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너구리에 대해 생각한 건 폼포코 너구리였지. 개발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산을 지키려고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했던 너구리들 말이야. 결국 개발 때문에 평화롭던 너구리들의 숲은 파괴되고 일부는 인간으로 변신하여 살아갔다지.
두번째 너구리는 샛강 너구리였어. 몇 년 전에 샛강 팀장으로 일하게 되면서 아예 샛강 인근으로 이사까지 온 선영이 너구리 일가를 봤다고 해. 엄마 너구리가 아가들을 데리고 윤중로 아래 샛강으로 이어지는 계단 참을 지나고 있었다지. 코 앞에 있었는데 너구리들도 놀랐는지 금새 사라졌다지. 핸드폰을 꺼내 기념사진을 찍을 새도 없이 말이야. 이후 나도 샛강 숲길을 걸을 때면 수달은 아니라도 너구리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 구석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지.
장항습지의 배고픈 너구리들도 몇 번 사진으로 보았지. 우리가 장항습지에서 한창 일하던 때였어. 당시 박평수 고양지부장님은 장항습지 생태보전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했지. 야생화된 들개들을 포획해달라는 부탁을 듣고 포획틀을 설치한 적이 있었지. 먹음직한 미끼를 두고 틀을 설치해두면 배가 고파서 어슬렁 들어오는 건 너구리들이었지. 어느 오후나 저녁, 너구리는 습지 여기저기 다니다가 냄새에 끌려왔을 거야. 그리고는 덜컹 닫힌 포획틀 안에서 밤을 지내며 어안이 벙벙했을 거야. 아침 일찍 장항습지에 온 평수가 문을 열어주면 슬그머니 나갔지.
23년 중랑천 모니터링 카메라에 촬영된 너구리. 카메라를 살펴보고 있다.
너희들 너구리는 한강 곳곳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지. 한강공원을 지나다 보면 “너구리를 조심하세요.” 표지판도 보이더라. 얼마 전에 샛강을 지날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도 너구리 표지판이 있더군. 중랑천에도 물론 있지. 살곶이다리 인근에서도 너구리 조심 안내판을 보았지. 그리고 우리가 중랑천에서 활동을 시작한 2023년 봄, 첫 센서 카메라에도 수달 가족과 더불어 너구리 부부도 찍힌 적이 있어.
# 나도 중랑천 주민
지난 토요일 응봉산에 올랐지. 산이라고 해야 야트막한 언덕 같았지. 어느 날 성동교를 건너다가 현수막을 봤어. 응봉산에서 개나리축제가 열린다고 말이야. 꽃이 한창일 때는 꽃을 한껏 보자고 마음먹었지. 그래서 흐드러진 개나리와 사람들의 미소가 윤슬처럼 빛나던 환한 응봉산을 둘러보고 내친 김에 우리가 일하는 중랑천까지 걸어왔지.
한강 금호 나들목을 지나는데 거위집을 보았지. 그 유명한 성동 중랑천 거위 부부를 위한 집 말이야. 정원오 후보님이 예전에 성동구청장 시절 SNS에 소개하기도 해서 인기가 더 높아졌지. 나도 한 번쯤 거위를 보고 싶어 주변을 살폈는데 마실 나갔는지 없더라. 그런데 응봉역 방향으로 계속 가다보니 거위집이 또 있더라. (부럽더군, 난 집이 한 채도 없는데, 거위 부부는 성동구의 배려로 1가구 2주택자더군.) 거위 부부의 활동 반경이 넓어져서 그들이 이동하니까 집을 하나 더 지어줬나 보다 짐작했지. 곳곳에는 거위를 위한 안내판이 있었어. 또 커다란 현수막이 있었는데 이렇게 써있었지.
거위 부부는 이름도 있더라. 성동이 그리고 사랑이. 이렇게 이름까지 있는 중랑천 주민이니 사람들이 함부로 괴롭히거나 하지는 않을 테지. 그에 비하면 너구리 너희들은 좀 찬밥 신세 같아서 마음이 짠하기도 해. 누구는 수달로 태어나고 누구는 원앙으로 태어나고 누구는 너구리로 태어났을 뿐인데, 그리고 열악한 한강 자연 속에서도 꿋꿋이 자식 키우며 살아갈 뿐인데도 괜히 미워하는 사람들도 있지.
