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190_버드나무에게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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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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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190_버드나무에게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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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샛강 풍경 c.한인섭)  
아침에 출근하며 베이커리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조금 큼지막한 케익을 하나 샀습니다. 여의샛강생태공원에서 함께 일하는 여섯 분의 장애인들을 위한 선물입니다. 

오늘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물의 날에 물의 소중함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지구의 날에 지구를 생각하듯이, 장애인의 날에는 장애인의 인권과 권익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장애인의 날 뿐이겠습니까. 여성의 날,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이렇게 특정 대상을 위한 날들이 있고, 생물다양성의 날, 습지의 날, 지구의 날, 세계수달의 날처럼 자연환경을 위한 날들도 꽤 많습니다. 하여간 저는 언제부터인가 장애인의 날을 기억하고 있고, 장애인의 삶에 대해 되새겨 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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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조촐하게 축하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의샛강생태공원은 장애인들에게 특별한 곳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샛강의 다섯 가지 이름 중의 하나가 Barrier Free 공원인데,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누구나 생태복지를 누릴 수 있는 공원으로 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샛강에 무장애 나눔길이 만들어져서 시각장애인이나 보행이 불편한 분들이 걷기 좋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안내판들도 있고 접근로도 조금씩 개선이 되고 있어요. 그런 하드웨어적인 변화도 좋지만, 저는 장애인들이 샛강에서 일자리를 얻은 것이 참 좋습니다. 

저희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은 영등포장애인복지관과 함께 21년 시험 운영을 거쳐 22년부터 발달장애인들에게 샛강 환경지킴이 직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여섯 분이 함께 일하고 있지요. 그 중 몇 분은 작년부터 근무하셔서 이제는 무척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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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버드나무 숲이 있는 샛강. c. 한인섭)  
샛강이 어쩌다가 Barrier Free 공원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하신가요? 시작은 저희 한강조합이 장애인들도 공원을 누릴 수 있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들을 위한 생태 탐방 프로그램이나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해보았습니다. 그러다 영등포장애인복지관에서 그들을 위한 직무를 제공할 수 있겠냐는 요청을 하셨어요.  

한편 현대차그룹에서는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21년부터 여의샛강생태공원 운영을 위해 후원하고 있는데요. 현대차그룹에서 하는 여러 사회공헌 사업 중에서 Easy Move라는 게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샛강센터를 Barrier free 건물로 리모델링하고, 공원 자체도 그렇게 개선되도록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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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종모가 눈처럼 쌓였습니다. c. 정지환)  
2019년부터 샛강에서 다섯 번의 봄을 맞고 있습니다. 샛강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을 보내며 만나는 자연은 언제나 경이롭고 찬탄과 기쁨을 안겨줍니다. 자연 속에 있으면 어느 생명 하나, 어느 존재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허리를 90도로 구부렸지만 꿋꿋이 살아가는 못난 버드나무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눈에는 수형이 그다지 예쁘지도 않고 꼬부랑 할머니 같아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뭄에 어떤 나무들은 겉보기로 다 죽어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시들시들한 나무들을 다 뽑아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때로 이상합니다. 생태공원에 와서 자연을 즐기려고 걸으며, 잘라라, 베어 버려라, 약을 뿌려라, 이런 말들을 곧잘 합니다. 살아내려고, 뿌리로 단단히 흙을 움켜쥐고 있는 나무의 마음을 한 번쯤 상상해주면 어떨까요… 

며칠 전부터 버드나무 솜털이 눈처럼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꽃가루가 아니고, 씨앗을 멀리 보내기 위해 씨앗을 털로 감싸서 풀풀 날리게 하는 나무의 생존 전략입니다. 이 즈음이면 한 보름 정도 흰 눈이 내리듯이 숲에는 온통 버드나무 솜털 천지가 됩니다. 

샛강숲에 오시면 풀풀 날리는 버드나무 숲을 거닐 수 있는데요. 사월에 내리는 눈이라고 생각해보세요. 버드나무는 자신의 존재를 솜털에 담아 멀리멀리 날려보냅니다. 우리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요. 할 수만 있다면 어디로 마음을 날려보내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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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눈 어떤가요? c.정지환)  
저는 오늘만큼은 장애인이셨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멋진 삶을 사셨던 저의 영원한 스승 장영희 교수님에게 가닿고 싶습니다. 버드나무에게 저 멀리 하늘가로 편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해야겠습니다.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사월의 눈이 내리는 샛강에서 
2023.04.20 
한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