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217_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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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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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217_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
사람들도 그 어두움 속에서 쉼을 얻는구나 

그러면
우리도 더 어두워져도 괜찮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난영 책 <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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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 그림 C.이난영)
비바람이 세차게 불던 어느 날, 어디선가 황급히 새들이 날아와 나무의 어두움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그녀는 나무가, 나무의 어두움이 새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는 우리 역시도 좀더 어두워져도 괜찮겠구나… 하고 생각하죠. 이난영 작가 이야기입니다. 

며칠 전에는 어쩐지 좀 울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소용돌이치는 물살처럼 어떤 부정적인 생각이 끈덕지게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갑갑함을 씻어보려 신발을 꿰차고 하늘공원 자락으로 걸으러 갔습니다. 한동안 정신없이 살아서 그런지 잊고 있었던 우울감이었습니다. 저번에 언니가 갱년기로 인해 우울감이 있다고 했을 때에는 어떻게 잘 좀 이겨내보라고 쉽게 말을 했습니다. 막상 자신의 일이 되고 나니 말처럼 쉬운 게 아니구나 깨닫습니다. 내처 반성을 합니다. 주변에 누군가 심적으로 힘들거나 할 때, 너무 쉽게, 혹은 건성으로 위로의 말을 건넨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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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기대어 우리는 더 어두워져도 괜찮겠구나... 작가는 그렇게 말합니다. C.이난영)

느티나무와 단풍나무, 화살나무들은 단풍이 들기 시작했더군요. 특히 화살나무 단풍이 화려하여 그 곁에 한참 서서 붉은 단풍과 파란 하늘의 대비를 눈이 시도록 바라보았어요. 그렇게 나무 곁에 서 있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이난영 작가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 책을 읽었습니다. 정겹고 아름다운 그림들과 동화 같은 이야기들이 담긴 책이라 금방 읽었습니다. 제가 ‘동화 같은’이라고 한 것은 아름답고 행복한 이야기들만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책에 나오는 나무들과 사람들은 더러 잘리고, 베어지고, 병들고 죽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무들과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돌봄, 연대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화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큰 나무의 어두움 속에서 쉬는 새들을 보며 ‘우리도 더 어두워져도 괜찮겠구나’ 하는 성찰이 놀랍습니다. 우리는 흔히 우울과 실의, 낙담과 좌절이라는 어두움을 당장 극복해야 할 부정적인 것으로만 치부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조금 더 어두워져 보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두워졌을 때 비로소, 밝음이, 평범한 일상이라는 온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지요. 물론 그러한 어두움에 침잠하여 나오지 못할 지경이면 안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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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생명들을 살리는 나무가 고맙습니다. c.이난영)

어린 시절에는 늙은 팽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에서 자주 쉬곤 했습니다. 나무에 매달리기도 하고 기대어 눕기도 하며 오래 쉬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제주 팽나무의 단단하고 거친 감촉이 떠오르네요. 샛강에서 보는 팽나무들은 나무가 유연하고 부드럽게 뻗어있고 수피도 한결 매끈해 보입니다. 그제 샛강 숲으로 오신 분들을 안내하며 “제주의 팽나무는 제주 사람들의 삶을 닮아서 여기 팽나무들과 달리 굴곡져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는 나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나무와 꽃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가난한 이웃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들에 대한 사랑 고백이기도 합니다. 나무는 죽은 길고양이의 마지막을 위해 뿌리를 뻗어 안아주고, 어떤 사람들은 나무들이 함부로 베어지지 못하게 껴안습니다. 그렇게 나무와 새, 나무와 고양이, 나무와 사람들이 서로 지키고 보듬어줍니다. 

이난영 작가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그림 그리기로 위안을 삼은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소풍을 갔다가 볼품없는 나무를 그렸는데 선생님이 그 그림을 칭찬해주셨다고 해요. 저 역시도 가난하게 자랐는데,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며 외로움을 견뎠던 것 같아요. 저도 어릴 때 쓴 일기에 대해 선생님이 칭찬해주신 덕에 글쓰기에 관심을 계속 가지게 되었죠. 그래서 그런지 책에 담긴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나 아버지 이야기가 금방 이해가 되었습니다. 

요즘 여의샛강생태체험관에서는 <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 원화 전시를 하고 있어요. 오는 11월 4일에는 작가의 큐레이션과 샛강 나무 산책, 그리고 북 토크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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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가 햇살 조각을 멀리 뿌립니다. C.김정순)

이 가을, 나무의 어두움에 숨어 조금은 어두워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너무 오래 머무르지는 마시고요. 찰랑거리는 가을 햇살도 점점 사위어 갑니다. 억새꽃이 조금씩 말라가며 햇살 조각들을 바람에 날려 보내는군요. 

나무 곁에서 행복하시길 빕니다. 
2023.10.26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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