아무튼 나는 너를 한참 바라보았지. 너는 내가 보건 말건 한자리에 가만히 있더라. 어디가 그렇게 가려운지 몸을 벅벅 긁느라 여념이 없었지. (효자손이라도 하나 선물해주고 싶더군.) 중랑천에 주말 데이트를 나온 젊은 커플이 다가와 감탄하며 너를 찍었지. 내가 아는 체를 했어. 너구리랍니다. 중랑천에 살죠. 어머 귀엽다. 그들은 너를 계속 핸드폰에 담고 또 바라보았지. 아마 그들 인스타그램에 올라갔을 거야. “중랑천에서 만난 너구리! 벅벅 긁어대는 너구리! 졸귀(?)” 그랬을까?
# 왜가리, 너의 이름은
성동이와 사랑이 거위 부부는 같은 날 저녁에 볼 수 있었지. 독서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다시 중랑천을 걸어서 옥수역까지 갔거든. 사방에 꽃도 많이 피고 배도 불러서 마냥 걷고 싶었지. 그렇게 걷다 보니 드디어 거위 부부를 만난 거야. 다가가서 보니 표정이 도도하다고 느껴졌지. 사랑받는 존재들의 자신감 같은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
어느 날부터 샛강 어귀에 와서 살고 있는 집오리 부부가 있지. 작년 초 즈음이었나. 하여간 1년도 더 되었지. 이들 부부도 샛강에서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지. 샛강시민들의 사랑도 듬뿍 받으면서 지내지. 한 번은 한나절 안 보이니까 샛강시민 단톡방에서 난리가 나기도 했지. 오리들의 행방을 찾느라 말이야. 당시 나도 별별 상상을 다 했지. 어느 못된 인간이 오리를 먹으려고 잡아갔나 하는 상상까지 하니 좀 끔찍했지. 나중에 알을 지키느라 그런 것 같다고 샛강지기들이 알아내서 안도했지. 이렇게 당당한 샛강 주민이 된 오리 부부에게 이름을 지어주자는 논의가 있기도 했지만 말만 나오다 말았지.
나는 지금도 가끔 샛강 오리 부부 이름을 지어보곤 해. 심지어 어제도 그랬지. 샛강에 사는 오리니까 ‘새덕’ ‘강덕’ 이라면 어떨까 곰곰 생각했지. (은덕언니, 어떤 것 같아?)
김정순 큰어머니, 정성후 선생님, 정지환 국장님, 최종인 대장님, 최병언 박사님 등등 샛강지기들은 지난 달부터 왜가리들의 사생활을 지켜보느라 바쁘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왜가리들이 포란을 하는데, 올해는 무려 두 부부가 가족을 이뤄 알을 품고 있지. 샛강문화다리 위에 필드스코프를 놓고 몇 시간이고 왜가리들을 살피는 샛강시민들이 오히려 경이로울 지경이야. 무탈하게 포란이 성공하고 아가들이 짹짹 삐악삐악 왝왝 (이게 왜가리 울음소리야.) 잘 태어나 자라길 바라지. 이들은 마치 두 왜가리 부부의 포란을 스포츠대회처럼 관망하면서 응원전을 펼치는 것 같아. 그래서 샛강지기 단톡방에 나는 이렇게 올렸지. 이름을 좀 지어주면 어떨까요? 그러자 샛강을 조성하는데 참여하고 샛강의 역사를 함께 했던 ‘샛강의 전설’ 최병언 박사님이 이렇게 즉석에서 왜가리 이름을 지었지.
2026년 샛강 왜가리 번식모니터링 관찰일지의 일부. ⓒ박경화
우리가리
다시가리
함께가리
샛강가리
뽕가리(뽕나무 집)
돌아가리
하하하 웃으면서도 나는 어쩐지 눈물이 핑 돌았지. 어느새 샛강 디아스포라 1년. 그 1년 동안 샛강시민들은 샛강을 지키려고 눈물과 땀을 쏟았지. 최박사님의 왜가리 이름을 합해 보면 이런 문장이 되지.
“우리 다시 함께 샛강으로 뽕 돌아가리.”
너구리도 왜가리도 그리고 ‘샛강 돌아가리’를 꿈꾸는 샛강지기들도 모두 응원해. 환하게 피어나는 꽃들도 너희 모두를 축복해. 그리고 사랑해.
은미씨의 한강편지 344 💌 너구리 왜가리 샛강가리
너구리군.
