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천에 사는 흰목물떼새에게,
강을 따라 걷다가 보았어. 작은 모래톱, 거기 한가운데 가느다란 다리로 서 있는 너를. 낮게 흐르는 강의 중간에 만들어진 작은 모래톱은 너의 섬이었어. 겨우 집 한 채만한 크기의 별에 어린 왕자가 혼자 살았던 것처럼, 어린 아이가 누우면 꽉 찰 것 같은 모래섬에 너는 혼자 있었어.
사실 강을 따라 걷다가 나는 보지 못했어. 구름 사이로 쏟아지던 햇빛이 눈이 부셔서 손 가리개를 하고 모래섬을 한참 바라보았지만, 너의 모습을 분간하지 못했어. 옆에서 저기, 저기 한가운데 있잖아요, 하고 말해주길래 네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다고 얼핏 생각하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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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 작은 모래톱에 흰목물떼새가 살고 있어요. 보이시나요? c.한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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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오후 너의 사진을 받았어. 모래섬 한가운데 오롯이 서 있는 너의 모습은, 하얀 목과 배, 까만 눈동자와 부리, 그리고 가느다란 나뭇가지 같은 두 다리로 단단히 땅을 디디고 서 있는 너는 경이로웠어. 너의 섬과 너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우주였어. 뒤로는 푸른 강물이 흐르고…
탁한 물길처럼 느릿느릿 흘러가는 꽉 찬 도로의 자동차들, 묵직하게 가로지른 콘크리트 구조물들, 빠르게 돌진하는 자전거들, 여기저기 강변 풀섶에 비루한 모습을 감추려는 쓰레기들. 너의 섬을 둘러싸고 이처럼 사람들과 차들과 도로들과 쓰레기들은 소음과 질주의 폭력을 이루었어. 그런데 작은 강물을 사이에 두고 너는 마치 딴 세상에 있는 듯이 종종종 귀여운 발걸음으로 살아가고 있었어.
너를 단박에 알아채고 사진도 찍어준 분은 서울시립대 한봉호 교수님이었어. 지난 월요일 (9.18) 우리들은 중랑천에 누가 사나 보려고 모니터링을 갔거든. 우리는 군자교에서 만나 하류로 내려가며 강에 사는 동물들과 식물들을 살폈지. 물론 흙과 물과 땅과 돌과 주변 구조물들도 살피면서 말이야. 전날 비가 내려서 동물 발자국들을 잘 확인하기 어렵다고 했어. 그나마 교각 아래 동물의 발자국이 좀 있었는데 너구리 발자국이래. 새들은 두루 잘 알아볼 수 있었어. 교수님은 바로 옆 버드나무 위에서 벌레를 잡으려고 나무를 킁킁 살피는 오색딱다구리를 알아챘어. 오색딱다구리는 우리가 보건 말건 벌레를 찾느라 여념이 없었어. 도로 저 건너편에는 높이 자란 이태리포플러가 있었는데 거기가 집이고 먹이활동은 중랑천변의 나무들에서 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중대백로, 쇠백로, 민물가마우지와 흰뺨검둥오리들이 어울려서 지내는 것도 보았어. 하지만 가장 나의 마음을 끈 것은 작은 섬에 혼자 있는 너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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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변 버드나무에서 본 오색딱다구리 c.한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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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에게 물어보았어. 너는 어디서 나고 자랐는지. 너는 중랑천 상류 자갈밭이 있는 곳에서 태어났다지. 알이었던 너는 자갈들 사이에서 색깔이나 모양이 비슷해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지. 새들은 그렇게 자신들을 보호하지. 잘 자란 너는 이제 물길을 따라 작은 모래섬으로 왔구나.
교수님은 걱정하셨어. 이제 상류에는 다 준설을 해서 더 이상 자갈밭이 없다고. 강바닥을 끝없이 갈아없고 강에다 돈을 퍼부으려는 사람들이 있어. 그렇게 모래를, 자갈을 없애는 것이 뭔가 정비라는 일이라고 생각하나봐. 나중에 네가 알을 낳으려고 한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너의 작은 섬, 모래섬을 지켜주고 싶어. 찬찬히 강을 살피며 걷는 나도 너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지만, 차나 자전거를 타고 휙휙 지나가는 사람들, 강을 그들 기준으로 깔끔하고 일사불란하게 정비하려는 사람들은 더욱 너의 존재를 모를거야. 네가 우리 곁에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아름다운지 사람들에게 말하려고 해.
강을 걷는 동안 한봉호 교수님은 잠시 멈추더니 근처에서 물총새 소리가 들린대. 들리나요? 그가 말했어. 나는 도시의 소음 속에서 물총새의 소리를 분간할 수 없었어. 다만 그 작은 강에도 어떻게든 자기 생을 부지런히 꾸려가는 작은 새들이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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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8일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은 서울시립대 한봉호교수팀과 중랑천 생태조사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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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백로, 쇠백로, 민물가마우지, 흰뺨검둥오리... 중랑천의 여러 새들이 함께 하는 모습이 평화롭습니다. c.한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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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투구하고 악다구니하는 사람 세상에서 살아가다 보면 마음이 쉬이 피로해지곤 해. 흰목물떼새야. 물총새야. 오색딱다구리야. 그나마 너희들이 있어서 살만한 세상이라고 생각해. 아름다운 존재들에 눈과 마음을 씻을 수 있으니까. 너의 작은 섬을 지켜줄게. 오래도록 잘 지내길 바라.
수크렁과 코스모스 춤추는 강가에서 2023.09.21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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