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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358 💌 센강과 청계천 사이 여름
한강애인 선생님들께.
덥고 습한 여름, 잘 지내고 계신지요?
아침에는 비가 많이 왔어요. 저는 창가에 침대가 놓인 작은 방에서 자는 걸 좋아해요. 새벽 어스름에는 열린 창으로 선득선득 빗방울이 들이쳤어요. 그 서늘한 감각이 좋아서 부서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선잠을 잤어요. 고양이 두 마리가 아웅다웅 작게 으르렁대며 깨우기 전까지는요. (어서 일어나 밥을 달라는 거죠.)
비가 오면 엄마와 언니들 생각을 해요. 제주의 날씨가 궁금하죠. 제주도는 언제부터인가 비가 오면 폭우이고 눈이 오면 폭설이더라고요.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어디 나가지 못하고 발이 묶일 엄마가 안스럽거든요. 지난 겨울이던가, 한 번은 폭설이 내려서 시내에 아무 차도 다닐 수 없었는데, 은덕언니가 집에서부터 걸어서 엄마 집으로 갔다는 말을 들었어요. 엄마 돌봄 당번인 날이었거든요. 그 겨울에 한 시간인가 두 시간인가 걸려서 엄마 집을 찾아갔다고 했죠.
비가 이렇게 많이 내리는 날이면 엄마는 더 많이 주무시겠죠. 그래서 아침에 언니들에게 물었죠. 서울은 비 좍좍 오맨. 제주도는 어떵해? 그러자 큰언니가 대답하더라고요. 비랑 마랑 여기는 뱉이 과랑과랑.
# 센강
근래에는 프랑스 파리의 폭염 소식을 들었어요. 에어컨이 없는 집들이 대부분인데, 무더위로 죽은 사람들이 상당하다죠. 더위를 피해 센 강에 뛰어들어 수영하던 젊은이들이 죽었다는 소식도 슬펐어요.
이제는 파리의 날씨가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어요. 제 아이가 곧 파리에 문학을 공부하러 가거든요. (“저는 절반은 제주도 사람이죠.” 이렇게 말하던 아이가 파리지엥이 될 거예요.)
오늘처럼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제주의 엄마를 걱정하던 제가 앞으로는 프랑스 날씨를 체크하고 때로 걱정 근심도 할 것 같아요. 아이가 덥다고 센강에 가서 수영이라도 하면 어쩌나 불안하겠죠.
# 프로젝트 헤일메리
요즘에 ‘프로젝트 헤일메리’란 SF 소설을 읽기 시작했어요. 제가 기억하기론 이웃인 명희 샘이 추천해준 거예요. 초롱초롱한 그녀가 이 책을 오디오북과 더불어 두 가지 다 듣고 읽고 있는데 무척 좋다고 해서 메모를 해두었어요. 그래서 읽고 있어요.
아직은 초반부 읽고 있어요. 우주선에서 혼자 고립된 이야기, 그리고 아스트로파지라는 외계 생명체 이야기가 나오죠. 이 세포 덩어리 같은 생명체는 태양 빛을 흡수하죠. 급속도로 바쁘게. 그래서 지구인들은 걱정하죠. 태양열이 줄어들고 지구가 몇 십도 냉각될 거라는 예측이 전지구적 위기로 다가오죠.
지난 몇 주 사이 중랑천에서 비가 오지 않아 너무 가물어, 말라가는 둠벙과 익어가는 올챙이들을 근심했어요. 그러다 이제 장마가 지고 비가 오니까 거동이 불편한 엄마를 근심하죠. 달궈질 대로 달궈진 파리 소식에는 아이를 미리부터 걱정하고요. 그러다 이 밤 ‘프로젝트 헤일메리’ 책장을 넘기며, 지구가 망하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하고 주인공처럼 우주를 떠도는 마음이 되네요.
# 청계천과 홍제천을 거닐며
지난 토요일 청계천 인근에 갔어요. 일사분란하게 구호를 외치고 박수를 치는 태극기 집회장을 지나 광화문사거리를 넘어 빌딩 지하에서 저녁을 먹었어요. 최근에 퇴직한 김향희 선생님에게 축하와 응원을 하기 위한 자리였죠.
