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더없이 날씨도 좋았고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던 추석 연휴였어요. 저도 느긋하게 푹 쉬었습니다.
일찍 일어난 아침에는 동네 하늘공원과 노을공원 자락을 걸었습니다. 눈에 익숙한 메타세쿼이아, 모감주나무, 산딸나무, 아카시나무 같은 키가 큰 나무들, 쥐똥나무, 화살나무, 개나리 같은 관목들, 아직도 달려 있는 몇 송이 수국과 꽃무릇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대단한 기세를 부리는 가시박을 보았습니다.
가엾게도, 몇몇 나무들은 완전히 가시박에 갇혔습니다. 어떤 나무는 코끼리가 타 앉은 모양새처럼 보였습니다. 겨우 보일락 말락한 나무의 아래 그늘을 미루어 아까시나무인가 버드나무인가 할 뿐이었어요.
난지천을 끼고 있는 노을공원 북사면을 걷다 보면 가시박이 숲의 한 면을 장악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른 잎사귀들은 줄기 따라 힘차게 뻗어나가 있습니다. 그 아래 몇 그루의 나무들이 있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나무들을 완전히 덮은 가시박들은 가을 볕과 대지의 물기를 한껏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온몸이 가시박에 칭칭 감긴 나무들은 어둠의 동굴에 갇힙니다. 언제 빛을 다시 보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가시박 씨앗들이 알알이 여물며 가을을 나고, 차가운 겨울이 오고서야 푸르등등한 기세가 꺾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무를 덮은 그 모양새 그대로 말라서 겨울을 나기에, 몇 계절을 해를 보지 못한 나무들은 창백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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