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공원에서 열린 노자 교실, 놓쳤다고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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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등록일22-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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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김영 지음 '생태 위기 시대에 노자 읽기'

김영 교수를 처음 만났을 때 백발이 성성한 풍모에 도인 같기도 하고 과거에서 온 현인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평생 한문학을 하신 분이라 학식과 위엄의 깊이가 대단할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이내 유머러스 하고 활기찬 말투, 마스크도 가릴 수 없는 눈웃음으로 오래 알아온 동네 어르신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2021년 봄 그를 만난 것은 필자가 일하고 있는 여의샛강생태공원을 '인문의 숲'으로 만들고자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팬데믹 위기 속에서 '코로나는 멀리, 자연은 가까이' 슬로건으로 시민들을 생태공원으로 초대했다.

그렇다면 자연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냥 산책하며 꽃이 피고 나무가 푸르러지는 계절의 변화만 즐겨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에 더해 자연 속에서 공부하며 우리 삶을 성찰하는 기회를 가진다면 어떨까?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을 계기로 그동안 인류가 저질러 온 반자연적 삶의 행태, 과잉 생산과 무절제한 소비, 과도한 에너지 사용과 자동차 및 비행기 운항 폭증, 곤충과 미생물의 서식지인 숲과 생태계에 대한 일방적 약탈,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인위적인 유전자 조작 등 기존의 문명과 생활관습을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 <생태 위기 시대에 노자 읽기>  20p
 
김영 교수는 국문학을 공부하고 2018년 인하대에서 정년 퇴임까지 한문학을 평생 가르쳤다. 퇴임 이후에도 읽고 쓰고 실천하는 삶은 멈춤이 없었다. 매일 걷는 동네 안양천 산책이 큰 즐거움이라는 그가 도심 속 원시 자연이 살아 있는 여의샛강생태공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숲 속에서 노자를 가르치고 싶노라고 먼저 제안을 해주셨다.

코로나 거리두기를 위해 내친 김에 야외 노자 교실을 만들었다. 몇 년 전 태풍 링링 때 쓰러졌던 커다란 버드나무 둥치를 잘라 의자를 만들고 서로 둘러 앉을 수 있게 했다. 그렇게 해서 2021년 봄과 가을에 소수 학생들을 모아 '노자생태교실 – 샛숲에서 노자 읽기'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20대 청년부터 60대 신부님까지 다양했다. 그 수업의 결실로 엮어낸 책이 바로 <생태 위기 시대에 노자 읽기>이다.
 
김영 저 <생태 위기 시대에 노자 읽기>
▲ "생태 위기 시대에 노자 읽기" 책이 나왔다  김영 저 <생태 위기 시대에 노자 읽기>
ⓒ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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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책의 '글머리에' 적은 것처럼 이 책은 노자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가 아니다. 그동안 노자를 공부하면서 강의해 온 내용을 정리한 교양서라 할 수 있다. 그의 간명한 풀이 덕에 고문이라 하여 접할 생각조차 안 하던 필자 같은 사람도 쉽게 노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가장 훌륭한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남과 다투지는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이런 사람은) 살아가면서 땅처럼 낮게 처하기를 잘하고, 마음 씀씀이는 연못처럼 깊으며, 이웃과 사귈 때는 사랑을 잘 베풀고, 말을 할 때는 믿음성 있게 하며, 정치를 하면 잘 다스리고, 일을 할 때는 능하게 처리함, 행동할 때는 때를 잘 맞춘다. 오직 다투지 않으므로 허물이 없다. - <생태 위기 시대에 노자 읽기>  58p
 
여의샛강생태공원을 걷다 보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끊임없이 흐르는 물을 볼 수 있다. 그 물은 흘러흘러 서해 바다까지 가 닿는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上善若水)', 흐르는 강을 보면 겸손하고 자연스럽게 살라는 노자의 가르침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또한 노자가 말한 세 가지 보물이 있는데 이 시대 곱씹어봐야 할 말이 아닌가 한다.
 
나는 세 가지 보물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을 잘 보존하고 있다. 첫째는 사랑이요, 둘째는 겸손함이요, 셋째는 감히 세상에서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 <생태 위기 시대에 노자 읽기> 193p
 
혐오와 편견이 우리 사회를 갈라 세우는 요즘, 노자가 말하는 사랑과 겸손과 소박함이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많은 생명이 서로 돕고 어울려 살아가는 자연을 보노라면, 우쭐대거나 남을 미워하거나 할 것이 뭐가 있을까 싶다. 그저 모든 게 고맙고, 약동하는 생기는 아름답다.
 
생태적 삶을 위해서는 우선 사람과 인간이, 인간과 자연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자연이 병들면 인간도 병든다는 자각이 필요하고, 천하 만물은 모두 인연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할 줄 아는 영성의 회복이 급선무다. - <생태 위기 시대에 노자 읽기> 24p
 
올 봄엔 여의도 벚꽃길이 3년 만에 개방될 예정이다. 벚나무들도 꽃을 피울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다른 모든 나무들도 풀들도 그러하다. 샛강숲의 버드나무들은 나날이 짙은 초록 빛을 피워 올리고 있다. 찔레와 명자나무도 작고 푸른 순을 착실하게 내고 있다.
 
지난 3월 26일 김영 교수를 모시고 저자와의 대화를 가졌다.
▲ "생태 위기 시대에 노자 읽기" 저자와의 대화  지난 3월 26일 김영 교수를 모시고 저자와의 대화를 가졌다.
ⓒ 조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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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명이 약동하는 봄의 자연 속에서 노자의 말씀처럼 생태적 삶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뎌보자. 김영 교수와 그의 학생들은 작년 노자생태교실에서 공부한 다음 항상 숲을 산책하고 숲을 위한 봉사도 했다. 그들이 심어둔 회화나무가 올 봄에는 더욱 뿌리를 깊이 내릴 것이다.
 
ⓒ 오마이뉴스  22.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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