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에서
연휴 마지막 날 중랑천 강가를 다녀왔습니다. 한강 사람들이 가꾸고 지킨 생추어리를 걸었습니다. 꽃씨를 뿌려 키운 수레국화와 꽃양귀비가 곳곳에서 피어나 손을 흔들며 반겨주었습니다. 가시박을 걷어주고 가지를 정리해준 나무들은 키가 부쩍 자라 청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흐르는 강물이 반짝거리고 버드나무가 춤을 추었습니다. 한참 걷다가 아버지 의자에 앉아서 쉬었습니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니,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샛강을 지키느라 올 봄에 한 번도 아버지를 보러 가지 못했는데, 이 딸에게 서운하지는 않을지 염려스러웠습니다. 그저 할 수 있는 건 은덕언니에게 약간의 돈을 보내어 아버지에게 막걸리 따라드리라고 하는 것뿐… 올 봄에 샛강에서 싸우는 일을 했습니다. 정의롭지 못한 행정, 부당한 대우, 수많은 사람들이 쌓아오고 지켜온 가치를 함부로 내쳐버리는 일에 항의하기. 싸우는 사이 사이, 아버지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뭐라고 하실까, 아버지는 당신의 딸이 걱정되어 속상해하지는 않으실까. 은덕아, 인생은 흐름이 아니더냐. 어느 고적한 오후에 아버지가 언니에게 했다는 말. 그 말을 떠올리며 싸우는 건 그만해야지 마음먹었습니다. 대신 흐름대로 순리대로 그냥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샛강에서 그냥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만나고 공부하고 밥을 먹고, 때로는 샛강의 나무들과 풀을 살피고 쓰레기를 줍곤 하면서 지냅니다. 샛강지기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과 함께 그렇게 샛강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버이날을 보내며 꽃을 피우는 일에 대해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일곱 남매를 건강하게 잘 키워 각자의 삶을 반듯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당신들의 삶에서 어엿한 자식들이라는 꽃을 피워내셨습니다. 한강 사람들은 실제로 꽃을 심고 가꾸며 꽃을 피우는 일을 합니다. 그에 더해, 남들에게 지혜를 나누고 가르쳐주며 서로의 삶을 보살펴 줍니다. 샛강에 오셔서 시를 가르쳐 주신 나희덕 시인님, 논어 강의를 시작하신 김영 교수님 같은 분들도 꽃을 피우는 분들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분들과 매일매일 샛강에서 삽니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저도 꽃 몇 송이 피워내는 날도 있겠지요. 아름다운 것들을 지켜주며 다정하게 이 시간을 잘 살아보겠습니다. 애기똥풀 환하게 피어난 샛강숲에서 2025.05.08 한강 드림 |
[은미씨의 한강편지 297] 꽃을 피우는 어버이가 되어
아버지, 이거 뭔 나무꽈?
그거 먼나무
게난 뭔 나무꽈마씸?
먼나무!
예?
먼나무랜 허난…
먼나무 아래 앉으면 도돌이표 노래를 부르듯이 아버지와 먼나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뭔 나무와 먼나무. 아버지는 웃지도 않고, 이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했다. 우리들이 뒤늦게 알아듣고 웃으면 아버지도 슬쩍 따라 웃으셨다. 아버지 집 어귀에 먼나무가 심겨진 이후의 일이다. 아버지는 노년에 소일거리로 종종 조경 일에 따라 나섰다. 제주도에서는 한창 골프장이며 리조트에 먼나무를 많이 심었다. 겨울이면 붉은 열매를 가득 달아 새들을 부르는 먼나무. 언젠가 한 번은 리조트에서 창밖을 보는데 곳곳에 서 있는 먼나무 붉은 열매가 동백꽃처럼 보였다. 한참을 갸우뚱하며 동백꽃일까 아닐까 오래 보았다. 당시에는 먼나무를 몰랐다.
먼나무 잎이 조금씩 돋아나는 5월에 아버지는 갑자기 아팠다. 먼나무 꽃이 다 피기도 전에 아버지는 서둘러 떠나셨다. 병을 알게 되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6월의 일이다. 어느 날 외손자 진욱이가 할아버지를 보고 돌아가는 길에 말하셨다. 잘 가라. 나도 잘 가켜…
은덕아, 삶이란 흐름이 아니더냐. 서러워 마라.
