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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365 💌 나는 새집

2026-08-27
조회수 79
나에게도 화양연화 시절이 있었지. 버드나무 물이 오르고 연초록 잎사귀들이 돋아나던 봄이었어. 그 봄에 나는

은미씨의 한강편지 365 💌 나는 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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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화양연화 시절이 있었지버드나무 물이 오르고 연초록 잎사귀들이 돋아나던 봄이었어그 봄에 나는 숲에 살았지봄의 기척냄새감촉을 느끼며 알 수 없는 설렘에 가슴이 천방지축으로 뛰곤 했지내 존재 이유는 뭘까나는 어쩌다 이 숲에 오게 되었을까내 삶이가치있는 삶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은 긴긴 봄밤에도 이어졌지어디선가 연분홍 꽃잎이 바람결에 날아오기도 하고낭창낭창 부드러운 버들가지가 내 앞에서 바람 따라 흔들리던 그런 밤에도어느 봄날 박새 한 마리 나에게 날아왔지나에게 작은 두 발을 걸치고 갸우뚱하는 표정으로 탐색했지나는 시치미를 떼고 모른 체 했지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어단번에 너무 많은 마음을 내어주면슬픈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너에게 반해서 온통 마음을 주었는데너는 그냥 훌쩍 날아가버릴 수도 있으니까너는 새이고자유로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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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집나의 운명은 어느 순간 나무의 숙명을 닮았지얕은 강이 흐르는 그 숲에서 튼튼하게 자란 뽕나무 굵은 둥치 위로 갈라진 가지 사이나는 놓여졌지허리와 등은 단단한 끈으로 나무에 묶였어이내 우리는 체온을 나누었지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편안한 온기나무 자체의 은근한 체온또르르 촤르르 사악사악 삐이삐이 숲에서는 끝없이 소리와 기척이 있지만 나무 위에서 나는 꿈을 꾸며 자곤 했어

나는 새집나의 운명은 어느 순간 나무의 숙명을 닮았지얕은 강이 흐르는 그 숲에서 튼튼하게 자란 뽕나무 굵은 둥치 위로 갈라진 가지 사이나는 놓여졌지허리와 등은 단단한 끈으로 나무에 묶였어이내 우리는 체온을 나누었지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편안한 온기나무 자체의 은근한 체온또르르 촤르르 사악사악 삐이삐이 숲에서는 끝없이 소리와 기척이 있지만 나무 위에서 나는 꿈을 꾸며 자곤 했어

작은 새의 몸조차 커다란 우주 같구나나는 그런 생각을 했지작은 새의 작은 구멍이 열리고작은 알들이 하나씩 그 몸에서 밀려 나올 때나는 숨을 죽이고 어쩐지 긴장이 되었지숲길을 지나며 떠드는 사람들이 야속했지잠잠히 지나가요지금 박새가 알을 낳으니까요하지만 그들은 내 말을 듣지 못하지

샛강 겨울이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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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작은 알들은 껍질을 깨고 나왔지엄마의 헌신과 사랑으로 아가들은 잘 자랐지엄마가 벌레를 물고 돌아올 때마다 내 몸은 얼마나 들썩이는지나는 기뻐서 간질간질 재채기가 나올 것만 같았지내 안에 깃든 그들과의 시절이 내 삶의 화양연화벚꽃이 지고 라일락이 피기 시작할 때 그들은 내 곁을 떠났지

모두가 떠나고 빈 집으로 지냈지몇 달이 지났을까어떤 손길이 나를 데려갔지샛강센터 지하 구석에서 나는 다른 새집들과 같이 선반에 놓였지아랫단에는 삽과 갈퀴 같은 것들이 있었고그곳에서 기다렸어겨울이거나 초봄이 되면 다시 나를 숲 속으로 데려다주기를 바랐어새단장을 해서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고 싶었지하지만 겨울에도 새로운 봄에도 뜨거운 여름에도 내내 그곳에 있었지아무도 나에게 오지 않았지아이들의 떠들썩함도 어른들의 분주함도 더 이상 없었지그 창고에서 길고 지루한 날들을 살았지먼지 더께가 내 위로 쌓이고 나는 남루하고 더러워졌지어린 박새들의 지저귐엄마 박새의 온기를 품고 살았던 시절은 아득히 꿈만 같았지

