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광나루 백사장에 수많은 사람이 강수욕을 즐기고 있다. 위쪽에 보이는 다리가 광진교다.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사진으로 보는 서울 4. 다시 일어서는 서울(1961~1970)』 2005.
1974년 한강 서울 광나루 유원지 수영장이 30만 피서 인파로 뒤덮였다는 기사에 실린 사진.
『동아일보』 1974.08.12
나의 엄마 문순심 여사님은 1939년생입니다. 80세가 넘으며 치매로 인해 많은 기억이 사라졌죠. 특히 가까운 기억들은 완전히 잊고, 오래 전 기억들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당신의 처녀 시절이나 우리 아이가 어렸을 때 기억들을 조각조각 꺼내어 말씀하시죠.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하는 엄마는 도돌이표처럼 질문을 해요. 그 중에 많이 물어보시는 게 어디 사는지, 용돈은 버는지, 지우는 몇 살인지, 장가는 갔는지 같은 것들이죠. 상암동에 사는 저는 엄마가 상암동을 모르실 터라 마포에 산다고 해요. 그럼 어김없이 엄마는 ‘마포 종점’ 못 사는 동네 산다고 혀를 차죠. (이젠 마포도 변두리 아니고 서울 중심이라고 아무리 해도 소용없어요.) 용돈을 버냐고 물으시면, 회사 사장님이라고 으스대죠. 몇 초 뒤에 까먹으실 테지만 그 단어를 듣는 순간 혹시 자랑스러우실까 싶어서 그렇습니다. 당신 삶이 보잘것없고, 당신 자식들도 잘난 것이 없다고 평생 생각하시는 분이니까요. 한번은 ‘한강’이라는 단어에 엄마가 물었어요. “한강에서 수영 햄시냐?”
엄마는 1960년대 한강이 지금 한강이라고 생각하고 말합니다. 스무 살 순심이는 제주도에서 서울에 올라와 청량리에서 일했어요. 방직 일을 했는데, 일을 잘해서 동생들과 사촌동생들도 서울로 올라와 다 공장 취직하게 알선했다고 자랑하죠. 순심이는 쉬는 날이면 한강으로 놀러가곤 했어요. 모래밭에서 놀고, 지금처럼 더운 여름이면 수영을 했나 봐요. 오랜 전 일이죠.
# 1968 한강
‘한강의 마음은 무얼까.
자연스럽게 수천 수만년 세월을 살아왔는데 수탈되고 빼앗기고 막히고 잘라내진 한강의 마음은 무얼까...
그런 한강의 수난사를 알게 되는 우리의 마음은 무얼까.
분노, 놀람, 슬픔, 연민... 그런 걸까.’
어제 김원 박사님의 책 <한강, 1968> (복원의 시대를 위해 돌아보는 1968년 이후 한강 상실의 이력) 북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책을 읽으며, 저는 강물처럼 출렁이는 여러 감정들을 느꼈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었나 봅니다. 염키호테 님도 후기에 이렇게 적으셨네요.
“책을 읽으면서 드는 감정은 경악 --> 분노 --> 슬픔 --> 오기의 순서로 커집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입니다.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의 끝을 봅니다.”
(행사 사회를 봤던 염형철 대표의 페이스북 글 인용)
특히 슬픔은 이 책을 읽는 이들이 대부분 느낀 감정이었나 봅니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 혜화1117 이현화 대표는 이렇게 썼습니다.
‘1968년 이후 한강의 변화 과정을 책으로 만드는 내내 나는 일종의 슬픔 모드였다. 개발의 시대를 거쳐오며 우리는 독재로 인한 많은 아픔을 겪었는데, 아픔을 겪은 건 우리만이 아니었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우리가 터를 잡고 살던 땅과 강이 파헤쳐지고 변형되면서, 우리의 국토는 훼손이 되었고, 그 상태로 살아오면서 심지어 우리는 그런 사실조차 잊고 산 것도 모자라, 뭘 잃었는지도 모른 채 그저 그 위에 분칠만 하고 살았다는 자각이 나를 내내 아프게 했다.’
(이현화 대표 페이스북 글 인용)
금빛 모래의 강, ‘천국의 향기’처럼 아름다운 한강이 수탈되고 파괴되는 1968년 이후의 기록.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책장을 다 덮으면 다른 감정과 마주하죠. 염대표님에게는 그게 오기였고, 저에게는 희망이었어요. 복원이든 회복이든, 모래밭이 펼쳐지고 여울지는 한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니까요.
