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가 수달에게
수달 반가워요. 중랑천에 잘 왔어요.
우리는 수달 님들이 참 부러워요. 같은 포유류에다 귀엽기로는 우리가 한결 더 귀여운 것 같은데 수달들만 인간들에게 무척 사랑을 받죠. 우리는 천덕꾸러기처럼 미움을 받기도 해요. 공격적이라는 거예요. 전에 어떤 너구리는 배가 고파서 어슬렁거리는데 마침 길 가던 사람이 빵을 우적우적 먹고 있더래요. 그래서 좀 나눠 먹자고 다가갔는데 그게 포악한 너구리로 소문났나봐요. 아, 개랑 싸운 너구리도 있다고 들었어요.
우리 부부는 여기서 오래 살았어요. 가급적 사람들 눈에 안 띄고 조용히 애들 키우며 살고 싶어요. 수달들은 좋겠어요. 인간들은 당신들을 천연기념물 330호로 지정하고, 당신들의 똥만 봐도 환호하더군요. 재작년 겨울이던가 ‘수달이 돌아온 한강, 환영합니다’ 현수막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는 사람들도 봤어요. 그래서 공사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예요. 당신들이 이곳저곳 똥을 열심히 싸고, 잘 정착하면 됩니다. 여기가 철새보호구역인데요. 인간들이 ‘수달보호구역’으로 지정해줄지 누가 알겠어요?
보름 전에는 ‘수달 언니들’이라는 사람들이 우리 동네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갔어요. 내가 어디 있는지 보여줄게요. 내가 카메라에 찍히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 당신들이 나와야 해요. 가서 당신네 부부가 이곳 중랑천에 잘 정착해서 살고 있다고 보여 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