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 168_흐르다 샛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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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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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168
흐르다 샛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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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정희

#Down by the sally gardens

이제 가을도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합니다.

지난 주말에 비까지 내려서 나무들을 뒤흔든 까닭에 단풍 든 낙엽들이 발 아래 수북하네요.

 

샛강센터가 있는 윤중로에는 벚나무가 길가에 면해 서 있는데 노란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진 벚나무 잎들이 길을 덮고 있어요. 샛강센터를 향해 걸을 때마다 속으로 이걸 쓸어야 할까 둬야 할까 생각하기도 해요. 저는 그냥 두는 편을 택합니다. 어쩌다 보니 듬뿍 누리지 못했던 올 가을, 단풍 든 잎을 떨구는 나무들이라도 실컷 보자는 심사입니다.

 

아직 춥지 않고 걷기가 좋아 지난 며칠 샛강에도 손님들이 자주 왔습니다. 그 중에 금요일 낮에 온 한겨레신문사 기자님들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30분 정도 샛강 산책을 하고 이후 노량진 부근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 모양입니다. 제가 어쩌다 탐방 안내자로 낙점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고, 그들은 안내나 설명보다 그냥 숲 길을 걸어가며 주변 구경하는 것이 소풍이고 힐링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자 고민이 되었습니다. 안내자라고 가이드 마이크까지 준비했는데 무슨 안내를 하지? 평소 재미있는 가이드 기술을 익혀두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기도 했습니다. 제가 곧잘 하는 시 낭송을 할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성큼성큼 숲길을 지나가고 싶은 이들에게 시는 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힙합을 즐기는 이들에게 조선시대 정가를 들려주는 느낌이랄까요.

 

결국 평이하게 나무 이야기 조금, 수달 이야기 조금, 샛강 이야기 조금 뒤섞어 말하며 함께 걸어간 것이 다였습니다.

 

제가 샛강 안내 시 곧잘 낭송하는 시는 예이츠의 <버드나무 정원 아래서 down by the sally gardens>. 봄이나 여름철의 낭창낭창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서 이 시를 읽으면 아주 잘 어울리죠. 젊은 시절 사랑에 대한 회한이 가득 담긴 시니까요. 그런데 어쩐지 늦가을에는 어울리지 않는데, 저는 하고 많은 시 중에서 왜 자꾸 이 시만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염두에 둬서 그럴까요. 클래식 라디오에서는 이 시로 만든 노래가 꽤 자주 들립니다. 지난 주말 이후에도 라디오에서 한 번 들었어요. 그러니까 지금 이 가을에도 어울리는 시라는 뜻일까요?


#생태문학과 샛강

내가 숲에 들어간 이유는 삶의 본질적인 진실만을 대면하기 위해 한번 의도적으로 살아보고 싶어서였다. 삶에서 배워야만 하는 것을 과연 내가 배울 수 있는지 보기 위해서, 그래서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 내가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샛숲학교에서 열린 박혜영 교수님의 생태문학 수업이 끝났습니다. 숲 속에서 자립하는 삶을 살았던 소로의 실험은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저는 이번에 박혜영 교수님의 <느낌의 0도>를 읽으며 두루 공감했는데, 특히 아룬다티 로이가 <9월이여, 오라>에서 한 말이 인상적입니다. 작가들은 흔히 이 세상에서 무엇을 쓸지 자기들이 고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산과 강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줄 작가를 고른다고요.

 

샛강을 걷고 또 걸으며, 멈춰 서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거나 억새가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샛강은 나를 선택해줄까? 그 많은 이야기를 대신 전달할 심부름꾼으로서 샛강이 나에게 말을 걸어줄까? 그런 선택을 받으려면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최근에 샛강에서는 어린 수달들의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저희가 설치한 센서 카메라에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데요. 조만간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샛강에 사는 수달 가족도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대변자로 저를 선택해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그런 생각을 하며 갈대와 억새, 달뿌리풀이 어울려 흔들리는 오솔길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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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다

망각에 맞선 문학적 저항’.

