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187_까치와 알바트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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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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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187_
까치와 알바트로스, 두 엄마
#알바트로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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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알바트로스' 한 장면. copyright 크리스 조던)  
 어미 새가 새끼 새에게 입에서 입으로 먹이를 줍니다새끼를 위하여 엄마는 멀리 16000km를 날아 먹이를 구해옵니다그렇게 어렵게 얻어온 먹이를 속에서 게워내어 꾸역꾸역 넣어줍니다부숭부숭 잔털이 난 새끼 새는 한껏 부리를 벌리고 엄마가 주는 것을 먹습니다.

 

보름 전에 크리스 조던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알바트로스>를 보았습니다고양시에 사는 한강 조합원들을 위한 영화 상영회가 있어 보게 된 것이었어요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몇몇 관객들의 얼굴은 눈물로 붉어졌습니다영화는 슬프면서도 아름다웠습니다어떤 죽음들에 대해 애도하기 위해 크리스 조던은 영화를 만들었는데, “애도는 분노나 절망이 아닌 사랑이라고 한 말이 마음에 닿았습니다.



북태평양의 작은 섬 미드웨이에는 백만 마리 이상의 알바트로스가 살고 있습니다. 크리스 조던은 2009년부터 8년간 이 섬을 오가며 알바트로스의 삶을 카메라에 담고 기록합니다. 새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로 탄생합니다. 

알바트로스는 쉬지 않고 비행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바다 위를 날며 바다 표면에 떠있는 먹이를 빠르게 낚아채듯이 얻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얻은 먹이를 다시 먼 바다를 날아 돌아와 새끼에게 먹입니다. 그런데 먹이 속에는 형형색색의 플라스틱이 섞여 있습니다. 새끼는 뭣도 모르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고스란히 받아먹습니다. 섬의 해안가에서 죽은 알바트로스의 사체를 갈라보니 배에는 플라스틱이 가득합니다. 알바트로스는 멀리 날아가야 하는 숙명을 가진 새인데, 플라스틱으로 채워진 새는 날아가지 못하고 죽습니다.  

영화를 보고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새의 죽음을 애도하고, 우리의 삶을 반성했습니다. 우리가 만든 쓰레기로 무고한 새들이 죽는 것을 목도했기에 은근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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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물의날 기념 샛강 하천대청소)  
지난 3월 22일은 세계 물의 날이었습니다. 저희 한강조합은 물의 날을 기념하여 주말이었던 25일에 하천대청소를 실시했습니다. 하천대청소는 3년째 하고 있는데 올해는 여의샛강생태공원과 중랑천 두 곳에서 각각 했습니다. 여의샛강에서는 200명 가까이, 그리고 중랑천에서는 1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강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했습니다. 청년 봉사 동아리들도 많았고, 온가족이 전부 참여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샛강에서는 국회 앞쪽에 사람들이 투기한 쓰레기들이 엄청났고, 창포원에는 강을 따라 흘러온 부유쓰레기가 묵혀 있었습니다.

국회 앞쪽에는 버스나 차를 세울 수 있는 갓길이 있는데, 어떤 차들은 아예 작정하고 쓰레기를 갖고 와서 던지는 모양입니다. 이 날도 한창 청소를 하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자원봉사자에게 “여기 버려도 되냐”고 물으며 놓고 가는 어이없는 일도 있었습니다. 중랑천의 경우 강변 흙 사이에 묻히거나 버드나무에 걸린 낡은 쓰레기가 은근히 많았습니다. 저도 중랑천 청소에 참여했는데 장바구니에 가득 채울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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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한 중랑천 하천대청소)  

이렇게 하천 쓰레기를 치우며 영화에서 본 알바트로스를 생각했습니다사람들이 무심코 버린 쓰레기들은 강을 타고 흘러 바다로 나갈 것이고그중 어떤 쓰레기는 바로 그 알바트로스의 뱃속으로 들어갈 지도 모른다고어쩌면 우리가 쓰레기를 주움으로써 한 마리 새의 목숨을 구했을지도 모른다고  

#까치 엄마
막막하고, 당황스럽고, 이내 슬프지 않았을까.  
한 엄마의 마음을 상상해 봅니다. 

지난 주 있었던 일입니다. 염키호테 대표님은 기분좋게 출근하고 있었어요. 봄날이고 날씨도 좋아 어쩌면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 아파트에서 커다란 나무를 자르는 현장을 보았습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눈살을 찌푸립니다. 저 멀쩡한 나무를 왜 자르나. 나무 위에는 까치집도 보입니다. 그는 포크레인 밑으로 성큼 다가갑니다. 잠깐만요. 새집이 있잖아요. 새가 있는지 확인했어요? 봤냐고요? 당연히 먼저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이라도 확인하세요. 어서요. 

커다란 느티나무. 아파트에서 자르라고 해서 자르는 것이라 멈출 수 없다고, 포크레인 기사와 인부들이 대답했습니다. 나무 끝에는 까치집이 위태롭게 걸려 있습니다. 실랑이 끝에 그는 새집을 조심해서 내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잘린 나무와 함께 땅에 내려진 새집은 무척 컸습니다. 그는 무거운 그것을 낑낑 들고 사무실로 가져옵니다. 새집 안에는 채 온기가 가시지 않은 알이 일곱 개 있습니다. 새알을 조심스레 꺼내 손수건에 쌉니다. 서울시야생동물센터에 가져다주면 부화를 시켜본다고 합니다. 빈 둥지 바닥은 보드랍습니다. 알을 보호하려는 어미 새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아침 잠시 집을 비운 사이집도 새끼들도 사라졌다면 그 마음은 어떨까요엄마 새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사람들이 나무를 베어내는 동안엄마 까치는 근처에서 까악까악 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까치를 위하여 항변하고무거운 새집을 안고 온 염키호테 님이 고맙습니다새알을 수건에 싸고 바구니에 담아 가져가는 그 마음 덕에 우리들도 뭔가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어요.

 

여의샛강센터에 오시면 커다란 까치집을 구경하실 수 있습니다정교하고 아름다운 집입니다이제 벚꽃도 벌써 한창이네요꽃이 지기 전에 봄나들이 하셔도 좋겠습니다.

 

까치집과 벚꽃이 있는 샛강에서

2023.03.29

한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