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이 지나고 비에 대해서 잊고 있었는데, 아침에 중랑천에 있는 정희가 비 이야기를 했어요. 마침 샛강에 있던 정순 어머니도 물(비)이 없다고 안타까워했어요. 그렇구나. 어쩌지… 잠시 걱정은 했지만 이내 비를 잊었어요. 이런저런 일들이 해야 했으니까요. 7월의 첫날이잖아요.
낮에는 왕십리 성동구청에 들렀다가 부리나케 코엑스에 갔어요. BNBP니 TNFD니 GBF니 말도 어려운 이해관계자 간담회에 참석했어요. 새로운 사업도 발굴해야 하고 열심히 일해야 하니까요. 함께 간 정원 처장님과 (우연히도 오늘 편지 등장인물들은 정희 정순 정원이군요.) 수박주스를 먹으며 공부한 것 복습도 했어요. 틈새시장을 찾아야 하겠다고, 뭔가 해보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겠냐고도 했죠. 그리고 헤어져 인파로 미어터지는 9호선을 타서 집으로 향했어요.
당산역에서 갈아타서 합정역을 지나는 순간, 때마침 라디오에서 비가 온다는 말이 나왔어요. 그 말을 듣고 전동차의 바닥을 보니 흥건히 고인 빗물이 눈에 들어오네요.
어제 밤 비에 대해서 말한 그는 비라는 단어의 근원을 말해줬어요. 세상을 돌며 생명을 살리는 비는 사람의 몸을 돌며 생명을 지켜주는 피와 비슷하다고도 했습니다. 비와 피. 비가 머리를 빗는 빗, 그리고 비가 내리는 모양을 따라서 생긴 빗살무늬, 그리고 비의 냄새인 비린내… 비 다음에는 ‘빗’을 설명하고 이어서 ‘빚’ 그리고 ‘빛’까지 나아가더군요. 흥미로웠어요. 저는 그런 말들이 어떻게 지어지고 연결되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는 말의 시작, 그러니까 어원에 대하여 언제나 생각하고 또 알아본다고 해요. 그는 2011년부터 고흥 두멧시골에 깃들어 숲에 깃들어 산다는 최종규 선생님입니다.
우연히 그의 길잡이를 따라 몇몇 분들과 우리말 공부를 했어요. 숭실대 인근에 조영수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두란노 라이브러리에서 열린 프로그램이었어요. 저는 무슨 토크 콘서트 같은 건 줄 착각하고 슬렁슬렁 갔더니 다들 종이와 펜을 펼치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죠.
# 마냥 걸으며 멧새소리 들어
그가 하는 모든 게 좀 특별했어요. 말과 글, 자연에서의 삶을 무척 좋아하는 기인 같은 분인가 싶었죠. 온 사람들에게 몇 분의 시간을 주고는 ‘빛나는 하루’라는 제목으로 엽서 크기만큼만 글을 쓰라고도 했어요.
헤어지면서 그는 손수 만든 작은 액자에 담긴 시를 선물로 줬어요. 재미있게도 저에게 준 시의 첫 연이 이렇습니다.
어떻게 쓸지 모르겠으면
붓을 내려놓고서 쉬다가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가서
마냥 걸으며 멧새소리 들어
(최종규. ‘글놀이꽃 13 어떻게’ 부분)
이 글을 읽고 일어섰어요.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당장 가고 싶어졌거든요. 바깥에 비는 그쳐 있더군요. 집 앞 하늘공원 자락에서 달리기를 했습니다. 저녁에 비가 내려 나무와 대기는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어요. 어둑한 땅 위에 나와있을지도 모르는 지렁이를 밟지 않으려 조심하며 달립니다. 멧새소리는 없지만 희미한 풀벌레 소리가 간간히 들립니다. 비에 젖은 나무와 꽃들이 농밀한 향기로 대기를 채워 더없이 상쾌했죠.
# 비와 맹꽁이
비를 기다렸어요. 가뭄이 길었잖아요.
비가 내리지 않는 동안 땅도 말라갔지만 비를 기다리는 우리들 마음도 파삭파삭 말라갔어요. 중랑천에 우리가 만든 작은 연못들에서 태어난 올챙이들이 걱정이었죠. 물을 대주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여름이 되기도 전부터 한낮의 해는 어찌나 뜨거운지, 얕은 둠벙의 가장자리에 손을 넣어보면 온천물 같았죠.
