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걸었어요. 그제 저녁 샛강숲에서요.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았거든요. 차로 다니느라 하루동안 혼자 걸었어요. 그제 저녁 샛강숲에서요.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았거든요. 차로 다니느라 하루동안 채워야 할 걸음수도 부족했고요. 오가는 이 아무도 없고 도시의 소음과 희미한 빛이 흘러드는 숲에서 타박타박 걸었죠. 예전처럼 힘차게 3코스와 4코스를 다 돌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토록 익숙한 숲이지만 또 낯설기도 했으니까요. 지난 가을과 겨울, 시간이 벌려 놓은 어색한 틈바구니가 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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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를 갓 넘긴 시간, 샛강센터는 굳게 닫혀 어둠에 잠겨 있더군요. 작년 이맘때라면 어땠을까? 저도 모르게 영화 속 회상 장면처럼 1년 전 저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1층 로비까지 불이 환하고 누군가는 피아노를 치고 있는 풍경, 저녁에 있을 인문강좌를 들으러 하나둘 사람들이 센터 문을 밀고 들어오고, 음식을 내가기 위하여 준비하는 저의 발길과 손길은 바빴을 테죠… 6시가 막 지났는데 빨리도 문이 닫혔네… 그런 생각도 잠시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립니다. 지난 여름 이후 그 건물 앞을 제대로 지난 적이 없습니다. 간혹 차로 그 앞을 지나도 고개는 멀리 앞만 바라보죠. 더 이상 드나들 수도 없는 그 곳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서걱거리는 건 여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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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무와 현섭 팀장님이 해마다 새 줄을 구해서 단단히 묶던 놀이팡의 밧줄. 그대로 있더군요. 어둠 속에서 봐도 낡고 더러워진 것 같습니다. 보수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을텐데… 또 그런 생각을 합니다. 놀이팡 입구에 세워진 거대한 안내판 두 개가 검은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아, 저게 명숙 샘이 말하던 거대 안내판이구나. 역시 가까이 가보지 않기로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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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여러 번 기둥을 박고 세우고 마끈으로 묶어 만들었던 수달목책은 다 사라졌습니다. 대신 종아리 정도 높이의 야트막한 목책이 경계를 짓고 있더군요. 안쪽으로는 풀이 말끔히 베어져 강 쪽까지 걸어가보았습니다. 발 밑에서 밟히는 풀이 서걱거리는 소리와 마음 조각들이 서로 흔들리며 서걱대는 소리가 겹쳐집니다. 수달동산의 수달가족도, 조금 더 걸어가면 볼 수 있는 겨울 텃논도, 두물머리 오리들도 보러 가지 않았습니다. 가끔 샛강기지들이 올려주시는 사진 덕에 다들 무탈하니 잘 있다는 안부만 확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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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센터는 쉬이 열릴 줄 모르지만 여전히 서로 하하호호 미소지으며 겨울 샛강숲을 오가는 샛강지기들이 있습니다. 겨울이라 배가 고픈 새들을 먹이기도 하고, 구석구석 모니터링을 하기도 합니다. 책을 읽거나 바느질을 하는 일은 숲에서 하기 어려워 여기저기 떠돌며 하지요. 그래도 그들은 이제 마음이 편안해 보이더군요.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추위도 끝나고 봄이 올 것을 아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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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을 할 시간은 다가오는데 태희반장님은 느긋합니다. 귀를 덮는 모자를 잘 눌러쓴 그가 나타나자 악수를 청했습니다. 그의 두툼하고 굳은살이 박힌 손을 잡고 한참을 놓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그를 만났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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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미터 남짓 깔아놓은 야자매트를 따라 강 쪽으로 걸어갑니다. 겨울바람이 차긴 해도 맑은 강물이 보기에 시원하군요. 운동화 아래 느껴지는 모래가 부드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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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시유? 얼굴은 왜 또 그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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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대표님을 보더니 타박하듯이 말하지만 그의 눈은 내내 웃고 있습니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입니다. 그가 지난 해 내내 땀흘려 만들었던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나무들이 가지런하게 키가 자라고, 너른 모래밭이 펼쳐지고, 환삼덩굴 군락이 사라졌습니다. 반짝이는 강물 위에서 유유히 노니는 새들이 한눈에 보입니다. 모래 둔덕 옆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억새. 모래 위를 지나간 수달과 새들의 발자국. 