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185_오에 겐자부로 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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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3-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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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왔습니까?

나의 고동이 멈췄을 때당신의 가슴에 새로운 생명이 깃들게 될 수 있다면 만족합니다.’

(나쓰메 소세키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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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희

오에 겐자부로 씨에게,

어제 당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당신은 지난 3월 3일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그리고 그 소식은 3월 14일에야 뉴스에 나왔습니다당신처럼 위대한 작가의 서거 소식이 한참 지나 알려진 것은 의외입니다신문에서는 당신이 반전 및 평화 운동에 전념하고 싶다며 2015년 절필했고이후 일본 사회에서 침잠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면서 누구보다도 평화와 비폭력반전을 외쳤던 당신은 지금 전세계에서 불고 있는 전쟁과 군사 긴장의 상황에 탄식을 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특히 일본의 전쟁 범죄와 국가 폭력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당신이 점점 우경화되고 반성이 없는 국가에 대해 씁쓸하게 여기실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당신의 책을 달랑 한 권 밖에 읽지 못했습니다당신이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담은 <’나의 나무’ 아래서>입니다당신은 깊은 숲 속에 있는 당신의 나무 아래서 어린 시절 소년 모습의 당신을 만나는 상상을 합니다그 소년은 노인이 된 당신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노인이 된 당신은 소년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소설을 쓰며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또한 나쓰메 소세키의 문장처럼 누군가의 가슴에 생명이 깃들 수 있게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그것은 에밀리 디킨슨의 시 구절처럼 내가 한 마리 지친 울새를 구할 수 있다면 내 삶은 헛되지 않으리와 일맥상통합니다.

 

전쟁과 폭력의 반대편에서자연을 닮은 삶을 살아온 당신

오에 겐자부로 씨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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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희

#더 글로리

요 며칠 한국 드라마 더 글로리가 전세계적으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습니다학교 폭력 피해자가 17년 세월이 흘러 가해자들에게 차근차근 복수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저도 2부 여덟 편을 한 번에 몰아서 볼 만큼 몰입하게 되는 드라마였습니다.

 

드라마에서는 학교 폭력만이 아니라 가정 폭력까지 여실없이 보여줍니다잔인한 장면에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다가도 피해자들이 서로 연대하고 도와주는 모습에는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저 자신은 전쟁이라는 국가 폭력은 겪은 적이 없지만학교 선생이나 아버지로부터 매를 맞고 자랐습니다돌이켜 보면그 남자들은 (저의 경우는 매질한 선생들이 다 남자였어요.) 어떻게 그렇게 작고 어린 여자아이를 때릴 생각을 했을까 싶어요. ‘더 글로리가 그토록 큰 파장이 있었던 것은 여전히 이 사회에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이 많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샛강 숲에서 만나는 자연은 폭력의 반대편에 있습니다그 곳에는 평화와 사랑이 있습니다지난 겨울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샛강에 왔던 동박새 한 쌍그들은 그 작은 몸을 바싹 붙이고 나란히 앉아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또 어느 날에는 까닭 모를 죽음을 맞은 청둥오리 수컷 옆에서 곁을 떠나지 못하고 하염없이 근처를 지키는 암컷 청둥오리도 보았습니다지난 봄에는 어린 새끼들이 먹고 자맥질할 동안 주위를 살피며 수호하던 엄마 흰뺨검둥오리도 자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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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이영원  (하)이재학

강길을 걸으며 오롯이 평화를 맛본 분들도 있습니다지난 토요일 한강유람단은 봄맞이 여행으로 섬진강을 걸었습니다. ‘마른 들녘 반가운 봄비 같은 선물이었다고 하는 분도 계시고, ‘강물 흐르는 소리가 너무 좋아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들었다고 하신 분도 계십니다섬진강을 걷고 나서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 하신 분, ‘자연과 살아가는 시인과 박사농부를 만나는’ 여정이 좋았다는 분, ‘강길을 걸으며 개발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흐르는 강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 수 있었다는 분 등등.


한강유람단의 섬진강 여행에는 마흔세 분이 함께 갔습니다소감 중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행복이었습니다강을 가꾸고 강을 즐기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한강조합의 미션이 그렇게 조금씩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샛강에는 버들 초록이 나날이 또렷해지고 있습니다매화개나리에 이어 미선나무도 꽃을 틔웠습니다이렇게 한창 피어나는 강숲에서 봄맞이 청소도 하려고 합니다다음 주에 물의 날 기념하여 중랑천과 샛강에서 하천대청소를 합니다가벼운 마음으로 봉사 나들이를 나오셔도 좋겠습니다.

 

자연 곁에서 행복과 평온을 누리시기 바라며.

2023.03.15

한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