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206_오래된서촌 오래된샛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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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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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206_오래된 서촌 오래된 샛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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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자연애플농장의 사과나무들과 초록사과들이 태풍을 잘 이겨내기를 응원합니다. c.마용운)  
이른 아침부터 비의 냄새와 바람의 기척을 살핍니다.  한라산을 비롯해 제주도 전역에 많은 비를 뿌린 태풍 카눈이 아침 9시경 통영을 지나 육지로 다가온다고 하네요. 

이 태풍이 오늘 하루 종일 전국을 흔들 것 같습니다. 농작물이며 시설, 그리고 무엇보다 인명피해가 생기면 어쩌나 걱정이 큽니다. 부디 다들 무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제 친구 부부는 함양에서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데, 어제는 SNS에 올라온 한참 영글어가는 초록 사과들을 보았습니다. 사과나무들도 모쪼록 잘 견디고 단단히 버티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다가오는 태풍에 저희들은 여의샛강생태공원에서 차분히 안전 점검과 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중순 침수 피해가 다 복구되기도 전이라 강과 숲에 사는 동식물들이 덜 피해보도록 최선을 다하려고요. 어제(8.9)는 대책회의를 하고 50플러스센터에서 지원하러 오신 선생님들과 조를 짜서 공원 순찰도 꼼꼼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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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태풍 링링 피해복구에 나선 사회적협동조합 활동가들과 자원봉사자들)  
2019년 가을에 태풍 링링이 한반도를 덮쳤을 때는 이곳 샛강숲의 나무들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굵은 버드나무들이 100 그루도 넘게 속절없이 쓰러졌어요. 태풍이 지나가자마자,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전도된 나무들을 자르고 산책로를 확보하던 기억이 선연합니다. 몇 년이 흐르는 사이 다행히 나무들은 부지런히 자랐고 이제 숲은 더 무성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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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김규원 기자의 책 <오래된 서촌 오래된 서울> 북 토크가 여의샛강생태공원에서 열렸습니다.)
#오래된 서촌 오래된 샛강
K는 2016년 서촌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는 아파트에 살지 않고 작은 한옥을 얻어 살고 있어요. 그는 도시와 공간에 대해 관심이 많은 터라 이사온 뒤 서촌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이웃들과 ‘서촌탐구’라는 모임을 만들어 함께 동네 답사를 다녔고, 서촌의 역사를 더 들여다보고 즐길 수 있었다고 하네요. 한겨레21 김규원 선임기자의 이야기입니다. 

Y는 2019년 봄 샛강으로 왔습니다. 집은 아니지만 이사나 다름없었는데, 그의 짐은 단출했습니다.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장갑이나 보호 장구들 따위가 보따리에 들어 있었어요. Y는 평생 강과 물에 관심이 있었고, 댐 건설을 막고 자연스럽게 흐르는 강을 지키는 일에 몰두해왔습니다. 그는 2018년 겨울에 샛강문화다리에 올라 샛강숲을 바라봅니다. 겨울이라 그런지 말라붙은 가시박 덩굴에 뒤덮인 숲이 더욱 황량하게 보였습니다. 그는 도심 속 공유지인 샛강숲을 시민들의 힘으로 가치있게 가꾸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을 창립한 염형철 공동대표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8월 8일 저녁에 이 두 사람이 만났습니다. 한강조합에서 김규원 기자의 새 책 <오래된 서촌 오래된 서울> 북 콘서트를 열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강을 사랑하는 인연으로 만났고 함께 강을 가꾸고 지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서촌에서 동네주민으로 살았던 인연도 있어 북 콘서트를 함께 진행했어요. 서촌의 공간들에 얽힌 역사 속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정선과 같은 화가의 그림 속에 나온 서울의 산과 강, 청계천의 변화, 용산의 과거와 현재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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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원 기자의 북토크에 참석한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김규원 기자는 서촌을 중심으로 역사 속 공간을 걷고, 역사를 배우고 사유합니다. 그가 살고 있는 공간을 중심으로 ‘역사가 만들어준 풍부한 이야기들을 잘 가꿔나가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강조합도 샛강을 비롯하여, 중랑천과 여강 등 우리 가까이 있는 강과 공원을 잘 가꿔나가는 노력을 하고자 합니다. 

또 J가 있습니다. 그는 신길동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주민입니다. 언론인 출신인 그는 샛강과 한강조합을 만난 이후 샛강을 매개로 세상과 소통합니다. 매일 샛강문화다리를 건너 숲으로 들어오는 그는 맨발로 샛강을 걷고 하루를 너끈히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어제 저녁에도 우연히 그를 만났는데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채 걸어오는 그를 보자, 제가 ‘샛강 요정’이라고 부르며 인사했어요. (그러자 그는 냉큼 ‘샛강 여왕’이라고 저를 부추겨 세우더군요.) 샛강숲길을걷는사람들 정지환 사무국장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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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을 즐기는 일만이 아니라 자원봉사에도 열심인 샛강숲길을걷는사람들 정지환 사무국장의 모습)
(사진 왼쪽 두번째)
김규원 기자의 북토크에서 이 세 사람이 다 만났습니다. 정지환 사무국장은 <오래된 서촌 오래된 서울> 책에 단단히 자극을 받았습니다. 언젠가는 <오래된 샛강 오래된 한강> 책을 낼 수 있게 차곡차곡 이야기들을 만들어가고자 다짐합니다. 우리가 사는 공간에 애정을 갖고 함께 가꿔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그리고 공간을 중심으로 환대하는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게 좋은 일이고요. 

태풍이 오면 샛강숲의 나무들도 서로 힘을 모아 지켜주길 바랍니다. 
그처럼 우리들도 주위 이웃들을 살피고 도움을 나눠주어야 하겠습니다. 

2023.08.10
한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