정희는 빈 물통을 양동이 삼아 강물을 퍼서 날랐어요. 풀이나 나뭇가지를 가져다 물 위를 덮어 그늘을 만들기도 했죠. (이 방법은 지난 번 중랑천에 오셨던 최수경 소장님이 알려주셨죠.) 맹꽁이 올챙이가 바글바글 있는데 다 살려야 하죠. 우중가 선생님들도 매일같이 생추어리를 돌며 맹꽁이 연못에 물을 대느라 바빴어요. 그런 와중에 비가 좀 내려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 연결되어 흐르는 삶
“혹시, 강 살리기 하는 분 아닌가요?”
어제 공부모임에서 옆에 앉은 남자분이 저에게 물었죠. 깜짝 놀랐어요. 초면인데 어떻게 아시나 싶었거든요. 그랬더니 그 분은 작년 가을 ‘시민의 한강’ 창립행사에 참여하고 회원가입도 하셨다고 해요. 그 때 저를 봤다는군요. 또 알고 보니 최종규 선생님은 10년도 더 전에 저에게 직접 지은 책을 보내준 적이 있어요. 제가 쓴 오마이뉴스 기사를 읽고 보내주신 건데,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 이렇게 우연히 만났어요.
세상은 넓다지만 강과 자연을 좋아하는 우리는 이렇게 연결되고 또 만나는군요. 언제 어디서나 다정한 마음으로 잘 살아야겠어요. 어제는 진천지부 인턴 성근 님의 마지막 날이었어요. 은여울고 3학년인데 한 달 인턴을 했거든요. 그가 우리와 함께 일한 시간은 짧지만 인연은 오래오래 이어지리라 생각해요. 성근 님, 정말 수고 많았어요. 고마워요. 생명을 살리는 비와 생명을 키우는 빛 속으로 걸어가는 멋진 앞날 되시길 빌어요.
늘 고마운 우리 한강애인 선생님들도
비와 빛 속으로 나아가시길 바라며
2026.07.01
한강 드림
손을 맞잡고 떠들고 몸을 흔들며 자연의 위로를 경험하는 강안내자 양성과정 참여자들. ⓒ함정희
은미씨의 한강편지 357 💌 맹꽁이와 비·빗·빚·빛
비에 대해서 그가 말했어요. 어제 밤의 일이었죠.
하룻밤이 지나고 비에 대해서 잊고 있었는데, 아침에 중랑천에 있는 정희가 비 이야기를 했어요. 마침 샛강에 있던 정순 어머니도 물(비)이 없다고 안타까워했어요. 그렇구나. 어쩌지… 잠시 걱정은 했지만 이내 비를 잊었어요. 이런저런 일들이 해야 했으니까요. 7월의 첫날이잖아요.
낮에는 왕십리 성동구청에 들렀다가 부리나케 코엑스에 갔어요. BNBP니 TNFD니 GBF니 말도 어려운 이해관계자 간담회에 참석했어요. 새로운 사업도 발굴해야 하고 열심히 일해야 하니까요. 함께 간 정원 처장님과 (우연히도 오늘 편지 등장인물들은 정희 정순 정원이군요.) 수박주스를 먹으며 공부한 것 복습도 했어요. 틈새시장을 찾아야 하겠다고, 뭔가 해보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겠냐고도 했죠. 그리고 헤어져 인파로 미어터지는 9호선을 타서 집으로 향했어요.
당산역에서 갈아타서 합정역을 지나는 순간, 때마침 라디오에서 비가 온다는 말이 나왔어요. 그 말을 듣고 전동차의 바닥을 보니 흥건히 고인 빗물이 눈에 들어오네요.
어제 밤 비에 대해서 말한 그는 비라는 단어의 근원을 말해줬어요. 세상을 돌며 생명을 살리는 비는 사람의 몸을 돌며 생명을 지켜주는 피와 비슷하다고도 했습니다. 비와 피. 비가 머리를 빗는 빗, 그리고 비가 내리는 모양을 따라서 생긴 빗살무늬, 그리고 비의 냄새인 비린내… 비 다음에는 ‘빗’을 설명하고 이어서 ‘빚’ 그리고 ‘빛’까지 나아가더군요. 흥미로웠어요. 저는 그런 말들이 어떻게 지어지고 연결되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는 말의 시작, 그러니까 어원에 대하여 언제나 생각하고 또 알아본다고 해요. 그는 2011년부터 고흥 두멧시골에 깃들어 숲에 깃들어 산다는 최종규 선생님입니다.