시원한 맥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고, 2차로 청계천 앞에 있는 펍에 갔어요. 청계천을 바라보고 야외에 앉았는데 등으로는 땀이 솟았어요. 간간히 바람은 불었지만 덥고 습한 날이었으니까요. 다시 청계천을 따라 걷는데 물가에 사람들이 많아 신기해서 내려다봤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물길을 따라 양 옆으로 빼곡하게 앉아 있었어요. 다들 발을 담그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거나 음료 같은 걸 먹고 있더군요. 다들 여유롭고 행복해 보였어요. 보기 좋았죠.
한편 낯설고 생경한 풍경이기도 했어요. 우리는 늘 강에서 지내고 있잖아요. 축축하고 습지가 있는 강, 질척거리고 야생동물들의 흔적이 있는 강, 새들과 물고기와 뱀과 벌들이 두서없이 출몰하거나 깃들어 사는 강, 그리고 비가 오면 탁한 물이 흐르고 오래 묵은 쓰레기 같은 것이 버드나무에 걸리는 그런 강이 익숙하죠.
날이 무척 더우니까요. 그런 생각이 들었죠. 우리는 그동안 우리의 강으로 초대했죠. 축축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생기 넘치는 강. 하지만 저렇게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나 데이트 나온 젊은이들은 청계천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시원한 음료를 마시는 것도 보기 좋더군요. 그렇게 곁에서 쉬고 놀 수 있는 작은 강 (물길)이 시민들에겐 선물 같은 것이죠.
새로운 일을 모색하느라 가본 홍제천도 마찬가지였어요. 멋지게 떨어지는 인공폭포를 바라보며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친구와 담소를 나누며 망중한을 보내는 이들로 가득했어요.
제 마음은, 센강과 청계천 사이 어디쯤에서 이 여름을 보내고 있어요.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어떤 강을 갖고 계신가요?
저는 작은 개울이 있고, 풀섶이 있고, 돌돌돌 맑은 물이 흐르고, 작은 물고기들이 노닐고, 개울을 성큼 한 발자국만 내디뎌도 건널 수 있는 그런 강을 갖고 싶어요.
선생님의 강에서 시원한 여름 보내시길 바라요.
2026.07.09
한강 드림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Office. 02-6956-0596/ 010-9837-0825
후원 계좌: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우리은행 1005-903-602443
은미씨의 한강편지 358 💌 센강과 청계천 사이 여름
한강애인 선생님들께.
덥고 습한 여름, 잘 지내고 계신지요?
아침에는 비가 많이 왔어요. 저는 창가에 침대가 놓인 작은 방에서 자는 걸 좋아해요. 새벽 어스름에는 열린 창으로 선득선득 빗방울이 들이쳤어요. 그 서늘한 감각이 좋아서 부서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선잠을 잤어요. 고양이 두 마리가 아웅다웅 작게 으르렁대며 깨우기 전까지는요. (어서 일어나 밥을 달라는 거죠.)
비가 오면 엄마와 언니들 생각을 해요. 제주의 날씨가 궁금하죠. 제주도는 언제부터인가 비가 오면 폭우이고 눈이 오면 폭설이더라고요.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어디 나가지 못하고 발이 묶일 엄마가 안스럽거든요. 지난 겨울이던가, 한 번은 폭설이 내려서 시내에 아무 차도 다닐 수 없었는데, 은덕언니가 집에서부터 걸어서 엄마 집으로 갔다는 말을 들었어요. 엄마 돌봄 당번인 날이었거든요. 그 겨울에 한 시간인가 두 시간인가 걸려서 엄마 집을 찾아갔다고 했죠.
비가 이렇게 많이 내리는 날이면 엄마는 더 많이 주무시겠죠. 그래서 아침에 언니들에게 물었죠. 서울은 비 좍좍 오맨. 제주도는 어떵해? 그러자 큰언니가 대답하더라고요. 비랑 마랑 여기는 뱉이 과랑과랑.
# 센강
근래에는 프랑스 파리의 폭염 소식을 들었어요. 에어컨이 없는 집들이 대부분인데, 무더위로 죽은 사람들이 상당하다죠. 더위를 피해 센 강에 뛰어들어 수영하던 젊은이들이 죽었다는 소식도 슬펐어요.
이제는 파리의 날씨가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어요. 제 아이가 곧 파리에 문학을 공부하러 가거든요. (“저는 절반은 제주도 사람이죠.” 이렇게 말하던 아이가 파리지엥이 될 거예요.)
