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동의 딸. 매일 성동교를 지나죠. 성동교 아래에는 야트막한 강물이 흐르고 시린 발을 강물에 담그고
은미씨의 한강편지 336_성동의 딸, 성동교를 지나며
추위를 피하는 중랑천의 원앙들. ⓒ이영원
나는 성동의 딸. 매일 성동교를 지나죠.
성동교 아래에는 야트막한 강물이 흐르고 시린 발을 강물에 담그고 살아가는 새들이 있죠. 나는 매일 성동교를 지나며 걸음을 늦추고 그들의 기척을 살펴요. 겨울 강에서 자맥질을 하거나 때로 바람이 세면 구석에서 서로의 온기로 바람을 막아보려는 듯이 모여 있는 새들을 보죠.
입춘이던 어제 저녁에는 교육위원회 회의가 있었어요. 좋은 분들과 올해 새로이 할 사업들에 대하여 논의를 했어요. 이야기 중에 곽정난 선생님은 한강이 환경교육센터를 두 개나 맡고 있는 것이 놀랍고 대단하다고 말했어요. 진천군 환경교육센터에 이어 파주시환경센터 에코온까지 맡아서 하고 있는데 이렇게 두 개나 맡은 데가 거의 없다는군요. 한강이 샛강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새로운 모색을 하다 보니 중랑천, 진천 미호강, 파주까지 넓어지게 된 것이죠.
회의를 잘 마치고 느긋한 걸음으로 성동교를 지납니다. 입춘이라 그런지 매서운 추위는 잠시 주춤했죠. 그래서 걷기 좋았어요. 어둑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성동교 아래 옹기종기 머물고 있을 원앙, 청둥오리, 흰죽지, 청머리오리, 넓적부리, 비오리들을 생각했죠. 오늘 하루도 잘 살았지? 수고했다. 그건 새들에게 건네는 말이었지만 저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어요. 그러다 문득 다리에 써있는 ‘성동교’라는 글자가 마음에 들어왔어요. 성동구에 있는 다리니까 성동교일텐데,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이름도 성동이거든요. 조성동 아버지… 그래서 또 생각했죠. 성동의 딸이 성동교를 지나네. 성동의 딸이 성동에 살고 있네. 저 새들과 마음을 나누며 살고 있네…
성동교 위에서 바라본 여름의 살곶이 다리.
늦은 밤 집에 도착하니 또 제주도에서 과일 상자가 도착해 있습니다. 은덕언니가 이번에는 중학교 동창 영수 씨네 농장에서 따온 레드향이네요. 지난 여름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아직도 허리가 불편할텐데, 언니는 자꾸만 과일을 따서 동생에게 보내죠. 저는 귀한 제주 한라봉과 레드향 같은 것들을 쌓아놓고 먹는 호사를 누립니다. 동네 이웃들과도 나누어 먹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아요. 성동의 딸 은덕언니는 끝없이 가족들을 챙기죠. 동생이 일하는 곳이니까 한강을 후원하는 일도 수시로 하고요.
저녁 회의를 하는 사이 제주 언니들과의 단톡방에는 엄마 돌봄에 대한 대화가 오갔더군요.
“어머니와 관련해 요즘 생각이 많아젼… 마침 은희가 돌봄을 아침으로 하는 게 어떤가 말해서… 그동안 센터를 다녀온 후 옷 갈아 입히고 이 닦고 씻겨드리고 식사를 챙겨신디… 이걸 아침에 하면 허붕청 가지 않아도 될건디 싶엉 조금 아쉽던 차에…”
제주에 있는 언니들과 남동생들은 순번을 정해 엄마를 돌보죠. 서울에 살아 일상적인 엄마 돌봄에 참여하지 못하는 저는 늘 미안하기만 합니다. 그 대신 저는 한강의 생명들을 돌보는 걸로 미안함을 덜어보려고 합니다. 어둑한 성동교를 지나며, 아버지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 이만하면 잘 하는 거 닮수과?
랑랑이 얼굴만한 레드향.
# 독수리와 나
흘려 보내도 흘려 보내도 다시 밀려오는
저 아스라한 새들은
작은 밥상에 놓인 너무 많은 젓가락들 같고
삐걱삐걱 노 젓는 날개소리는
한 접시 위에서 젓가락들이 맞부비는 소리 같습니다
그 서러운 젓가락들이
한쪽 모서리가 부서진 밥상을 끌고
오늘 저녁 어느 하늘을 지나고 있는지
(나희덕 시 <기러기떼> 부분)
“이렇게 식구들이 자꾸만 늘어서 어쩌나요?”
