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191_수라, 사랑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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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3-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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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191_수라, 사랑 노래
환경운동에 관심이 있거나 과거 참여해온 사람들이라면, ‘새만금’이라는 이름은 각별한 회한과 슬픔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제 그마저도 흘러간 강물처럼 희미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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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라' 한 장면. c. 황윤)  
지난 주에 황윤 감독의 영화 <수라>를 보았습니다. 자연의벗연구소와 저희 사회적협동조합한강, 노을공원시민모임 그리고 중랑천환경센터가 함께 공동 시사회를 연 덕분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서야 수라가 새만금에 있는 갯벌 지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여전히 새만금을 잊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거기, 아직도 지킬 것이 있었나?  
저는 새만금 하면 우리 엄마가 떠오릅니다. 엄마는 저의 아이를 키워주시느라 오래 서울살이를 했습니다. 2006년 새만금 마지막 공사가 한참이던 때, 환경단체들은 새만금을 살려달라는 SOS 퍼포먼스를 했어요. 저는 당시 시간이 안 되어 엄마더러 가주십사 부탁했습니다. 한 명이라도 사람 수를 보태고 싶어서 그랬지요. 엄마는 선선히 가시겠다 했고, 낯선 이들 (대부분 엄마보다 훨씬 젊은 이들) 사이에 끼어 버스를 타고 새만금을 다녀왔습니다. 

그 날 따라 날씨가 몹시 추웠습니다. 갯벌 한복판에 모인 사람들에게 찬 바람이 여지없이 파고 들었다고 해요. 엄마는 노란 손수건을 흔들며 새만금을 살려내라고 목청을 높이셨습니다. 너무 추웠던 날이라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 무척 미안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추위에 떨며 시위에 참여했던 당신은 갯벌을 지켜야 한다고, 집에 와서도 성성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제주 탑동 바다도 메워 놓고 나니 바다가 다 죽었다며, 매립은 바다를 죽이는 일이라고, 제주에서 평생 농사만 짓던 엄마는 말씀하셨습니다. 

새만금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끝나고 나서 새만금은 선거철 같은 정치 계절에 종종 등장했고, 저는 이후 그 곳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이 활동한다는 소식은 어렴풋이 들었지만, 이미 죽음의 땅이 된 갯벌이라고 부질없이 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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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직원들은 유유자적 데이 행사로 수라 단체 관람을 했습니다.) 
#수라 시민과학자 오동필 씨
영화 <수라>는 남들이 다 죽어버린 땅이라고 생각하는 갯벌에서 남아있는 새들과 조개를 기록하는 한 시민과학자에서 출발합니다. 오동필 씨. 선반 제작과 같은 이런저런 일을 해서 생계를 이어가는 생활인인 그는 평생 수라 갯벌의 생태를 조사하는 시민과학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수라의 멸종위기 생물들을 찾고 기다리고 기록하지요. 알을 품는 검은머리갈매기나 어린 새끼를 돌보는 쇠제비갈매기의 모습에서 부모의 사랑을 느낍니다. 작은 날개 죽지를 펴고 아장아장 모래 위를 걷는 아기새의 모습에 관객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응원하게 됩니다. 잘 걷고, 잘 먹고, 잘 살아내기를 바라죠. 

그동안 죽은 줄만 알았던 갯벌에서 그토록 많은 생명들이 포기하지 않고 생을 이어왔다는 사실. 물을 기다리며 오랜 시간 버텨왔던 조개들, 해마다 돌아와 새끼들을 키워내는 새들, 그렇게 자연의 경이와 아름다움을 기록하고 지켜본 오동필 씨의 노력은 아들 승준에게도 이어집니다. 
2022 서울독립영화제 예심위원 김영우 씨는 영화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무엇보다 영화에 담긴, 인간의 천박한 욕망 따위가 해할 수 없는 자연과 생명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심장박동처럼 펄럭이는 도요새의 군무가 선사하는 황홀하고 경이로운 이미지가 스크린을 압도하고 가슴을 두드린다.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하는 힘겹지만 정의로운 여정에 함께 나서자고 제안하는, 백 마디 말보다 강한 파동과 울림.’ 
아름다움을 본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죠. 그나마 살아남아 생명들을 품고 길러내는 수라 갯벌이 미군 비행장 공사로 파괴되지 않도록, 사람들은 생명 운동에서 평화 운동으로 이어갑니다. 군산에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황윤 감독은 스크린에 아들 도영의 모습도 종종 담습니다. 그가 갯벌에서 노는 아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린 아가새의 걸음걸이를 지켜보는 쇠제비갈매기 엄마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무수한 동물들과 사람들이 수라 갯벌에서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왜 영어 제목이 ‘Sura, a Love Song’인지 이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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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 수달 똥 냄새를 맡는 염형철 대표와 신입활동가 K. 염대표는 수달 똥 냄새를 기억해두면 수달이 있는 어느 강에서라도 수달 냄새를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강 시민과학자 K 
이번 주에 우리 한강조합에도 젊은 시민과학자 K가 합류했습니다. 중랑천이나 한강 여러 곳에서 수달이나 새를 관찰하고 조사하던 청년입니다. 그는 우리 한강 강생태부 활동가로, 수달을 보호하고 알리는 일, 하천 생태계를 조사하고 가꾸는 일을 지원합니다. 

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기록하게 될 아름다움, 그가 듣게 될 사랑 노래가 기대됩니다. 이처럼 여전히 갯벌이나 습지를, 그 곳에 살아가는 생명들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힘겨운 환경 속에서도 생명의 의지를 놓지 않는 생명들에게 닿아 힘을 북돋아 줍니다.  

주말이면 숲이나 강가로 나가셔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시면 어떨까요. 사랑의 노래를 들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샛강에는 이틀 전에 올 봄 첫 청둥오리 아가들도 태어났습니다. 청둥엄마가 아가들을 데리고 다니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벌써 3년째 저희는 샛강에서 첫 청둥오리 가족이 탄생하면 축하하곤 합니다. 철쭉과 사철나무 잎사귀로 장식한 금줄도 치고 보호하죠.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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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여전히 쌀쌀합니다.  

건강하시고 아름다움을 보는 일상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2023.04.27 한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