그의 안내를 따라 한참을 돌아다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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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돌아갈까요? 면담 시간이 곧…” “여기서 이러는 게 면담이쥬. 뭐 달리 있슈? 백곡천 위쪽도 봐야 하는데 안 가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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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연말연시가 되면 모든 활동가들과 개인 면담을 합니다. 지난 해 평가와 새해 계획을 하죠. 그렇게 올해도 19명의 활동가들을 일일이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제 진천에서의 면담이 마지막 일정이었어요. 태희, 인희, 그리고 효미. 그들의 말 중에 공통점이 있더군요. “저는 직장이라 생각하기보다 활동을 하는 활동가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런 일을 하는 게 너무 재밌습니다.” 그런 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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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염키호테 대표님을 놀렸죠. 진짜 좋으시겠다고. 원하는 그림만 말하면 척척 그려주고 구현해주는 분들이 있으니 그런 복이 어딨냐고 했어요. 그러자 그가 대답합니다. 이젠 제 꿈이 아니라 연태희 반장님 꿈입니다. 반장님 하고 싶은 걸 하시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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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을 평가하고 결산을 해보고 있습니다. 샛강 때문에 말도 못하게 고생도 했고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살림도 넉넉치 않아 적자를 좀 봤습니다. 하지만 또 어떻게든 또 살아지네요. 그리고 전직원 개별 면담을 마치고 나니 그저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이토록 자기가 속한 단체를 아끼고 또 헌신하는 활동가들이 어디 또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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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시작하며 다시금 ‘count your blessings’ (너의 축복을 세어보라) 하던 싯귀를 생각합니다. 고생한다지만, 한강에서의 매일은 축복이고 감사합니다. 정원, 선영, 고은, 지연, 승윤, 재학, 윤주, 승환, 찬희, 정민, 정희, 웅, 태희, 인희, 효미, 명숙, 병언, 창원, 염키호테님… 한강 임원님들, 조합원님들, 그리고 응원해주시는 친구들 모두가 다 한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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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도 우리 한강은 다정한 이웃이자 친구가 되겠습니다. 좋은 일들 많으시길, 그리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2026.01.09 한강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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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332_새해 한강의 마음
혼자 걸었어요.
그제 저녁 샛강숲에서요.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았거든요. 차로 다니느라 하루동안 채워야 할 걸음수도 부족했고요. 오가는 이 아무도 없고 도시의 소음과 희미한 빛이 흘러드는 숲에서 타박타박 걸었죠. 예전처럼 힘차게 3코스와 4코스를 다 돌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토록 익숙한 숲이지만 또 낯설기도 했으니까요. 지난 가을과 겨울, 시간이 벌려 놓은 어색한 틈바구니가 있으니까요.
저녁 6시를 갓 넘긴 시간, 샛강센터는 굳게 닫혀 어둠에 잠겨 있더군요. 작년 이맘때라면 어땠을까? 저도 모르게 영화 속 회상 장면처럼 1년 전 저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1층 로비까지 불이 환하고 누군가는 피아노를 치고 있는 풍경, 저녁에 있을 인문강좌를 들으러 하나둘 사람들이 센터 문을 밀고 들어오고, 음식을 내가기 위하여 준비하는 저의 발길과 손길은 바빴을 테죠… 6시가 막 지났는데 빨리도 문이 닫혔네… 그런 생각도 잠시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립니다. 지난 여름 이후 그 건물 앞을 제대로 지난 적이 없습니다. 간혹 차로 그 앞을 지나도 고개는 멀리 앞만 바라보죠. 더 이상 드나들 수도 없는 그 곳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서걱거리는 건 여전합니다…
권무와 현섭 팀장님이 해마다 새 줄을 구해서 단단히 묶던 놀이팡의 밧줄. 그대로 있더군요. 어둠 속에서 봐도 낡고 더러워진 것 같습니다. 보수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을텐데… 또 그런 생각을 합니다. 놀이팡 입구에 세워진 거대한 안내판 두 개가 검은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아, 저게 명숙 샘이 말하던 거대 안내판이구나. 역시 가까이 가보지 않기로 합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여러 번 기둥을 박고 세우고 마끈으로 묶어 만들었던 수달목책은 다 사라졌습니다. 대신 종아리 정도 높이의 야트막한 목책이 경계를 짓고 있더군요. 안쪽으로는 풀이 말끔히 베어져 강 쪽까지 걸어가보았습니다. 발 밑에서 밟히는 풀이 서걱거리는 소리와 마음 조각들이 서로 흔들리며 서걱대는 소리가 겹쳐집니다. 수달동산의 수달가족도, 조금 더 걸어가면 볼 수 있는 겨울 텃논도, 두물머리 오리들도 보러 가지 않았습니다. 가끔 샛강기지들이 올려주시는 사진 덕에 다들 무탈하니 잘 있다는 안부만 확인합니다.
