다.
강길을 따라 걸으며 기후이야기를 듣고, 숲길을 걸으며 기후시민 실천을 이야기합니다.

* 일정 : 14일(수), 15일(목), 21일(수), 28일(수) 중 1회만 참여 
          (3월 한강길 기후 투어 참여자는 중복 신청 불가 합니다.)
* 시간 : 10시~15시 여의샛강생태공원 일대
* 참가비 : 한강조합원_무료 / 비조합원_나무심기 후원 10,000원
          (점심: 오색오미 채식도시락 제공)
나무심기 후원금 : 우리은행 1005-903-602443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후원금은 환불되지 않으며 기부금 영수증이 발행됩니다.
* 모집 인원 : 각 회차별 12명 (조합원 우선, 비조합원 후원금 입금순서로 선착순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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