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222_어머니의 자연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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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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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222_어머니의 자연산책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부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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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아들과 산책하다가 쉬고 있는 우리 어머니)

가을의 막바지에 이른 오늘은 몹시 춥습니다. 종일 영하의 기온을 오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미 겨울이 시작된 것 같아요. 두툼한 옷으로 잘 껴입고 따뜻하게 다니시기 바랍니다. 

꽤 추운 날씨임에도 샛강숲에는 여전히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어떤 분들은 맨발걷기 효능이 부풀려졌다거나 과학적으로 맞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뭐가 맞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저는 맨발걷기를 하는 많은 분들이 절실하기 때문에 한다고 생각해요.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기 위한 절실함으로 얼어가는 땅 위조차 걷는 것이지요. 

그나마 샛강숲은 윤중로 제방 아래 낮은 땅에 있어 아늑합니다. 겨울에 자연산책이 필요하시다면 이곳 샛강숲으로 나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 

며칠 전 일요일에 하루 남짓한 일정으로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나날이 노쇠해지시는 어머니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잠깐 짬을 내어 내려갔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 다정다감한 딸인가 싶지만 막상 어머니를 만나면 그저 퉁명스럽기 짝이 없는 딸입니다. 치매인 어머니가 도돌이표처럼 같은 말을 하고 또 하면 아예 먼 바다만 바라보며 들은 체를 안 하거나 그만하시라고 면박을 주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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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인 조카가 할머니 넘어질까봐 앞에서 지키고 서 있습니다.)

어머니는 식사를 하고도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에 많이 드십니다. 그리고 잠이 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살이 찔 수밖에 없어요. 그렇기에 자식들은 잠깐이라도 어머니를 산책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 어머니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을 내려와야 합니다. 계단 옆의 철재 난간을 붙잡고 의지하여 한 걸음씩 느릿느릿 걷습니다. 내가 영 늙어져부난, 영 되불 줄 알아시크냐… 

당신의 늙음과 병듦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는 점점 산책을 귀찮아 합니다. 그래도 자식들은 조금이라도 더 숲으로 어머니를 이끌지요. 그나마 제주도는 조금만 나가면 걷기 좋은 숲길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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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4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여의샛강생태공원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지난 금요일 (11.24) 샛강숲에서는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을 비롯한 인권위 직원들 56명이 자원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샛강 옆에 자리한 나이든 뽕나무가 세굴로 인해 뿌리가 드러나고 쓰러질 위기에 있는 것을 도와주는 일을 했습니다. 뽕나무숲까지 그들을 안내하며, 사회적 배리어 프리 (Social Barrier Free) 공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여의샛강생태공원을 소개했습니다. 인권위에서 일을 하셔서 그런지 여느 그룹보다 더욱 공감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공원 안내판과 목책 및 밧줄로 연결한 안전한 탐방로, 보행이 불편한 분들이 걷기 좋은 마사토 포장의 무장애나눔길, 어린 아이들이 놀기 좋은 자연놀이팡, 쓰러진 나무들을 잘라 만든 자연스러운 벤치들 하며 공원 곳곳에 있는 장애인이나 노약자, 사회적 배려 계층을 위한 시설과 활동을 소개했습니다. 

사회적 배려 계층은 다만 수혜자에 그치지 않고, 샛강숲을 돌보는 주체이기도 하다는 것도 설명했습니다. 장애인들이 쓰레기를 줍고 샛강숲에 어울리는 작은 꽃밭을 가꿉니다. 외국에서 온 청소년들이 생물다양성을 증진하기 위한 자원봉사 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무장애나눔길에서 맨발걷기를 하는 어르신들은 빗자루를 들고 길을 쓸며 거친 돌을 골라내거나 낙엽을 한켠으로 쓸어냅니다. 이렇게 겨울이 다가오는 샛강숲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태복지와 같이 뭔가를 얻어가고, 동시에 강과 숲을 가꾸는 봉사를 베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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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국가인권위 직원들이 노거부 뽕나무를 살리기 위한 자원봉사를 열심히 했습니다.)

편지 서두에 정호승 시인의 시를 인용했습니다. 추위에 떨며 귤을 파는 할머니에게는 귤값을 깎아달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위에 온기를 나누고, 다만 얼마라도 가진 것들을 나누면서 지냈으면 합니다. 

여의샛강생태공원 센터에서는 지난 주에 커다란 보온통을 샀습니다. 뜨끈한 보리차를 한 통 끓여 놓고 오가는 시민들을 대접하려고요. 심신의 건강을 위해 샛강숲에서 자연산책을 해보세요. 산책을 마치면 샛강센터에 보리차 드시러 오세요. 저희가 나누어 드릴 수 있는 온기가 그런 것들입니다. 

포근하게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2023.11.29 
한강 드림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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