우연히 그의 길잡이를 따라 몇몇 분들과 우리말 공부를 했어요. 숭실대 인근에 조영수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두란노 라이브러리에서 열린 프로그램이었어요. 저는 무슨 토크 콘서트 같은 건 줄 착각하고 슬렁슬렁 갔더니 다들 종이와 펜을 펼치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죠.
# 마냥 걸으며 멧새소리 들어
그가 하는 모든 게 좀 특별했어요. 말과 글, 자연에서의 삶을 무척 좋아하는 기인 같은 분인가 싶었죠. 온 사람들에게 몇 분의 시간을 주고는 ‘빛나는 하루’라는 제목으로 엽서 크기만큼만 글을 쓰라고도 했어요.
헤어지면서 그는 손수 만든 작은 액자에 담긴 시를 선물로 줬어요. 재미있게도 저에게 준 시의 첫 연이 이렇습니다.
어떻게 쓸지 모르겠으면
붓을 내려놓고서 쉬다가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가서
마냥 걸으며 멧새소리 들어
(최종규. ‘글놀이꽃 13 어떻게’ 부분)
이 글을 읽고 일어섰어요.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당장 가고 싶어졌거든요. 바깥에 비는 그쳐 있더군요. 집 앞 하늘공원 자락에서 달리기를 했습니다. 저녁에 비가 내려 나무와 대기는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어요. 어둑한 땅 위에 나와있을지도 모르는 지렁이를 밟지 않으려 조심하며 달립니다. 멧새소리는 없지만 희미한 풀벌레 소리가 간간히 들립니다. 비에 젖은 나무와 꽃들이 농밀한 향기로 대기를 채워 더없이 상쾌했죠.
# 비와 맹꽁이
비를 기다렸어요. 가뭄이 길었잖아요.
비가 내리지 않는 동안 땅도 말라갔지만 비를 기다리는 우리들 마음도 파삭파삭 말라갔어요. 중랑천에 우리가 만든 작은 연못들에서 태어난 올챙이들이 걱정이었죠. 물을 대주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여름이 되기도 전부터 한낮의 해는 어찌나 뜨거운지, 얕은 둠벙의 가장자리에 손을 넣어보면 온천물 같았죠.
정희는 빈 물통을 양동이 삼아 강물을 퍼서 날랐어요. 풀이나 나뭇가지를 가져다 물 위를 덮어 그늘을 만들기도 했죠. (이 방법은 지난 번 중랑천에 오셨던 최수경 소장님이 알려주셨죠.) 맹꽁이 올챙이가 바글바글 있는데 다 살려야 하죠. 우중가 선생님들도 매일같이 생추어리를 돌며 맹꽁이 연못에 물을 대느라 바빴어요. 그런 와중에 비가 좀 내려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 연결되어 흐르는 삶
“혹시, 강 살리기 하는 분 아닌가요?”
어제 공부모임에서 옆에 앉은 남자분이 저에게 물었죠. 깜짝 놀랐어요. 초면인데 어떻게 아시나 싶었거든요. 그랬더니 그 분은 작년 가을 ‘시민의 한강’ 창립행사에 참여하고 회원가입도 하셨다고 해요. 그 때 저를 봤다는군요. 또 알고 보니 최종규 선생님은 10년도 더 전에 저에게 직접 지은 책을 보내준 적이 있어요. 제가 쓴 오마이뉴스 기사를 읽고 보내주신 건데,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 이렇게 우연히 만났어요.
세상은 넓다지만 강과 자연을 좋아하는 우리는 이렇게 연결되고 또 만나는군요. 언제 어디서나 다정한 마음으로 잘 살아야겠어요. 어제는 진천지부 인턴 성근 님의 마지막 날이었어요. 은여울고 3학년인데 한 달 인턴을 했거든요. 그가 우리와 함께 일한 시간은 짧지만 인연은 오래오래 이어지리라 생각해요. 성근 님, 정말 수고 많았어요. 고마워요. 생명을 살리는 비와 생명을 키우는 빛 속으로 걸어가는 멋진 앞날 되시길 빌어요.
늘 고마운 우리 한강애인 선생님들도
비와 빛 속으로 나아가시길 바라며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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