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196_줬으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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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admin 등록일2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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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196_줬으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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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 샛강숲은 평화롭습니다.)  
#오디의 계절
봄에서 여름으로 흐르는 시간, 한낮의 열기를 식혀주는 소슬한 저녁 바람이 상쾌합니다. 

우리 일상은 항상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죠. 지난 주말 연휴에는 내내 비가 내렸습니다. 휴일 나들이하기엔 불편했지만, 저희는 봄철 심어놓은 나무들이 비를 흠뻑 맞을 수 있어 안도했습니다. 특히 중랑천 강가에 찔레, 갯버들 같은 관목류를 심었는데, 비가 내리기 전에는 물을 어떻게든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고마운 비 덕에 일손을 크게 덜었네요. 

어제 저녁에는 샛강 숲길을 혼자 걸었습니다. 요즘은 가급적 맨발걷기를 하는데, 한 번 대지를 맨발로 만나고 나면 신발 신기가 거추장스럽게 여겨집니다. 흙의 건강하고 서늘한 냉기가 발을 통해 몸으로 흘러 들어 저도 곁에 서 있는 나무들처럼 푸르러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 산책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뽕나무의 오디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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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나무의 오디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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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샛강생태공원에는 뽕나무가 아주 많습니다.)  
샛강숲에는 뽕나무가 아주 많습니다. 우거진 숲에는 네 가지 나무들이 우점하고 있는데, 버드나무, 팽나무, 참느릅나무와 뽕나무입니다. 이렇게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가는 시기에는 뽕나무에 검붉은 오디가 잔뜩 달려 있습니다. 오솔길에는 농익은 오디들이 곳곳에 떨어져 흙이 자주빛이나 검정색으로 물들어 있어요. 맨발로 걷는 어떤 이들은 그 열매들을 밟고 지나갑니다. 저도 따라서 밟고 걸었더니, 발밑에서 부드럽게 으깨지는 느낌이 좋습니다. 

앞서 걷던 젊은 남자가 걸음을 멈춰 서더니 뽕나무 가지를 잡습니다. 그는 잘 익은 오디를 하나 따서 입에 넣습니다. 다시 걸어가던 그 남자는 또 다른 나무에서 열매를 맛봅니다. 저는 약간 떨어진 곳에 서서 남자를 보고 있습니다. 생태공원에서는 열매를 채취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지만 이렇게 나무에서 몇 알 맛보는 것이야 새들도 양해를 할 것 같습니다. 무성한 뽕나무 숲에서 오디는 차고 넘치니까요. 

그 젊은 남자는 오디를 먹으며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그는 샛강 인근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일지 모릅니다. 종일 사무실에서 일하며 지친 심신을 오디 한 알이 씻어줬을 수도 있겠지요. 샛강의 뽕나무들만 보아도 나무들은 주는 게 참 많습니다. 그리고 나무들은 조건없이 언제나 나눠줍니다. 

#줬으면 그만이지
지난 주 금요일 (5.26) 한강살롱에서는 김주완 기자를 모시고 <줬으면 그만이지, 김장하 선생에게 배우는 실천과 나눔의 철학> 강의를 들었습니다. 김주완 기자는 김장하 선생을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보았고, 그의 이야기를 취재하여 방송도 하고 책도 썼습니다. 김장하 선생은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평생 기부를 하며 살았지만, 전혀 내세우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그의 삶을 통해 우리들은 실천하고 나누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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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살롱에서 김주완 기자 초청 강연회를 가졌습니다.)
이 편지를 쓰려고 컴퓨터를 켜다 보니 수달 그림이 뜹니다. 오늘 5월 31일이 세계 수달의 날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그런데 하단의 관련 뉴스 중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수달 키우기 가능할까?’라는 제목입니다. 지난 한국수달네트워크 창립 시 수달아빠 최상두 씨는 우리나라에서도 애완 수달이 늘고 있어 걱정이라는 말을 했어요. 수달이 귀엽긴 하지만, 집에 두고 키울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잘 살아가도록 자연에서 키워주면 어떨까요? 게다가 수달은 매우 활동성이 높은 동물이라 수컷 수달은 하루에 15km 정도까지 이동합니다. 

수달은 한강조합이 일하는 샛강에서도 또 중랑천에서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건강하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좋은 자연 환경을 잘 지켜줘야 하겠습니다. 그들은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 더욱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주고, 생태계 구성원들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들을 나눠줍니다. 자연은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나눠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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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수달의 날을 기념하여 컴퓨터 화면에 이런 기사들이 떴습니다.)
한강조합은 3월부터 중랑천에서 수달 모니터링을 해오고 있는데요. 수달들이 두 마리 이상 살아가는 것도 포착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안전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 서식지를 지키는 일은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당장 이번 6월부터는 중랑천에는 누가 살아가고 있는지 관찰하고 공부하고 느껴보는 프로그램들이 시작됩니다. 중랑천의 새들, 물고기들, 수달들, 그리고 꽃과 나무들. 우리 곁의 자연을 배우고 소중히 여기며 함께 살아가길 바라요. 

이제 여름이 시작됩니다. 
모쪼록 건강하시고 아침저녁으로 자연 산책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2023.05.31 
한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