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203_족제비의 피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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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3-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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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203_족제비의 피난
“강물에서 나와요!”
하지만 당장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앞을 바라보던 톰은 죽음이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커다란 잔해들이 마지막으로 안간힘을 쓰듯 함께 엉겨붙어 강물 전체에 커다란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다.
 “자, 온다. 매기!” 톰은 깊고 거친 목소리로 말하며 노를 놓았다. 그러고는 매기를 꼭 끌어안았다. (조지 엘리엇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민음사. 2권 P426-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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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긴 여의샛강생태공원)
한강 선생님들께, 
무탈하신지요? 

지난 주 내린 폭우와 홍수로 인해 안타까운 희생과 피해가 있었습니다. 특히 청주 오송 지하차도 침수로 무려 열네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사연이 전해질 때마다 얼마나 안타깝고 슬픈지 모르겠습니다. 이 편지를 쓰면서 뉴스를 검색하니 오늘은 경북 예천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선 해병대원 1명이 급류에 휩쓸렸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저도 아들을 둔 엄마이다 보니 그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하면 먹먹합니다. 

매번 반복되는 말이지만 이번 사고도 단순 자연재해가 아닌 人災였습니다. 언론에서는 몇 백년 만의 호우다 뭐다, 기후변화 탓이다 하지만 관리부실과 통제 소홀이 더 맞는 말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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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샛강생태공원 여의못 다리가 물에 잠겨 윗부분만 보입니다.)
소설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은 1829년 영국 워릭셔 지방의 플로스 강가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곳 세인트오그스 마을은 전통사회에서 산업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 중인 마을입니다. 소설에서 주인공 남매인 톰과 매기는 홍수로 인해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들을 덮친 커다란 잔해들은 강가에 쌓아 두었던 목재 구조물들이었어요. 젊은 주인공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목재 구조물은 자본주의 사회가 일견 원인 제공을 했다는 것을 빗댄 건 아닐까요. 

우리 사회에서 정치 권력이나 자본 권력은 지금도 불필요한 개발과 부실 공사, 비용과 인력을 아끼려는 허술한 관리를 이어갑니다. 그래서 다리와 제방이 무너지고, 산사태가 나고 하는 것이 아닐까요. 

수해가 나니 우리 한강조합은 더없이 바쁘네요. 해를 거듭할수록 침수 빈도가 늘어나는 여의샛강생태공원에서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관리하고 있습니다. 새로이 활동을 시작한 성동구 중랑천도 모니터링하고 있고, 진천 농다리와 미호강 주변도 살피고 있습니다. 그나마 샛강에서는 몇 년치 경험이 쌓이니 매뉴얼이 생겼고, 한결 여유가 있습니다. 염형철 대표님은 지난 15일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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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치자 공원팀장님들이 샛강 복구작업에 한창입니다.)
‘샛강공원은 팔당댐 방류량이 초당 7000톤을 넘으면 침수되는데, 그 홍수는 4시간쯤 후에 샛강에 도착하기 때문에 팔당댐을 보고 샛강의 상황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중략) 
이 영향을 감안하면 샛강공원은 8시 즈음부터 침수가 시작되고, 10시 즈음엔 1-2m가 잠기게 되는 것입니다. 예상대로였습니다. 산책로가 잠길 즈음부터 안내방송도 하고, 출입 금지 표시와 안전띠도 둘렀습니다. 공원의 벤치나 시설들은 떠내려가지 않도록 이미 단단히 고정해 뒀고요.’ (염대표님 페이스북 내용 일부 인용) 

어제부터는 샛강에도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공원팀장님들은 뻘 흙 청소를 하는 등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오는 주말(22일)에는 청년 자원봉사자들이 대거 자원봉사 신청을 했는데 다시 큰 비 소식이 있어 전부 취소했습니다. 대신 29일 토요일에는 대대적으로 수해복구 활동을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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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숲에서 뻘 흙에 젖은 어린 비둘기를 발견해서 도움을 줬습니다.)  
수해가 나면 사람들의 피해도 크지만 동식물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며칠 샛강이 물에 잠기니 수달들은 어디로 대피해서 잘 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그제 현섭 팀장님은 눈앞에서 샛강 사면으로 올라가는 족제비를 봤다고 하네요. 사진을 찍으려고 바지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내는 사이 족제비는 잽싸게 두 번 왔다 갔다 하다 사라졌다고 해요. 포유류들은 홍수가 나면 제방 사면 쪽으로 대피하는구나 짐작해봅니다. 

수해 복구 활동을 하며 샛강숲에 사는 동물들의 거처도 세심하게 살필 생각입니다. 그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서식지도 잘 복구해주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샛강을 순찰하던 한 선생님이 뻘 흙에 덮여 기력이 없는 어린 비둘기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새를 씻겨주고 빵 조각을 먹인 다음 자연으로 돌아가게 했어요. 이렇게 오늘도 샛강에서는 서로 도우며 하루를 또 살아갑니다. 

무더위에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2023.07.19 
한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