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에는 내내 꽃들이 피고지는 걸로 시간의 흐름을 가늠합니다. 이 즈음 저의 눈길을 사로잡는 꽃나무는 이팝나무입니다. 이팝나무는 우리나라 전국 가로수 수종 중에서 3위를 차지할 만큼 거리 곳곳에서 보이기도 하고, 공원에도 어김없이 보입니다. 물론 샛강숲에도 몇 그루가 기품있는 자태로 서 있어요. 이팝나무는 무수히 많은 꽃들을 소복하게 피워냅니다. 하얀 쌀밥 같다고 해서 이팝나무란 이름을 가졌죠. 꽃나무 아래서 쌀밥을 떠올리며 허기를 달랬을 옛 어른들을 상상해봅니다.
저의 어린 시절만 해도 먹고 사는 일이 녹록치 않았습니다. 농부였던 부모님은 쉴 새 없는 노동으로 저희 칠 남매를 키우셨어요. 예전에 제주도 중산간 마을에서는 귤 농사 외에 대체로 보리, 콩, 고구마 농사를 했습니다. 요즘은 워낙 농산물도 다양해지고, 시설 투자가 많은 비닐하우스 재배가 흔합니다만. (제주도 길을 걷다 보면 콜라비, 브로콜리, 비트 같은 채소밭을 많이 보게 되더군요.)
제주 여자들은 워낙 억척같이 일을 많이 하기도 하고 부지런합니다. 반면 남자들은 술을 좋아하고 여자들에 비해 게으르다고 여겨지죠.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해왔습니다. 어머니는 밤낮없이 고되게 소처럼 일을 하신 분이고,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고 노동을 덜했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 생각이 든 까닭은 우리집에서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주로 어머니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해요. 어머니는 당신이 살아오신 이야기 (특히 아버지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를 평생 쉬지 않고 해오셨죠. 그러나 아버지는 대개의 남자들이 그러하듯 별 말씀없이 살아왔어요.
근래 아버지 건강이 부쩍 나빠졌습니다. 그렇다 보니 아버지 살아오신 삶에 대해 자주 기억을 되짚어 봅니다. 한창 자식들을 먹이고 키워야 했던 시절의 아버지는 부지런히 일하던 아버지였습니다. 어머니는 “은민이 아방, 호꼼만 더 하게마씸 (조금만 더 합시다.)” 하면서 밭을 갈고 콩을 털고 보릿단을 묶고 고구마를 써는 아버지에게 추임새를 넣었지요.
봄이면 샛강에서 어린 새끼들을 이끌고 다니는 청둥오리 엄마를 봅니다. 청둥엄마는 새끼들에게 먹고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고, 새끼들을 안전하게 지키려고 주변을 경계하죠. 짝짓기 시기에는 커플이 다정하게 다니다가 새끼들이 태어나고 나면 아빠의 모습이 보이지 않더군요. 그래서 청둥엄마는 독박육아 아니냐고 우리끼리 농담을 했습니다. 새끼들이 자라는 동안 청둥오리 아빠는 어디서 뭘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병우 대표님이나 최진우 박사님에게 물어봐야겠어요.) 분명한 것은 우리 아버지는 고된 노동을 해서 저를 키워주셨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