며칠 전 갑자기 창고의 문이 열렸어어떤 남자가 내게 다가왔지어딘가 익숙한 얼굴이야지난 봄에 내가 살던 숲속에 자주 찾았던 그 남자였어그 남자는 슬픈 얼굴을 하고 있더군내 아래 삽과 갈퀴를 꺼내 치우던 그는 나를 바라보았어머뭇거리던 그는 내 머리의 먼지를 쓸었지그리고 소중한 것을 안듯이 두 손으로 나를 옮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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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다시 새들이 사는 숲으로 가게 될까다시 어린 새들의 작은 기척을뛰노는 심장을노래를 들을 수 있을까

나는 삽 

6년 동안 샛강에서 일했어내 숙명이 노동이지만 이곳에서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봄여름가을겨울 언제나 일을 했어쉬지 않았지

나는 삽. 2019년 봄에 처음 샛강에 왔지당시 노을공원시민모임 강덕희 국장이 샛강에도 나무를 심겠다는 한강조합을 위해 보내준 200개의 삽 중에 하나가 나였지

봄부터 가을까지는 땅을 자주 팠어어린 나무들을 심었지폭우에 망가진 길을 고치거나 강물에 부유 쓰레기가 많을 때도 나는 일했지샛강 뽕나무숲에서는 강물에 세굴되어 뿌리가 드러난 나무를 위해서도 일했어부지런히 흙을 날랐지무척 고된 일이었어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6년은 금새 흘렀어하지만 놀라워라황량하던 그곳에 아름드리 나무들이 우거지고 원시 자연이 살아있는 비밀의 숲이 되었지내 삶은 그 숲의 일부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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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옆에서 트럭에 흔들리며 가고 있는 갈퀴도 마찬가지야무척 덥던 여름에 사람들이 그와 함께 덤불 속으로 들어갔어갈퀴와 낫을 들고 가시박 줄기를 걷어내고 잘랐지내가 심고 키운 나무들을 살려주기 위해서였지앞장서던 어느 여자는 벌에 두 방 쏘이며 눈이 퉁퉁 부어 물러났지

우리는 모두 오랜 동안 영문도 모른 채 컴컴한 지하창고에 갇혀 있었어그리고 며칠 전 샛강을 영영 떠나게 되었지우리는 이제 어느 강에서 누구를 만나게 될까

안녕 샛강 

오늘 샛강센터에서 짐을 뺐습니다지난 화요일에 이어 두번째 짐입니다봉고트럭의 바닥을 채운 정도 분량입니다특히 오늘 물건은 샛강시민들이 공원을 가꿀 때 쓰던 것들입니다서울시는 '샛강시민'을 우리 조합의 소속 모임이라면서 이들 짐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치우라고 해서 그리한 것입니다

마음같아서는 하나라도 덜 들고 오고 싶은데먼지를 탱탱 뒤집어 쓰고 있는 삽이며 새집 같은 걸 버려두기도 그래서 제법 들고 왔습니다. (그래봐야 전체의 1/20에도 미치지 못하고대부분 과거부터 있던 것들인데 이를 문제 삼으니 치운 것입니다.)

이렇게 샛강센터와의 관계를 다시 한번 정리합니다.

이렇게 한강조합의 한 장이 넘어 갑니다한강조합 8주년 되는 날에

우리는 괜찮습니다이기고 나갈 것이구요.

(2026.08.25 염키호테 대표님 페이스북 글 인용

안녕 샛강

2026.08.27 

샛강에서 살았던 삽과 새집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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