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편지 76_무릉문 앞에 서서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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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coophangang 등록일2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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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편지 76
무릉문 앞에 서서 돌아보다.
한강 선생님들께, 

샛강에는 무릉도원이 있습니다. 

야트막한 구릉처럼 펼쳐진 땅 위에 외할머니 같은 참느릅나무가, 손주들에게 팔을 벌려 안아주려는 것처럼 부드러운 가지를 내밀고 서 있는 곳입니다. 몇 걸음 올라서면 뽕나무가 늦가을에 금빛 잎사귀를 반짝거리던 곳이기도 하고요. 그 아래로는 물이 졸졸 흘러, 여름날에는 날씬한 노랑꽃창포가 여기저기 아가씨처럼 서서 옆얼굴을 보여주기도 하는 곳입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 무릉도원의 입구에 문을 달았습니다. 강가 기슭에 쓰러져,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던 버드나무 둥치를 들고 와 세웠습니다. 두 개를 세워 서로 기대게 해주었습니다. 무릉도원의 입구이니 이름은 ‘무릉문’입니다.

#코로나라는 미증유의 세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아실 겁니다. 어린 소녀 앨리스는 구멍에 빠지고, 문을 지나, 낯설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갑니다. 우리에게 올해 놓인 낯선 문, 기이하고 당혹스럽기까지 했던 세계, 그것이 코로나라는 미증유의 세계입니다.

무릉문은 작고 허술합니다. 그저 서로 기댄 버드나무 둥치 두 개. 사각의 창처럼 무릉도원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문의 바깥과 문의 안쪽은 허공으로 이어져 있고 바람은 자유롭게 넘나듭니다. 그저 몇 발자국만 걸으면 건너갈 수 있는 세계이지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조용히 그러나 끝없는 물결처럼 무릉문 앞을 지나쳐 산책로를 걸어갑니다. 강아지들도 사람들도 운동이 필요하고, 탁 트인 공기가 필요하니까요. 마주 오는 사람이 보이면 피하듯 멀찍이 비켜서며 빠른 걸음으로 걷습니다.  

그저 문턱을 넘어 몇 걸음 걸었을 뿐인데, 무릉문 안은 아늑합니다. 곡선으로 이어진 오솔길과 숲 안으로 펼쳐진 크고 작은 나무들로 느릿하게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문 하나를 지났을 뿐인데,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선 것만 같습니다. 

#눈과 귀가 할 수 있는 것들 

이번 주에 직원들 개인면담을 했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아쉽거나 더 잘해주었으면 하는 것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격려하고 고마움을 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측 불가능하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던 코로나 위기속에서, 잘 버텨주고 힘과 지혜를 모아 이겨낸 한강 직원들이 고맙기만 합니다. 

돌아보고 계획하며 허심탄회한 말을 나누다 보니 때로 정색을 하기도 하고, 간간히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마스크를 쓴 채로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눈 말고는 얼굴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요. 

격려의 미소, 낙관의 미소, 칭찬의 미소, 공감의 미소… 

그런 것들을 잘 전달하고 싶은데, 마스크가 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입이 벌어지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짓는 미소. 보여줄 수가 없어 마음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나 순간순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도 모르게 눈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많이 웃고 있지 않았나 합니다. 

마스크가 우리 얼굴의 일부분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아마도 한동안은 계속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남의 표정을 볼 수 없고, 나의 표정을 보여줄 수 없어 더욱 관계가 삭막해지면 어떠나 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우리의 눈과 귀가 얼마나 더 바지런히 제 역할을 했나 느끼게 됩니다. 

마스크 쓰고 말하기가 불편한지라 말은 좀 줄고, 타인의 웅얼거리는 말은 잘 들어야 하기에 귀는 기울이게 되고, 드러나는 것들로 타인을 알아채야 하기에 눈은 더 적극적으로 응시하고 살폈습니다. 

어쩌면 코로나 시대 이후 눈웃음에 대한 표현이 많아지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감실감실 웃다, 몽글몽글 웃다, 뽀글뽀글 웃다, 눈을 감을 정도로 웃다, 호수처럼 웃다, 눈알 굴리며 웃다, 빠져들게 웃다, 눈웃음이 부딪치다, 눈 맞추며 웃다… 눈이 맞는다. ^^ 

#그저 고맙습니다. 

그제는 눈발이 휘날렸습니다. 눈이 내리는 풍경은 우리를 멈추게 합니다. 하던 일을 놓고 망연히 밖을 바라보게 하지요. 내면의 충동과 그리움 같은 것들을 턱 끝으로 끌어내기도 합니다. 

지난 번 첫눈이 내리던 날, 제주 탐나라에 사는 강우현 이사장님은 밖으로 나섰습니다. 첫 눈이 쌓인 땅 위로 조심조심 발을 내디뎠습니다. 허리를 구부려 땅 위를 살폈습니다. 마른 나뭇가지, 나무 열매, 흰 눈 속에서 여전히 초록빛이 시들지 않은 풀을 골라냈습니다. 그리고 흰 눈 위에 그 자연의 것들로 새해 인사를 적었습니다. 이제 저희 한강 식구들 모두 같은 마음으로 새해 인사를 전합니다. 

한강을 자연에게, 한강을 시민에게. 
한강조합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들어 가요. ^^ (염키호테 대표) 

새로운 가치를 모아내는 사회적기업 한강과 식구들~~ 건강하세요-요--요— (권무 팀장) 

더 예뻐질 샛강^^ 
마음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백일홍 선영) 

몸은 춥지만 마음은 따뜻한 연말되시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미선 과장)  

따뜻하고 건강한 연말연시 보내세요~ (정원 팀장)  

자연과 함께 뛰노는 한강을 바라는 가족분들! 
건강 잘 챙기시고, 21년에는 즐거운 소식으로 자주 만나요~ (정은 대리) 

한강조합 샛강가꾸기의 결정체, 샛강산책로를 자주 걸어보시고 바라는 점, 좋은 점 이야기도 많이 해 주셔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용태 과장) 

춥지만 마음만은 포근한 연말연시 보내시고 샛강에도 많이 와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길훈 대리) 

샛강에 오시면 제가 나직하게 시를 읽어 드립니다. 함께 걸어요. 올해 한강에 주신 마음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은미씨) 

새해 언제나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2020.12.30. 
한강조합 사무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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