지난 월요일 파주에 갔어요. 겨울이라 배고픈 독수리들에게 밥을 주러 갔지요. 독수리들에게는 돼지고기를, 큰기러기들에게는 볍씨를 뿌려줬어요. 그 날 같이 자원봉사를 하던 누군가가 저에게 말했어요. 한강에서 돌보는 자연의 식구들이 자꾸만 늘어나니 어떻게 다 먹여 살리겠냐고 웃음 어린 걱정을 해줬어요. 여기저기 수달들을 돌보고, 중랑천에서는 원앙과 철새들 밥을 주고 있는데, 올 겨울은 파주 공릉천 하구에서도 독수리들과 큰기러기들을 먹이니까요.
수레를 끄는 어린 봉사자와 그 앞을 잡아주는 어른 봉사자들. ⓒ김명숙
독수리들이 정말 밥 먹으로 올까? 들판에 고기를 뿌려주고 나서 푸르스름한 하늘을 바라보며 반신반의했어요. 미리부터 얻어먹으러 온 머리 좋은 왜가리 한 마리와 까치들만 법석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놀랍더군요. 논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먼 하늘에서 독수리들이 한마리 두마리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얼마 없어 스무 마리 가량 되었죠. 아, 진짜로 오는구나… 하고 고개를 들고 자꾸만 하늘을 봤죠. 그러자 어느 순간 백여 마리가 우리 위 하늘을 가득 덮었어요. 높은 하늘에서 점점 아래로 유유히 내려오는데 가슴이 얼마나 뛰던지요.
서두르는 기색 없이 밥을 먹기 시작하는 독수리들. 더러는 다투는지 날개를 파닥이기도 하고, 더러는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는지 근처에서 멀뚱멀뚱 앉아 있군요. 전부 154마리의 독수리. 우리가 뿌려준 40kg으로는 부족했겠구나, 들판에 내려앉았지만 한 입 먹지도 못하고 돌아갈 녀석들이 많겠구나 싶으니 마음이 안 좋았어요. 이날 따님과 함께 왔던 정연순 변호사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밥값 봉투를 준비해서 오셨더라고요. 이 다정한 마음이라니…
ⓒ박평수
소식을 들은 한강애인님들이 밥값을 흔쾌히 내주시고 계시네요. 겨울동안은 밥을 줄 생각인데 조금만 더 모이면 굶주리지 않고 겨울을 날 수 있겠어요. 어벙벙하고 못생겨보이는 독수리들이 이렇게 한강의 식구가 되었습니다.
흥부네 집마냥 자꾸만 식구는 늘지만, 같이 나눠먹고 생명을 거둬들이는 한강애인 님들이 참 고맙습니다. 입춘 지나고 당분간 더 추울 것 같아요. 봄이 오기까지 독수리들과 큰기러기들 잘 먹이겠습니다.
은미씨의 한강편지 336_성동의 딸, 성동교를 지나며
나는 성동의 딸. 매일 성동교를 지나죠.
성동교 아래에는 야트막한 강물이 흐르고 시린 발을 강물에 담그고 살아가는 새들이 있죠. 나는 매일 성동교를 지나며 걸음을 늦추고 그들의 기척을 살펴요. 겨울 강에서 자맥질을 하거나 때로 바람이 세면 구석에서 서로의 온기로 바람을 막아보려는 듯이 모여 있는 새들을 보죠.
입춘이던 어제 저녁에는 교육위원회 회의가 있었어요. 좋은 분들과 올해 새로이 할 사업들에 대하여 논의를 했어요. 이야기 중에 곽정난 선생님은 한강이 환경교육센터를 두 개나 맡고 있는 것이 놀랍고 대단하다고 말했어요. 진천군 환경교육센터에 이어 파주시환경센터 에코온까지 맡아서 하고 있는데 이렇게 두 개나 맡은 데가 거의 없다는군요. 한강이 샛강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새로운 모색을 하다 보니 중랑천, 진천 미호강, 파주까지 넓어지게 된 것이죠.
회의를 잘 마치고 느긋한 걸음으로 성동교를 지납니다. 입춘이라 그런지 매서운 추위는 잠시 주춤했죠. 그래서 걷기 좋았어요. 어둑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성동교 아래 옹기종기 머물고 있을 원앙, 청둥오리, 흰죽지, 청머리오리, 넓적부리, 비오리들을 생각했죠. 오늘 하루도 잘 살았지? 수고했다. 그건 새들에게 건네는 말이었지만 저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어요. 그러다 문득 다리에 써있는 ‘성동교’라는 글자가 마음에 들어왔어요. 성동구에 있는 다리니까 성동교일텐데,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이름도 성동이거든요. 조성동 아버지… 그래서 또 생각했죠. 성동의 딸이 성동교를 지나네. 성동의 딸이 성동에 살고 있네. 저 새들과 마음을 나누며 살고 있네…
늦은 밤 집에 도착하니 또 제주도에서 과일 상자가 도착해 있습니다. 은덕언니가 이번에는 중학교 동창 영수 씨네 농장에서 따온 레드향이네요. 지난 여름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아직도 허리가 불편할텐데, 언니는 자꾸만 과일을 따서 동생에게 보내죠. 저는 귀한 제주 한라봉과 레드향 같은 것들을 쌓아놓고 먹는 호사를 누립니다. 동네 이웃들과도 나누어 먹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아요. 성동의 딸 은덕언니는 끝없이 가족들을 챙기죠. 동생이 일하는 곳이니까 한강을 후원하는 일도 수시로 하고요.