그 해 유월의 어느 한낮, 아버지를 보며 애닮아 하는 언니에게 아버지는 말했다. 나는 지금도 이 말이 종종 떠오른다. 삶이란 흐름이 아니더냐…
#중랑천에서 아버지와
나 거기 가봤져. 의자에 앉앙 잘 쉬당 왔져. 강바람도 불엉 시원허곡 버드낭 살랑대며 흔들리난 보기 좋아라. 한 잔 해시민 시라도 읊어실 건디. 어떵 막걸리 한 잔 주크냐?
꽃도 하영 피어서라. 수레국화, 꽃양귀비, 데이지도 피고 나무들도 하영 커서라. 네가 팽나무 좋아하난 내가 하나 심어놨져. 곧 자랄 거난 나중에 팽나무 그늘 아래서 쉬곡 허라. 아방이 너에게 해주는 선물이랜 생각허라.
은미야, 여기 중랑천 강물 앞에 니도 앉아 보라. 강물은 계속 흐르지 않느냐. 순리대로, 강물이 흐르는 것추룩 인생도 그렇게 살면 된다. 너 어릴 때, 국민학교 3학년 때, 아무도 듣지 않아도, 이 연사 뜨겁게 외칩니다! 웅변하지 않았더냐. 그 정신으로, 계속 순리대로 니 갈 길을 가면 된다. 기죽지 말앙 건사하게 살아불라.
꽃이 하영 피엉 참 좋구나. 강물이 흐르듯이, 묵묵히 꽃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고 허는 니네 한강 사름들 잘 햄져. 경 해사 하는 거여. 정치도 한 때, 권력도 한 때, 인생무상 아니냐. 출세하곡 권세 잡는 것보다, 여기 꽃 심고 나무 심엉 좋은 일 하는 게 잘하는 거다. 이영 앉아 보라. 꽃은 피고 지고, 언제가는 다 떠나니 서러워 마라. 아방이 노래 하나 불러 보카? 들어보젠?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데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논어 강의하는 김영 교수님 ⓒ.김명숙)
#샛강에서
연휴 마지막 날 중랑천 강가를 다녀왔습니다. 한강 사람들이 가꾸고 지킨 생추어리를 걸었습니다. 꽃씨를 뿌려 키운 수레국화와 꽃양귀비가 곳곳에서 피어나 손을 흔들며 반겨주었습니다. 가시박을 걷어주고 가지를 정리해준 나무들은 키가 부쩍 자라 청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흐르는 강물이 반짝거리고 버드나무가 춤을 추었습니다. 한참 걷다가 아버지 의자에 앉아서 쉬었습니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니,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샛강을 지키느라 올 봄에 한 번도 아버지를 보러 가지 못했는데, 이 딸에게 서운하지는 않을지 염려스러웠습니다. 그저 할 수 있는 건 은덕언니에게 약간의 돈을 보내어 아버지에게 막걸리 따라드리라고 하는 것뿐…
올 봄에 샛강에서 싸우는 일을 했습니다. 정의롭지 못한 행정, 부당한 대우, 수많은 사람들이 쌓아오고 지켜온 가치를 함부로 내쳐버리는 일에 항의하기. 싸우는 사이 사이, 아버지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뭐라고 하실까, 아버지는 당신의 딸이 걱정되어 속상해하지는 않으실까.
은덕아, 인생은 흐름이 아니더냐. 어느 고적한 오후에 아버지가 언니에게 했다는 말. 그 말을 떠올리며 싸우는 건 그만해야지 마음먹었습니다. 대신 흐름대로 순리대로 그냥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샛강에서 그냥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만나고 공부하고 밥을 먹고, 때로는 샛강의 나무들과 풀을 살피고 쓰레기를 줍곤 하면서 지냅니다. 샛강지기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과 함께 그렇게 샛강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버이날을 보내며 꽃을 피우는 일에 대해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일곱 남매를 건강하게 잘 키워 각자의 삶을 반듯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당신들의 삶에서 어엿한 자식들이라는 꽃을 피워내셨습니다. 한강 사람들은 실제로 꽃을 심고 가꾸며 꽃을 피우는 일을 합니다. 그에 더해, 남들에게 지혜를 나누고 가르쳐주며 서로의 삶을 보살펴 줍니다. 샛강에 오셔서 시를 가르쳐 주신 나희덕 시인님, 논어 강의를 시작하신 김영 교수님 같은 분들도 꽃을 피우는 분들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분들과 매일매일 샛강에서 삽니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저도 꽃 몇 송이 피워내는 날도 있겠지요.
아름다운 것들을 지켜주며 다정하게 이 시간을 잘 살아보겠습니다.
애기똥풀 환하게 피어난 샛강숲에서
2025.05.08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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