안녕. 반가워.
네가 그러니까 말로만 듣던 너구리군.
처음 너구리에 대해 생각한 건 폼포코 너구리였지. 개발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산을 지키려고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했던 너구리들 말이야. 결국 개발 때문에 평화롭던 너구리들의 숲은 파괴되고 일부는 인간으로 변신하여 살아갔다지.
두번째 너구리는 샛강 너구리였어. 몇 년 전에 샛강 팀장으로 일하게 되면서 아예 샛강 인근으로 이사까지 온 선영이 너구리 일가를 봤다고 해. 엄마 너구리가 아가들을 데리고 윤중로 아래 샛강으로 이어지는 계단 참을 지나고 있었다지. 코 앞에 있었는데 너구리들도 놀랐는지 금새 사라졌다지. 핸드폰을 꺼내 기념사진을 찍을 새도 없이 말이야. 이후 나도 샛강 숲길을 걸을 때면 수달은 아니라도 너구리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 구석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지.
장항습지의 배고픈 너구리들도 몇 번 사진으로 보았지. 우리가 장항습지에서 한창 일하던 때였어. 당시 박평수 고양지부장님은 장항습지 생태보전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했지. 야생화된 들개들을 포획해달라는 부탁을 듣고 포획틀을 설치한 적이 있었지. 먹음직한 미끼를 두고 틀을 설치해두면 배가 고파서 어슬렁 들어오는 건 너구리들이었지. 어느 오후나 저녁, 너구리는 습지 여기저기 다니다가 냄새에 끌려왔을 거야. 그리고는 덜컹 닫힌 포획틀 안에서 밤을 지내며 어안이 벙벙했을 거야. 아침 일찍 장항습지에 온 평수가 문을 열어주면 슬그머니 나갔지.
너희들 너구리는 한강 곳곳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지. 한강공원을 지나다 보면 “너구리를 조심하세요.” 표지판도 보이더라. 얼마 전에 샛강을 지날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도 너구리 표지판이 있더군. 중랑천에도 물론 있지. 살곶이다리 인근에서도 너구리 조심 안내판을 보았지. 그리고 우리가 중랑천에서 활동을 시작한 2023년 봄, 첫 센서 카메라에도 수달 가족과 더불어 너구리 부부도 찍힌 적이 있어.
# 나도 중랑천 주민
지난 토요일 응봉산에 올랐지. 산이라고 해야 야트막한 언덕 같았지. 어느 날 성동교를 건너다가 현수막을 봤어. 응봉산에서 개나리축제가 열린다고 말이야. 꽃이 한창일 때는 꽃을 한껏 보자고 마음먹었지. 그래서 흐드러진 개나리와 사람들의 미소가 윤슬처럼 빛나던 환한 응봉산을 둘러보고 내친 김에 우리가 일하는 중랑천까지 걸어왔지.
한강 금호 나들목을 지나는데 거위집을 보았지. 그 유명한 성동 중랑천 거위 부부를 위한 집 말이야. 정원오 후보님이 예전에 성동구청장 시절 SNS에 소개하기도 해서 인기가 더 높아졌지. 나도 한 번쯤 거위를 보고 싶어 주변을 살폈는데 마실 나갔는지 없더라. 그런데 응봉역 방향으로 계속 가다보니 거위집이 또 있더라. (부럽더군, 난 집이 한 채도 없는데, 거위 부부는 성동구의 배려로 1가구 2주택자더군.) 거위 부부의 활동 반경이 넓어져서 그들이 이동하니까 집을 하나 더 지어줬나 보다 짐작했지. 곳곳에는 거위를 위한 안내판이 있었어. 또 커다란 현수막이 있었는데 이렇게 써있었지.
“저를 만지거나 위협하지 마세요… 저도 감정이 있어요! 눈으로만 봐주세요. 저도 중랑천 주민입니다. (꽥!)”
거위 부부는 이름도 있더라. 성동이 그리고 사랑이. 이렇게 이름까지 있는 중랑천 주민이니 사람들이 함부로 괴롭히거나 하지는 않을 테지. 그에 비하면 너구리 너희들은 좀 찬밥 신세 같아서 마음이 짠하기도 해. 누구는 수달로 태어나고 누구는 원앙으로 태어나고 누구는 너구리로 태어났을 뿐인데, 그리고 열악한 한강 자연 속에서도 꿋꿋이 자식 키우며 살아갈 뿐인데도 괜히 미워하는 사람들도 있지.