닫힌 센터는 쉬이 열릴 줄 모르지만 여전히 서로 하하호호 미소지으며 겨울 샛강숲을 오가는 샛강지기들이 있습니다. 겨울이라 배가 고픈 새들을 먹이기도 하고, 구석구석 모니터링을 하기도 합니다. 책을 읽거나 바느질을 하는 일은 숲에서 하기 어려워 여기저기 떠돌며 하지요. 그래도 그들은 이제 마음이 편안해 보이더군요.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추위도 끝나고 봄이 올 것을 아니까요.
# 새해 한강의 마음
면담을 할 시간은 다가오는데 태희반장님은 느긋합니다. 귀를 덮는 모자를 잘 눌러쓴 그가 나타나자 악수를 청했습니다. 그의 두툼하고 굳은살이 박힌 손을 잡고 한참을 놓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그를 만났어요.
500미터 남짓 깔아놓은 야자매트를 따라 강 쪽으로 걸어갑니다. 겨울바람이 차긴 해도 맑은 강물이 보기에 시원하군요. 운동화 아래 느껴지는 모래가 부드럽습니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시유? 얼굴은 왜 또 그랴?”
염대표님을 보더니 타박하듯이 말하지만 그의 눈은 내내 웃고 있습니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입니다. 그가 지난 해 내내 땀흘려 만들었던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나무들이 가지런하게 키가 자라고, 너른 모래밭이 펼쳐지고, 환삼덩굴 군락이 사라졌습니다. 반짝이는 강물 위에서 유유히 노니는 새들이 한눈에 보입니다. 모래 둔덕 옆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억새. 모래 위를 지나간 수달과 새들의 발자국. 그의 안내를 따라 한참을 돌아다녔습니다.
“이제는 돌아갈까요? 면담 시간이 곧…”
“여기서 이러는 게 면담이쥬. 뭐 달리 있슈? 백곡천 위쪽도 봐야 하는데 안 가유?”
매해 연말연시가 되면 모든 활동가들과 개인 면담을 합니다. 지난 해 평가와 새해 계획을 하죠. 그렇게 올해도 19명의 활동가들을 일일이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제 진천에서의 면담이 마지막 일정이었어요. 태희, 인희, 그리고 효미. 그들의 말 중에 공통점이 있더군요. “저는 직장이라 생각하기보다 활동을 하는 활동가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런 일을 하는 게 너무 재밌습니다.” 그런 말들….
처음엔 염키호테 대표님을 놀렸죠. 진짜 좋으시겠다고. 원하는 그림만 말하면 척척 그려주고 구현해주는 분들이 있으니 그런 복이 어딨냐고 했어요. 그러자 그가 대답합니다. 이젠 제 꿈이 아니라 연태희 반장님 꿈입니다. 반장님 하고 싶은 걸 하시는 거죠.
2025년을 평가하고 결산을 해보고 있습니다. 샛강 때문에 말도 못하게 고생도 했고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살림도 넉넉치 않아 적자를 좀 봤습니다. 하지만 또 어떻게든 또 살아지네요. 그리고 전직원 개별 면담을 마치고 나니 그저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이토록 자기가 속한 단체를 아끼고 또 헌신하는 활동가들이 어디 또 있을까요?
새해를 시작하며 다시금 ‘count your blessings’ (너의 축복을 세어보라) 하던 싯귀를 생각합니다. 고생한다지만, 한강에서의 매일은 축복이고 감사합니다. 정원, 선영, 고은, 지연, 승윤, 재학, 윤주, 승환, 찬희, 정민, 정희, 웅, 태희, 인희, 효미, 명숙, 병언, 창원, 염키호테님… 한강 임원님들, 조합원님들, 그리고 응원해주시는 친구들 모두가 다 한강입니다.
새해에도 우리 한강은 다정한 이웃이자 친구가 되겠습니다.
좋은 일들 많으시길, 그리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202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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