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모감주나무에 노란 꽃들이 가득 피어납니다. 마치 황금 비가 내리는 것 같다고 해서 영어 이름은 Golden rain tree랍니다. 언제고 미호강가에도 우리가 심은 나무들이 황금비가 쏟아지듯 화사한 꽃을 피우겠죠. 그때까지 나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대추 한 알이 붉어지고 둥글어지는 데에도 태풍이, 천둥이, 번개가 몇 개씩 필요하다죠. 모감주나무가 파란 하늘을 배경삼아 노란 불꽃놀이처럼 피어나려면 몇 사람의 마음이, 손길이, 땀이 필요할까요. 나무들을 심던 날 우리 팀장님들은 저녁 늦도록 지주목을 묶고 나서 서울로 돌아왔어요.
대추 한 알이 둥글어질 때까지 무서리 내리는 몇 밤과 땡볕 두어 달도 필요하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오늘도 마침 누가 사온 대추를 먹었는데 잘 여문 대추를 씹으며 무서리와 땡볕과 초승달이 들어 있나 상상했지요. 모감주나무 노란 꽃이 우수수 지고 나면 초록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고 이어 까만 구슬 같은 것을 품게 되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간 동안 이 역시 고적한 여러 낮과 밤과 땡볕과 바람과 구름과 초승달이 있어야 할 겁니다.
미르숲에서 보았던 도토리나 밤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런데 샛강에 대뜸 등장한 호박은 좀 달랐습니다. 대추는 저절로 붉어지지 않지만, 호박은 저절로 둥실 부풀어오른 것처럼 보였어요.
여의샛강센터 옥상은 원래는 황무지 같은 곳이었어요. 저희가 오기 전에는 동화 속 거인의 겨울나라처럼 꽁꽁 잠겨서 몇몇 관목들만 각자 살아가고 있었어요. 조릿대가 많았고 앵도나무와 화살나무가 콘크리트 벽에 잇대어 지냈죠. 그러다 지난 몇 년 사이 프랑스 사람들, 장애인들, 또 아이들이나 가드닝 봉사자들이 꽃씨를 뿌리고 흙을 골랐어요. 그리곤 올 여름에는 호박씨를 심었나 봐요. 어느 날 줄기가 슬금슬금 기어오더니, 노란 꽃이 몇 군데 피고, 이내 호박이 영글기 시작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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