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186_수달과 너구리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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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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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186_
수달과 너구리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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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이 너구리에게

너구리 님 안녕하세요?

 

이웃지간인데 이 동네 이사와서 인사가 늦었네요우리는 조심하느라 밤중에만 주로 다녀요그래서 너구리 님을 만날 기회가 없었네요너구리 님들은 주로 저녁 나절에 돌아다니죠오늘은 맘 먹고 일찍 나와봤어요상의드릴 것도 있고 해서요.

 

예전에 인간들은 이사하면 떡도 돌리고 하던데빈손으로 인사해서 미안해요나중에 게나 잉어라도 몇 마리 잡아드릴게요너구리 님은 다 잘 잡수죠?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영화를 보니 너구리 님은 박카스를 좋아하던데그건 편의점에서 파나요?

 

우리는 이 동네가 살기 좋다는 소문을 듣고 왔어요원래 우리가 살던 강도 물고기가 많고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러 참 좋았어요그러던 것이 작년부터 개발 바람이 불어서 강바닥을 긁고 작은 댐과 산책로를 만들더라고요. (우리 와이프가 어디서 영어를 배워서 갓 댐” 그러대요.) 할 수 없이 정든 고향을 떠나 이곳 중랑천으로 온 거예요소식을 듣자 하니 요즘 그렇게 파헤쳐지는 강이 많다고 해서 걱정이네요우리야 이곳으로 왔지만 다른 수달들은 어디서 터를 잡고 살아갈지

 

이곳 중랑천은 참 살기 좋아 보여요새들도 물고기도 바글바글 많네요여기까지 포크레인으로 파헤치지 않겠죠우리는 더 이상 이사다닐 기력도 없어요와이프는 빨리 애들 낳고 키우자고 재촉하고요너구리 님은 오랫동안 이 동네 살았으니 잘 아실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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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가 수달에게

수달 반가워요중랑천에 잘 왔어요.

 

우리는 수달 님들이 참 부러워요같은 포유류에다 귀엽기로는 우리가 한결 더 귀여운 것 같은데 수달들만 인간들에게 무척 사랑을 받죠우리는 천덕꾸러기처럼 미움을 받기도 해요공격적이라는 거예요전에 어떤 너구리는 배가 고파서 어슬렁거리는데 마침 길 가던 사람이 빵을 우적우적 먹고 있더래요그래서 좀 나눠 먹자고 다가갔는데 그게 포악한 너구리로 소문났나봐요개랑 싸운 너구리도 있다고 들었어요.

 

우리 부부는 여기서 오래 살았어요가급적 사람들 눈에 안 띄고 조용히 애들 키우며 살고 싶어요수달들은 좋겠어요인간들은 당신들을 천연기념물 330호로 지정하고당신들의 똥만 봐도 환호하더군요재작년 겨울이던가 수달이 돌아온 한강환영합니다’ 현수막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는 사람들도 봤어요그래서 공사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예요당신들이 이곳저곳 똥을 열심히 싸고잘 정착하면 됩니다여기가 철새보호구역인데요인간들이 수달보호구역으로 지정해줄지 누가 알겠어요?

 

보름 전에는 수달 언니들이라는 사람들이 우리 동네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갔어요내가 어디 있는지 보여줄게요내가 카메라에 찍히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당신들이 나와야 해요가서 당신네 부부가 이곳 중랑천에 잘 정착해서 살고 있다고 보여 줍시다.

  

#성동구와 함께 중랑천 가꾸기

박경화함정희염형철그들은 여의샛강생태공원에서 활동하던 수달언니들입니다그들은 수달을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센서 카메라를 여러 개 갖고 있는데지난 3월 초에 중랑천에 카메라를 세 개 달았습니다수달형님격인 최종인 선생님이 수달 똥들을 살피고 카메라 달기 적당한 위치를 지정해주셨어요.

 

과연 카메라에는 수달이 잘 찍혔습니다수달 부부가 사이좋게 걸어가는 모습한 마리 수달이 느긋하게 움직이는 모습그리고 그 외에도 너구리 부부원앙 부부 모습도 카메라에 담겼습니다모래톱이 있는 중랑천앞에서는 강물이 낮게 흐르고멀리 뒤쪽으로 동부간선도로와 차량의 불빛 그리고 빌딩들이 보입니다.

 

이렇게 서울 도심에 야생동물들이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자연이 있습니다인간이 간섭이 적은 도심 하천에는 동물들이 터를 잡고 새끼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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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은 샛강에 이어 중랑천에서도 강 생태 가꾸기 활동을 시작합니다어제(3.21) 한강조합은 성동구와 민관협력 시민참여 중랑천 가꾸기 협약을 체결했습니다어제는 마침 절기가 춘분이었는데요옛날에는 춘분에 담장도 고치고 봄나물도 먹으며새롭게 정비하고 봄도 즐겼다고 해요이처럼 한강조합도 묵은 쓰레기를 치우고 강을 깨끗이 하면서 중랑천에서의 새 시작을 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3월 22일은 세계 물의 날입니다물 자원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우리 강을 지키고 가꾸겠다는 한강조합의 미션을 상기해봅니다오는 토요일에는 물의날 기념 하천대청소를 샛강과 중랑천에서 할 예정입니다청년 봉사자들을 중심으로 이미 샛강에 150중랑천에 80여명 신청했네요강을 지키는 일에 청년들의 열정과 패기가 더해지니 요즘 저희는 신이 납니다저희만이 아니라 강에 사는 수달과 너구리원앙도 행복할 것입니다.

 

여의도 윤중로 벚나무들이 분홍 꽃망울을 점점 더 부풀리고 있습니다곧 팝콘처럼 경쾌하고 가볍게 터져 나올 것 같아요.

 

나날이 피어나는 봄날 두루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2023.03.22

한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