아무튼 나는 너를 한참 바라보았지. 너는 내가 보건 말건 한자리에 가만히 있더라. 어디가 그렇게 가려운지 몸을 벅벅 긁느라 여념이 없었지. (효자손이라도 하나 선물해주고 싶더군.) 중랑천에 주말 데이트를 나온 젊은 커플이 다가와 감탄하며 너를 찍었지. 내가 아는 체를 했어. 너구리랍니다. 중랑천에 살죠. 어머 귀엽다. 그들은 너를 계속 핸드폰에 담고 또 바라보았지. 아마 그들 인스타그램에 올라갔을 거야. “중랑천에서 만난 너구리! 벅벅 긁어대는 너구리! 졸귀(?)” 그랬을까?
# 왜가리, 너의 이름은
성동이와 사랑이 거위 부부는 같은 날 저녁에 볼 수 있었지. 독서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다시 중랑천을 걸어서 옥수역까지 갔거든. 사방에 꽃도 많이 피고 배도 불러서 마냥 걷고 싶었지. 그렇게 걷다 보니 드디어 거위 부부를 만난 거야. 다가가서 보니 표정이 도도하다고 느껴졌지. 사랑받는 존재들의 자신감 같은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
어느 날부터 샛강 어귀에 와서 살고 있는 집오리 부부가 있지. 작년 초 즈음이었나. 하여간 1년도 더 되었지. 이들 부부도 샛강에서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지. 샛강시민들의 사랑도 듬뿍 받으면서 지내지. 한 번은 한나절 안 보이니까 샛강시민 단톡방에서 난리가 나기도 했지. 오리들의 행방을 찾느라 말이야. 당시 나도 별별 상상을 다 했지. 어느 못된 인간이 오리를 먹으려고 잡아갔나 하는 상상까지 하니 좀 끔찍했지. 나중에 알을 지키느라 그런 것 같다고 샛강지기들이 알아내서 안도했지. 이렇게 당당한 샛강 주민이 된 오리 부부에게 이름을 지어주자는 논의가 있기도 했지만 말만 나오다 말았지.
나는 지금도 가끔 샛강 오리 부부 이름을 지어보곤 해. 심지어 어제도 그랬지. 샛강에 사는 오리니까 ‘새덕’ ‘강덕’ 이라면 어떨까 곰곰 생각했지. (은덕언니, 어떤 것 같아?)
김정순 큰어머니, 정성후 선생님, 정지환 국장님, 최종인 대장님, 최병언 박사님 등등 샛강지기들은 지난 달부터 왜가리들의 사생활을 지켜보느라 바쁘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왜가리들이 포란을 하는데, 올해는 무려 두 부부가 가족을 이뤄 알을 품고 있지. 샛강문화다리 위에 필드스코프를 놓고 몇 시간이고 왜가리들을 살피는 샛강시민들이 오히려 경이로울 지경이야. 무탈하게 포란이 성공하고 아가들이 짹짹 삐악삐악 왝왝 (이게 왜가리 울음소리야.) 잘 태어나 자라길 바라지. 이들은 마치 두 왜가리 부부의 포란을 스포츠대회처럼 관망하면서 응원전을 펼치는 것 같아. 그래서 샛강지기 단톡방에 나는 이렇게 올렸지. 이름을 좀 지어주면 어떨까요? 그러자 샛강을 조성하는데 참여하고 샛강의 역사를 함께 했던 ‘샛강의 전설’ 최병언 박사님이 이렇게 즉석에서 왜가리 이름을 지었지.
우리가리
다시가리
함께가리
샛강가리
뽕가리(뽕나무 집)
돌아가리
하하하 웃으면서도 나는 어쩐지 눈물이 핑 돌았지. 어느새 샛강 디아스포라 1년. 그 1년 동안 샛강시민들은 샛강을 지키려고 눈물과 땀을 쏟았지. 최박사님의 왜가리 이름을 합해 보면 이런 문장이 되지.
“우리 다시 함께 샛강으로 뽕 돌아가리.”
너구리도 왜가리도 그리고 ‘샛강 돌아가리’를 꿈꾸는 샛강지기들도 모두 응원해. 환하게 피어나는 꽃들도 너희 모두를 축복해. 그리고 사랑해.
2026.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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