샛숲학교에서 선생으로서 때로 학생으로 함께 해주시는 나희덕 시인님이 올해 대산문학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시인님의 수상을 마음 깊이 축하드립니다. 그의 시집 <가능주의자>는 피와 땀과 눈물로 세상과 연대하고 손길을 내미는 그런 시들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시집에 수록된 모든 시들이 다 좋지만, 저는 그 중에서 ‘흐르다’라는 시를 특히 더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동사를 묻자 그는

흐르다, 라고 대답했다

나도 그 동사가 마음에 들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흐르다, 가 흘러내리다, 의 동의어라는 것을

 

그저 수평적 움직임이라고만 생각했다

몇 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기 전에는

실감하지 못했다 눈물의 수직성을

 

눈에서 입술로, 상류에서 하류로, 젊음에서 늙음으로, 살아 있음에서 죽음으로, 높은 지대에서 낮은 지대로, 어제에서 오늘로, 그리고 내일로, 최초의 순간에서 점점 멀어지는 방식으로, 에너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의 방향으로, 기억의 밀도가 높은 시간에서 낮은 시간으로

 

흐르는 모든 존재는

흐르는 동시에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아래로 아래로 떠밀려가고 있다는 것을

(나희덕 시 ‘흐르다’ 부분 인용. <가능주의자> 2021. 문학동네)

 

흐르는 모든 존재들에 더욱 마음이 가는 늦가을입니다. 하염없이 때로 속수무책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물 위에 흔들리며 가는 낙엽처럼 어떤 존재들은 가파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으니 그런 존재들에게 손을 내밀고 품을 나눠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2022.11.15.

한강 드림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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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샛숲학교 특별기획!
일 시 : 11월 19일 토요일 오전 10시~12시
<자연과 닮은 예술 판소리>란 주제로 판소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특별한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이자 창작판소리, 창작 국악극을 공연, 극작, 연출하는 소리꾼인 최용석명창과 함께 하는 시간인만큼 판소리, 국악 등 우리 예술에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한강人을 소개합니다. 이재학 조합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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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2022년 11월 7일부터 한강인이 된 이재학이라고 합니다.

저는 한국인이 존경하는 위인 중에 한 분인 세종대왕 ‘이도’ 어르신과 같은 집안, 같은 날짜에 태어나서 세종대왕처럼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민영역, 기업영역, 공공영역에서 사람의 가치를 소속이나 배경이 아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 찾아주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발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여, 관계를 맺어주는 일과 활동 등을 해 왔으며, 앞으로도 할 예정입니다.


Q.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에 함께하게 된 계기는요?

지구 표면의 약 80%가 물로 덮여 있기에 지구에는 다양한 생물체들이 탄생하기도 하고, 진화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물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명체에게 매주 중요한 특성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마실 수 있는 물의 양은 기껏해야 약 1%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눈에 바로 보이는 공기는 미세먼지와 황사로 인해서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만, 물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없기에 그 중요성에 대해서 인식이 크지 않나 싶습니다.

 

한강은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물론 역사·정치·경제·사회·문화·환경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현재도 강원도와 충청북도를 묶는 태백권과 서울과 경기도로 연결되는 수도권역의 7개시, 24개군, 241개의 읍·면을 안고 있습니다. 유역 면적 또한 전 국토의 26%인 26,219㎢로 전 인구의 약 30%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강에서 물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시키며 ‘강 생태를 가꾸고, 강 문화를 일궈서, 세상을 풍요롭게, 시민을 행복하게’ 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미션에 공감하고,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Q.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에서 하고 싶은 일이나 활동은 무엇인가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은 강생태가꾸기(여의샛강생태공원 운영, 한강수달보호활동), 강문화활성화(여주강문화생태원 추진, 한강 트레킹 및 캠핑 운영), 시민과학 및 캠페인(시민과학자 생태 모니터링, 공유지 시민관리 모델) 등을 주요 활동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요 활동 등의 활성화를 위해서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을 구심점으로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함께하는 구성원들과 함께 구체화해서 고도화 및 확산시키고 싶습니다.


Q. 한강 조합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해주세요.

한강은 조선이 건국되고, 수도를 한양(서울)으로 옮기면서부터 사람이든, 물산이든 모든 것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해 왔습니다. 과거에는 수로를 이용하는 비중이 많았으나 지금은 철도, 차량 등도 서울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물론, 새들도, 물고기도 모이게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강은 누구보다 한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인 조합원 여러분을 모이게 했습니다. 이는 한강 그리고 한강이 만들어내는 환경적인 가치는 결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한강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조합원들과 함께 한강을 보고, 만나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계기들을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함께 해 주세요!

그럼, 한강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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