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188_꽃과 나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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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3-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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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188_
꽃과 나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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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윤중로 벚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온다니 꽃 지겠다

 

진종일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듣던 아버지가

오늘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박준 시 생활과 예보’)

  

#박상수 씨의 꽃

한강 선생님들께,

 

오래 기다린 고마운 비가 내립니다서울은 새벽에 많이 내렸고 지금도 계속 내리고 있네요.

비에 젖어 초록빛이 더욱 생기를 뿜는 샛강숲을 바라보며 편지를 씁니다.

 

여의도 윤중로 벚꽃이 벌써 며칠 전부터 지기 시작했습니다지난 주말이 절정을 이루었고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자취를 감추어 바닥에만 분홍 꽃잎들이 쌓이거나 날리고 있네요올해는 여느 봄보다 벚꽃이 빨리 핀 해였습니다그나마 남아 있던 꽃잎들도 오늘 비에 다 떨어질 것 같아요.

 

지는 벚꽃에 아쉬워하며 비 온다니 꽃 지겠다” 하고 중얼거리듯 말했을 박준 시인의 아버지 박상수 씨의 마음을 느껴봅니다시인의 늙은 아버지는 진종일 마루에 앉아서 가만히 밖을 바라보다가 꽃이 지는 일에 마음이 갔을 것입니다따스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한 말입니다.

 

꽃이 피기 시작하자 여기저기 주위 분들에게도 벚꽃 나들이 오라고 말을 했습니다벚꽃 축제 기간이 9일까지이니 이번 주말까지 반갑게 손님들을 맞고 벚꽃과 샛강 구경을 시켜드릴 작정이었어요그런데 너무 빨리 지고 말았으니 벚꽃 구경은 무색하게 되었습니다윤중로에  발 디딜 틈이 없이 가득 찼던 인파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네요하지만 누군가 말하더군요벚꽃은 지지만 이제 다른 꽃들이 피어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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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 덩굴 뒤로 복사꽃이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샛강숲에도 벚꽃과 명자나무살구나무앵두꽃은 이미 피고 졌습니다대신 조팝나무라일락복사꽃은 한창 피어나고 있어요어제는 산책하다가 복사꽃이 너무 고와서 한참 나무 앞에 서 있었습니다꽃만이 아니라 기다란 초록 줄기를 늘어뜨린 버드나무나 줄지어 새순을 낸 찔레 덩굴도 아름답습니다.

 

오늘은 식목일이기도 해서 아침부터 민팃 기업 임직원 자원봉사가 있었습니다비가 와서 활동하기에 불편했을 텐데 아랑곳하지 않고 다들 숲의 나무들을 돌보는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덕분에 어린 나무들이 더 잘 자라고 더 푸르러질 것입니다나무들도 편안하고나무에 깃대어 사는 새들도 즐겁고아름다운 숲을 걷는 우리들도 행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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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일을 맞아 비가 오는 날씨에도 기업 임직원들이 숲 가꾸기 자원봉사를 진행했습니다.)  

#류이치 사카모토 씨의 나무

언제 죽더라도 후회가 없도록 부끄럽지 않은 것을 좀 더 남기고 싶습니다.”

류이치 사카모토 씨의 말입니다저는 이 말을 어제 저녁 KBS1 라디오 세상의 모든 음악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DJ 전기현 씨가 지난 3월 28일 돌아가신 류이치 사카모토를 추모하며 들려준 말입니다.

 

저도 류이치 사카모토 씨의 별세 소식을 듣고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그는 아름다운 음악을 우리들에게 남겨주었으며음악만이 아니라 삶을 통해 많은 영감을 준 분이었습니다그는 반전 평화운동에도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환경운동가이기도 했다는 것은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한겨레신문은 4월 3일자 기사에 그에 대해 이렇게 적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을 12주년을 맞은 지난달에는 도쿄신문에 글을 보내 일본 정부의 원자력발전소 재운영 정책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생전에 삼림 보전단체 ‘모어 트리즈와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 어린이들에게 음악교육을 하는 ‘도호쿠 유스 오케스트라를 설립하기도 했다.’ 

 

More Trees. 그가 설립한 단체 이름이라고 하네요말 그대로 좀더 많은 나무를’ 심자고 하는 뜻일 것입니다나무는 단순이 탄소 저감과 지구온난화 대응과 같은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나무는 그 의젓함과 아름다움으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며나무 아래 서면 절로 사색에 잠기게 합니다나무는 살아가는 일에 대해 멈춰 생각하게 하며인생에서 좋은 것들선한 것들을 가늠해 보게 합니다.


저희 한강조합은 매일이 식목일입니다오늘만이 아니라 언제라도 계속 나무를 심고 돌보려고 합니다그런 시간을 통해 나무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우리들도 같이 자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끄럽지 않도록후회 없도록당신이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어제 라디오에서 들은 이 질문을 오래 간직하려고 합니다한강조합의 일을 하며또 일상을 살며이 질문에 대답해 나가야겠습니다.    

 

한강조합은 숲을 가꾸는 자원봉사와 강의 쓰레기를 줍는 일들은 계속 해나갑니다이 봄의 꽃과 나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면 같이 동참하셔도 좋겠습니다.

 

꽃비 내리는 샛강숲에서

2023.04.05

한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