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는 늙은 팽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에서 자주 쉬곤 했습니다. 나무에 매달리기도 하고 기대어 눕기도 하며 오래 쉬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제주 팽나무의 단단하고 거친 감촉이 떠오르네요. 샛강에서 보는 팽나무들은 나무가 유연하고 부드럽게 뻗어있고 수피도 한결 매끈해 보입니다. 그제 샛강 숲으로 오신 분들을 안내하며 “제주의 팽나무는 제주 사람들의 삶을 닮아서 여기 팽나무들과 달리 굴곡져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는 나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나무와 꽃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가난한 이웃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들에 대한 사랑 고백이기도 합니다. 나무는 죽은 길고양이의 마지막을 위해 뿌리를 뻗어 안아주고, 어떤 사람들은 나무들이 함부로 베어지지 못하게 껴안습니다. 그렇게 나무와 새, 나무와 고양이, 나무와 사람들이 서로 지키고 보듬어줍니다.
이난영 작가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그림 그리기로 위안을 삼은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소풍을 갔다가 볼품없는 나무를 그렸는데 선생님이 그 그림을 칭찬해주셨다고 해요. 저 역시도 가난하게 자랐는데,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며 외로움을 견뎠던 것 같아요. 저도 어릴 때 쓴 일기에 대해 선생님이 칭찬해주신 덕에 글쓰기에 관심을 계속 가지게 되었죠. 그래서 그런지 책에 담긴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나 아버지 이야기가 금방 이해가 되었습니다.
요즘 여의샛강생태체험관에서는 <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 원화 전시를 하고 있어요. 오는 11월 4일에는 작가의 큐레이션과 샛강 나무 산책, 그리고 북 토크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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