김원 박사님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책 ‘오래된 미래’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강에게 과거보다 더 나은 미래는 없다!!
우리 한강조합은 한결같이 한강의 ‘오래된 미래’를 위해 일을 해나가겠습니다. 후덥지근하고 지치기 쉬운 여름, 건강 유의하세요.
은미씨의 한강편지 305_순심의 한강
“어디 살맨?”
“나, 마포 살맨.”
“마포 종점? 끝댕이 살맨?”
“이제는 마포 종점 끝댕이 아니우다.”
“아이고. 마포 종점 끝댕이 살암시민 막 못 살암구나.”
“아니야 엄마. 나 잘 살아요.”
“용돈 벌엄시냐?”
“(으스대며) 그럼요. 엄마. 나 한강 사장이야. 사장님”
“아이고. 사장이라? 그럼 돈이 질팍하구나. 나 껌값 만원만 보내라.”
“알았어요. 보내쿠다. 껌값”
“(웃으며) 되었져. 게난 어디 살맨?”
“마포 살맨”
“마포 종점 살맨? 못 살암구나.”
“아니야. 엄마. 이젠 마포 종점 아니야.”
나의 엄마 문순심 여사님은 1939년생입니다. 80세가 넘으며 치매로 인해 많은 기억이 사라졌죠. 특히 가까운 기억들은 완전히 잊고, 오래 전 기억들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당신의 처녀 시절이나 우리 아이가 어렸을 때 기억들을 조각조각 꺼내어 말씀하시죠.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하는 엄마는 도돌이표처럼 질문을 해요. 그 중에 많이 물어보시는 게 어디 사는지, 용돈은 버는지, 지우는 몇 살인지, 장가는 갔는지 같은 것들이죠. 상암동에 사는 저는 엄마가 상암동을 모르실 터라 마포에 산다고 해요. 그럼 어김없이 엄마는 ‘마포 종점’ 못 사는 동네 산다고 혀를 차죠. (이젠 마포도 변두리 아니고 서울 중심이라고 아무리 해도 소용없어요.) 용돈을 버냐고 물으시면, 회사 사장님이라고 으스대죠. 몇 초 뒤에 까먹으실 테지만 그 단어를 듣는 순간 혹시 자랑스러우실까 싶어서 그렇습니다. 당신 삶이 보잘것없고, 당신 자식들도 잘난 것이 없다고 평생 생각하시는 분이니까요. 한번은 ‘한강’이라는 단어에 엄마가 물었어요. “한강에서 수영 햄시냐?”
엄마는 1960년대 한강이 지금 한강이라고 생각하고 말합니다. 스무 살 순심이는 제주도에서 서울에 올라와 청량리에서 일했어요. 방직 일을 했는데, 일을 잘해서 동생들과 사촌동생들도 서울로 올라와 다 공장 취직하게 알선했다고 자랑하죠. 순심이는 쉬는 날이면 한강으로 놀러가곤 했어요. 모래밭에서 놀고, 지금처럼 더운 여름이면 수영을 했나 봐요. 오랜 전 일이죠.
‘한강의 마음은 무얼까.
자연스럽게 수천 수만년 세월을 살아왔는데 수탈되고 빼앗기고 막히고 잘라내진 한강의 마음은 무얼까...
그런 한강의 수난사를 알게 되는 우리의 마음은 무얼까.
분노, 놀람, 슬픔, 연민... 그런 걸까.’
“책을 읽으면서 드는 감정은 경악 --> 분노 --> 슬픔 --> 오기의 순서로 커집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입니다.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의 끝을 봅니다.”
(행사 사회를 봤던 염형철 대표의 페이스북 글 인용)
금빛 모래의 강, ‘천국의 향기’처럼 아름다운 한강이 수탈되고 파괴되는 1968년 이후의 기록.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책장을 다 덮으면 다른 감정과 마주하죠. 염대표님에게는 그게 오기였고, 저에게는 희망이었어요. 복원이든 회복이든, 모래밭이 펼쳐지고 여울지는 한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니까요.
김원 박사님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책 ‘오래된 미래’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강에게 과거보다 더 나은 미래는 없다!!
우리 한강조합은 한결같이 한강의 ‘오래된 미래’를 위해 일을 해나가겠습니다. 후덥지근하고 지치기 쉬운 여름, 건강 유의하세요.
고맙습니다.
2025.07.03
한강 드림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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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계좌: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우리은행 1005-903-60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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