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208_개고생과 웃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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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3-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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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208_개고생과 웃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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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수달그리기대회 수상작 ‘수달의 기쁨과 슬픔’. 인생도 이처럼 양면적인 것)

일을 조금만 도와줄 수 있겠냐고그가 부탁했습니다조금만이라면 뭐자원봉사도 하는데 못할 게 있겠나 싶었어요그렇게 저는 한강과의 인연을 시작했습니다.

 

5년 전 여름에 저는 느긋한 일상을 살고 있었어요직장은 다니지 않았고 단편소설 습작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산책을 했죠아침에 집 근처 시민회관에 가서 다이나믹댄스 (에어로빅과 댄스의 중간)를 하는 게 하루의 중요한 일과였어요운동을 함께 하는 동네 여자들과는 꽤 친해졌죠.

 

그는 강을 위한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강 환경을 지키기 위한 정책 제인이나 캠페인운동을 평생 해왔는데 이제는 다른 걸 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사람들과 같이 직접 강을 가꾸고 강에서 노는 일을 해보면 좋겠다고도 했어요그에게서 사회적협동조합이란 것도 처음 들었습니다일반 협동조합과는 다르고비영리법인이면서도 나중에 사회적기업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지정기부금단체도 될 수 있고 정관에 명시된 공익적인 목적사업들을 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그는 함께 상근자로 일할 사람들을 몇몇 염두에 두고 찾고 있다고도 했고저에게는 설립 시 급한 일들이나 좀 도와주면 좋겠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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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샛강생태공원에서 일을 하는 염키호테 대표의 모습. 쉴 줄을 모른다.)

처음엔 그를 도와 반상근 정도로 일해볼 생각이었습니다. 2018년 7월 무렵의 일입니다다이나믹댄스반 언니들에게는 몇 달 자주 빠지게 될 거라고그러나 두어 달 지나면 다시 평소처럼 운동을 할 거라고 말해두었습니다은미씨일 해야 돼빨리 마치고 돌아와기다릴게요댄스반 언니들이 종종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8월 첫 주에 제주도에 놀러갔습니다전부터 잡아둔 여름휴가였어요하루는 은덕언니와 곶자왈 숲속을 걸었어요그런데 그 날 기억이 선명히 떠오르네요제가 곶자왈 숲을 다 걸어서 빠져나올 동안 그가 얼마나 자주 전화를 했는지창립총회를 위해 뭘 준비해야 하며설립 준비 서류로는 뭐가 필요하고누구들에게 연락을 해야 할지발기인 준비모임은 언제로 할지어디서 할지그는 묻고 또 물었습니다숲 속이라 핸드폰 통화음은 자주 끊기는데그는 질기게 전화를 하고 또 했습니다이렇게 성급한 분이었다니!

 

재촉하는 그에게 창립하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반상근이 아니라 상근으로 일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그 정도면 휴가중인 저에게 전화를 그만하겠지 싶어서요물론 그의 열정을 좋게 보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이렇게 간절하게 강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인데 도와주자 싶었지요그렇게 몇 달 기한으로 하려던 일을이제 중심에 서서 5년째 하고 있네요내일이면 한강조합 창립 5주년을 맞습니다잘 놀며 지내던 저를 채근하여 여지껏 한강에서의 삶을 살아가게 한 이가 누구인지 다들 아시지요염키호테 대표입니다.

 

이재학 과장님이 저더러 5주년 기념행사에서 한바시 (한강을 바꾸는 시간)’을 하라고 하더군요한바시는 세바시 (세상을 바꾸는 15)’을 차용한 것이지요과장님이 낸 숙제를 하느라 지난 5년의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그 사이 정말 많은 일이 있었구나 새삼 느꼈어요저는 좋은 것 5가지나쁜 것 5가지를 통해 한강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합니다그래서 각각 다섯 가지를 꼽아보는데 참 다행인 것은 좋은 것이 훨씬 많다는 겁니다. 

 
 

나빴던 것은 다섯 가지를 겨우 꼽을 정도로 생각해내기 어려웠다면좋은 것은 다섯 가지보다 넘쳐서 가장 대표적은 좋은 것들로만 골라야 했어요그 중에서 각각 한가지만 소개드려볼게요.

 

한강에서의 나쁜 것은 개고생입니다항상 몸을 쓰는 일이 많아요강과 숲을 위해 쓰레기를 치우거나 생태교란종을 관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고청소도 수시로 해야 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갖은 일들을 해치워야 하죠예를 들어지난 7월 하순에는 샛강 사우나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수해복구 자원봉사를 했어요자원봉사자들에게 ‘1kg 감량보장이라는 당근도 제시했죠그들은 땀을 몇 바가지 흘리더군요그러면 뭐하나요삶은 감자와 수박이온음료를 엄청 먹어서 몸무게는 오히려 느는 것 같더라고요. 5년 사이 저의 모습을 비교해 보니 역시 많이 늙었어요고생한 것이 그렇게 표가 나나 봐요. (다이나믹댄스를 그만둔 탓도 있겠고요.)

 

한편 나눔배움강문화산책만남환대웃음힐링공동체… 한강에서 얻은 좋은 것들입니다저는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 웃음이라고 생각해요신기한 것은 5년 동안의 사진들을 보면 내내 웃고 있는 사진들이더군요그렇게 힘들게 고생을 했는데 왜 하염없이 웃기만 할까요그 이유를 알고 싶으시다면 내일 한강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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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사람들은 언제나 환하게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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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저희들은 부지런히 많은 일들을 해나가고 있어요지난 주말에도 진천에서는 폭폭 찌는 더위 속에서도 드림잇 봉사단을 중심으로 볼런투어를서울에서는 어린이수달기자단이 생태공원 탐방을샛강에서는 샛강대학 가드닝과 요가 프로그램인문강좌가 있었고샛숲사 회원들이 세상에서 가장 느린 걷기도 했으며버드나무교실 자원봉사자들이 샛강숲에서 일을 하고 갔어요일요일 아침엔 수달언니들이 수달들 근황을 살피고 가기도 했어요한강 직원들과 도와주시는 한강플러스대한노인회 선생님들은 곳곳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고요.

 

종종한강은 너무 많은 거 하는 거 아니냐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하라는 말을 듣습니다다 즐겁자고 하는 일이니 죽자사자 일을 해서는 안 되겠어요그래도 한강을 생각하면 일을 하고 싶고자꾸만 웃음이 솟아요. 그 웃음을 나눠드리고 싶습니다.

어제 처서가 지났습니다슬슬 가을을 맞을 채비도 해야겠어요.

 

2023.08.24

한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