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178_금자언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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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3-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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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178
금자언니에게

금자언니안녕하세요?

 

언니를 마지막으로 본지 한 35년은 더 지났네요제가 고등학생일 때 은희언니 따라 나섰다가 시내에서 언니를 봤어요우리 자취방이 있던 시청 골목 근처 어딘가에서 만나 같이 떡볶이 같은 분식을 먹었던가 싶어요언니의 동글한 얼굴과 순순한 표정, “야이는” 하던 푸근한 제주말이 떠오릅니다그 후 이렇게 세월이 흘러 다시 금자언니 이름을 불러봅니다.


금자언니와 통화하게 된 것은 은희언니 때문이었습니다은희언니는 새해를 맞아 제가 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후원자를 소개해주고 싶어 여고 시절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금자언니를 소개했지요금자언니는 한강조합이 뭘 하는 곳인지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친구 동생이 환경을 지키는 좋은 일을 한다니까 바로 후원회원에 가입해 주셨습니다언니는 제주에서 꽤 큰 어린이집을 운영한다고 들었습니다그렇다 보니 여기저기서 후원요청을 해오는 곳들이 있고 웬만하면 흔쾌히 후원하신다지요.

 

좋은 일을 하니 도와달라.” 35년만에 연락이 닿은 언니에게 그렇게 막연히 말하는 것은 쑥스러운 일입니다그래서 이 편지를 빌어 한강조합 소개를 해볼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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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도 아시다시피 저는 중산간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어요시골에서 나고 자란 것이 뭐 그리 좋았겠어요궁핍한 살림에 끝도 없는 밭일노동은 주로 부모님의 몫이었지만 우리들도 예외는 아니었죠어린 시절의 시간은 언제 끝나나 싶게 지루하고 힘든 시간이었고사방에 펼쳐진 자갈밭과 나무들이 벗어날 수 없는 세계처럼 느껴졌어요어떻게든 공부를 해서 시골을 벗어나 육지로 가고 싶었어요.

 

공부를 해야 농사를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어요그래서 결국 스무 살에 서울에 올 수 있었고요그러나 서울이라는 곳은 너무 삭막하고무엇보다 공해가 심해서 시골 출신인 저에게는 숨이 막혔어요서울살이를 하고 나서야 제가 그렇게 지겨워했던 제주의 나무들곶자왈 숲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지 깨달았습니다.

 

서울생활이 길어질수록 제주도가 그리웠습니다곰곰 생각해보면 그 그리움의 실체는 제주의 사람들보다는 자연이었어요팽나무와 소나무꾸지뽕나무와 찔레덩굴여름철 인동꽃과 가을 억새들이 그토록 저를 편안하게 해주었다는 것을그것들이 없는 도시에서야 깨달았어요저의 인성의 근간인 선함도 바로 그 자연에서 배운 것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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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한 도시에서 살며 어른이 되고서야 자연에게 보답해야겠구나 싶었습니다그런 마음으로 환경단체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하고아직 가난한 유학생 신분일 때에도 5천원씩 환경단체 후원을 시작했어요결국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며 자연에게 받은 은혜를 갚고자 살아온 삶이 지금 한강조합 일로 이어졌습니다.

 

2018년부터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창립을 시작으로 이제까지 일해오고 있습니다한강에서 하고 싶은 일은 제가 제주의 자연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강의 자연성을 회복하고강에서 노는 문화를 만들며강 덕분에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것이죠.

 

아이가 어렸을 때 자장가로 가장 많이 불러줬던 노래가 김소월의 시로 만든 엄마야 누나야였어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이 노래를 부르노라면 제 마음도 그렇게 편안해질 수가 없었어요자연 가까이에 있으면 우리는 절로 평안해지고 행복해지는 게 아닐까자연 그 자체가 우리 고향이고우리는 끝없이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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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는 여의도에 있는 여의샛강생태공원을 조금 더 자연스러운 공원생태가 살아있는 공원으로 만들어가는 일을 합니다이 곳에서 축제를 열고 인문학 공부를 하기도 하고요한강하구 장항습지 같은 데서 쓰레기를 치우는 일도 몇 년 했어요강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강길을 걷는 것도 하고요대단한 일은 아니지만사람들이 모여 강과 자연을 가꾸고자연과 가까이 사는 문화를 만드는 일을 해내가고 있습니다.

 

저는 설 명절을 맞아 제주의 가족들을 만나러 지금 제주에 와 있습니다낙천리에 가서 여전히 마을을 지키는 동백나무팽나무들과 눈인사를 나누었습니다그리고 눈이 많이 내리긴 했지만 한라수목원과 솔오름 같은 데도 걸었습니다숲에서 갖은 새들과 노루들을 만나며숲이 키우는 무수한 생명들을 생각했습니다.

 

제주를 떠나 서울에서 살지만저는 한강조합을 통해 강과 자연을 지키는 일을 꾸준히 해나가려고 합니다이번에 금자언니께서 후원자가 되어 주신 것은 바로 이런 일을 응원해주신 것이죠.

 

금자언니그리고 역시 이번에 후원자가 되어주신 저지리 경렬언니고맙습니다앞으로 한강조합이 하는 일들을 찬찬히 말씀드릴게요그 응원이 막연히 친구 동생이 좋은 일 하니 도와준다.”가 아니라구체적으로 보람을 느끼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세월이 흘러 한강에서 다시 만나서 반갑고 감사합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2023.01.26

한강조합에서 은미 드림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동로 48 여의도샛강생태공원 방문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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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계좌사회적협동조합 한강우리은행 1005-903-60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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