오늘처럼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제주의 엄마를 걱정하던 제가 앞으로는 프랑스 날씨를 체크하고 때로 걱정 근심도 할 것 같아요. 아이가 덥다고 센강에 가서 수영이라도 하면 어쩌나 불안하겠죠.
# 프로젝트 헤일메리
요즘에 ‘프로젝트 헤일메리’란 SF 소설을 읽기 시작했어요. 제가 기억하기론 이웃인 명희 샘이 추천해준 거예요. 초롱초롱한 그녀가 이 책을 오디오북과 더불어 두 가지 다 듣고 읽고 있는데 무척 좋다고 해서 메모를 해두었어요. 그래서 읽고 있어요.
아직은 초반부 읽고 있어요. 우주선에서 혼자 고립된 이야기, 그리고 아스트로파지라는 외계 생명체 이야기가 나오죠. 이 세포 덩어리 같은 생명체는 태양 빛을 흡수하죠. 급속도로 바쁘게. 그래서 지구인들은 걱정하죠. 태양열이 줄어들고 지구가 몇 십도 냉각될 거라는 예측이 전지구적 위기로 다가오죠.
지난 몇 주 사이 중랑천에서 비가 오지 않아 너무 가물어, 말라가는 둠벙과 익어가는 올챙이들을 근심했어요. 그러다 이제 장마가 지고 비가 오니까 거동이 불편한 엄마를 근심하죠. 달궈질 대로 달궈진 파리 소식에는 아이를 미리부터 걱정하고요. 그러다 이 밤 ‘프로젝트 헤일메리’ 책장을 넘기며, 지구가 망하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하고 주인공처럼 우주를 떠도는 마음이 되네요.
# 청계천과 홍제천을 거닐며
지난 토요일 청계천 인근에 갔어요. 일사분란하게 구호를 외치고 박수를 치는 태극기 집회장을 지나 광화문사거리를 넘어 빌딩 지하에서 저녁을 먹었어요. 최근에 퇴직한 김향희 선생님에게 축하와 응원을 하기 위한 자리였죠.
시원한 맥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고, 2차로 청계천 앞에 있는 펍에 갔어요. 청계천을 바라보고 야외에 앉았는데 등으로는 땀이 솟았어요. 간간히 바람은 불었지만 덥고 습한 날이었으니까요. 다시 청계천을 따라 걷는데 물가에 사람들이 많아 신기해서 내려다봤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물길을 따라 양 옆으로 빼곡하게 앉아 있었어요. 다들 발을 담그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거나 음료 같은 걸 먹고 있더군요. 다들 여유롭고 행복해 보였어요. 보기 좋았죠.
한편 낯설고 생경한 풍경이기도 했어요. 우리는 늘 강에서 지내고 있잖아요. 축축하고 습지가 있는 강, 질척거리고 야생동물들의 흔적이 있는 강, 새들과 물고기와 뱀과 벌들이 두서없이 출몰하거나 깃들어 사는 강, 그리고 비가 오면 탁한 물이 흐르고 오래 묵은 쓰레기 같은 것이 버드나무에 걸리는 그런 강이 익숙하죠.
날이 무척 더우니까요. 그런 생각이 들었죠. 우리는 그동안 우리의 강으로 초대했죠. 축축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생기 넘치는 강. 하지만 저렇게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나 데이트 나온 젊은이들은 청계천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시원한 음료를 마시는 것도 보기 좋더군요. 그렇게 곁에서 쉬고 놀 수 있는 작은 강 (물길)이 시민들에겐 선물 같은 것이죠.
새로운 일을 모색하느라 가본 홍제천도 마찬가지였어요. 멋지게 떨어지는 인공폭포를 바라보며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친구와 담소를 나누며 망중한을 보내는 이들로 가득했어요.
제 마음은, 센강과 청계천 사이 어디쯤에서 이 여름을 보내고 있어요.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어떤 강을 갖고 계신가요?
저는 작은 개울이 있고, 풀섶이 있고, 돌돌돌 맑은 물이 흐르고, 작은 물고기들이 노닐고, 개울을 성큼 한 발자국만 내디뎌도 건널 수 있는 그런 강을 갖고 싶어요.
선생님의 강에서 시원한 여름 보내시길 바라요.
2026.07.09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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