저녁 회의를 하는 사이 제주 언니들과의 단톡방에는 엄마 돌봄에 대한 대화가 오갔더군요.
“어머니와 관련해 요즘 생각이 많아젼… 마침 은희가 돌봄을 아침으로 하는 게 어떤가 말해서… 그동안 센터를 다녀온 후 옷 갈아 입히고 이 닦고 씻겨드리고 식사를 챙겨신디… 이걸 아침에 하면 허붕청 가지 않아도 될건디 싶엉 조금 아쉽던 차에…”
제주에 있는 언니들과 남동생들은 순번을 정해 엄마를 돌보죠. 서울에 살아 일상적인 엄마 돌봄에 참여하지 못하는 저는 늘 미안하기만 합니다. 그 대신 저는 한강의 생명들을 돌보는 걸로 미안함을 덜어보려고 합니다. 어둑한 성동교를 지나며, 아버지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 이만하면 잘 하는 거 닮수과?
# 독수리와 나
흘려 보내도 흘려 보내도 다시 밀려오는
저 아스라한 새들은
작은 밥상에 놓인 너무 많은 젓가락들 같고
삐걱삐걱 노 젓는 날개소리는
한 접시 위에서 젓가락들이 맞부비는 소리 같습니다
그 서러운 젓가락들이
한쪽 모서리가 부서진 밥상을 끌고
오늘 저녁 어느 하늘을 지나고 있는지
(나희덕 시 <기러기떼> 부분)
“이렇게 식구들이 자꾸만 늘어서 어쩌나요?”
지난 월요일 파주에 갔어요. 겨울이라 배고픈 독수리들에게 밥을 주러 갔지요. 독수리들에게는 돼지고기를, 큰기러기들에게는 볍씨를 뿌려줬어요. 그 날 같이 자원봉사를 하던 누군가가 저에게 말했어요. 한강에서 돌보는 자연의 식구들이 자꾸만 늘어나니 어떻게 다 먹여 살리겠냐고 웃음 어린 걱정을 해줬어요. 여기저기 수달들을 돌보고, 중랑천에서는 원앙과 철새들 밥을 주고 있는데, 올 겨울은 파주 공릉천 하구에서도 독수리들과 큰기러기들을 먹이니까요.
독수리들이 정말 밥 먹으로 올까? 들판에 고기를 뿌려주고 나서 푸르스름한 하늘을 바라보며 반신반의했어요. 미리부터 얻어먹으러 온 머리 좋은 왜가리 한 마리와 까치들만 법석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놀랍더군요. 논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먼 하늘에서 독수리들이 한마리 두마리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얼마 없어 스무 마리 가량 되었죠. 아, 진짜로 오는구나… 하고 고개를 들고 자꾸만 하늘을 봤죠. 그러자 어느 순간 백여 마리가 우리 위 하늘을 가득 덮었어요. 높은 하늘에서 점점 아래로 유유히 내려오는데 가슴이 얼마나 뛰던지요.
서두르는 기색 없이 밥을 먹기 시작하는 독수리들. 더러는 다투는지 날개를 파닥이기도 하고, 더러는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는지 근처에서 멀뚱멀뚱 앉아 있군요. 전부 154마리의 독수리. 우리가 뿌려준 40kg으로는 부족했겠구나, 들판에 내려앉았지만 한 입 먹지도 못하고 돌아갈 녀석들이 많겠구나 싶으니 마음이 안 좋았어요. 이날 따님과 함께 왔던 정연순 변호사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밥값 봉투를 준비해서 오셨더라고요. 이 다정한 마음이라니…
소식을 들은 한강애인님들이 밥값을 흔쾌히 내주시고 계시네요. 겨울동안은 밥을 줄 생각인데 조금만 더 모이면 굶주리지 않고 겨울을 날 수 있겠어요. 어벙벙하고 못생겨보이는 독수리들이 이렇게 한강의 식구가 되었습니다.
흥부네 집마냥 자꾸만 식구는 늘지만, 같이 나눠먹고 생명을 거둬들이는 한강애인 님들이 참 고맙습니다. 입춘 지나고 당분간 더 추울 것 같아요. 봄이 오기까지 독수리들과 큰기러기들 잘 먹이겠습니다.
평안하시길 바라며.
2026.02.05
한강 드림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Office. 02-6956-0596/ 010-9837-0825
후원 계좌: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우리은행 1005-903-60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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