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197_제비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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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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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197_제비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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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한강조합과 서울수달네트워크가 주최한 수달그림그리기대회 출품작입니다. c. 염형철)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지난 주에 잠깐 제주 고향집에 머물렀습니다. 저의 고향은 제주 서쪽 끝자락 중산간 마을인 낙천리. 땅을 파면 물이 잘 나와 아홉 개의 샘이 만들어졌다 하여 ‘아홉굿마을’이라고도 불립니다. 한자로는 ‘즐거울 락(樂)에 샘 천(泉) 자이니 저는 향수어린 마음으로 즐거움이 샘솟는 마을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어릴 때는 샘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도 있었어요. 민첩하고 수영을 잘하는 은희언니가 구해줬지요. 그런 제가 지금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에서 강과 습지를 위한 일을 하는 걸 보면 제 삶이 물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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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에서 제비들이 새끼를 키우고 있습니다.)
제주에는 비가 자주, 오래 내리는 것 같습니다. 제가 고향집에 머물고 있을 때에도 내내 비가 내리더군요. 질긴 비에 갇힌 듯이 집안에 앉아 그치기를 기다리는 사이, 저의 시선과 관심을 끄는 것은 제비들이었습니다. 제비들은 우리집 본채에 붙어 있는 작은 창고 건물 천정 구석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아버지는 제비들의 출입이 막힘이 없도록 창고 문을 항상 열어두십니다. 저는 무심코 한 번 닫았다가 다급하게 공중을 선회하는 제비를 보고 아차 하고 열었어요. 

제비 부모는 얼마나 부지런히 둥지를 오가는지 모릅니다. 지난 번에 올려다봤을 때는 새끼가 세 마리인가 했는데, 이번에 와서 보니 다섯 마리더군요. 그들은 어미가 날아들어오면 일제히 입을 한껏 벌리고 저요 저요 하듯이 짹짹짹 소리를 냅니다. 그 순간만큼은 제비가 온통 입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자주 관찰하다 보니 두 마리는 다른 세 마리에 비해 작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세 마리로 보였나 봅니다. 부모들은 몸집이 작은 새끼도 고루 잘 챙기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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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제비들은 어미가 날아오면 입을 벌리고 먹이를 기다립니다.)
어린 시절 고향집에서 보던 제비를 수십 년이 흘러 다시 보니 반갑고 고마운 마음조차 들었습니다. 저는 서울에 살면서 일 년에 두어 번이나 겨우 아버지 집을 다녀가고, 그나마 잠깐 엉덩이나 붙이다 금방 떠났습니다. 그런데 저 제비들은 매년 봄마다 아버지가 사는 집으로 오고 새끼들을 키울 때까지 머물렀겠지요. 

현충일이던 6일에는 중랑천에 갔습니다. 성동구의 지원으로 시작한 중랑천 생태문화 프로그램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첫날은 ‘중랑천의 새’ 수업이었는데 고양 장항습지를 중심으로 평생 생태보전에 힘써온 박평수 이사님이 진행했습니다. 그는 가족이 오면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수업을 해줍니다. 본격 탐조에 나서기 전에 새들에 대한 상식을 가르쳐줬어요. 여름철새, 겨울철새, 텃새, 나그네새, 길잃은새 (미조) 등등. 

“제비의 고향은 어디인가요?” 
그가 수업 중에 질문을 던지자 제가 끼어들어 “강남”이라고 대답했어요. 그러자 그는 웃으며 “땡”하고 말합니다. 제비의 고향은 강남이 아니라 여름을 보내고 있는 우리나라라고 하네요. 우리 고향집에 머무는 제비들에게는 우리집이 다름 아닌 고향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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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가 중랑천의 새들을 보고 있습니다. c.함정희)
6일 중랑천에서 본 것은 왜가리, 가마우지, 중대백로, 직박구리 같은 평범한 새들이었습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새들이죠. 그러나 망원경을 통해 그들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먹고 쉬고 날개짓하는 모습을 볼 때 새들에게 더 가까이 마음이 다가갑니다. 평범한 새들이 경이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설레기도 합니다.  

자연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이 그렇습니다. 경이로움과 기쁨, 때로는 위안을 주는 고마운 존재들이 아닐지요. 저는 제주 집에 머무는 동안 고향으로 온 제비들을 보며 마음이 포근했습니다. 혼자 지내는 아버지에게 가족이 되어준 제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보냅니다. 

지난 토요일(3일)에는 중랑천과 잇닿아 있는 서울숲에서 수달 그림 그리기 대회가 열렸습니다. 푸르른 숲 그늘에 엎드려 아이들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들은 우리 강에 살아가는 수달의 이야기를 듣고 상상하여 그렸어요. 많은 가족들이 오셨는데, 부모들은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쉬고 이야기를 나누며 소풍을 즐겼습니다. 싱그러운 초여름의 한나절이 가족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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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그린 수달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c.염형철)
중랑천에는 누가 살까. 중랑천에 깃든 동식물 이웃들을 만나는 프로그램은 계속 이어집니다. 알게 되면 보이고, 보게 되면 사랑하게 되죠. 이제 바야흐로 여름입니다. 

자연 속에서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2023.06.08 
한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