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돈을 세고 또 세어봅니다. 몇 번째인지 모릅니다. 5만원짜리 지폐를 한 장 한 장 넘겨보고 지갑에 잘 넣습니다. 아, 돈이 이섰구나. 엄마는 안도하고 차창 밖을 내다봅니다. 그것도 잠시, 엄마는 다시 저에게 묻습니다. 나 돈 이시냐?
몇 년째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에겐 돈이 아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엄마는 수시로 자식들에게 전화를 해서 (1번부터 7번까지 차례대로 전화하시곤 합니다.), 통장이 안 보인다, 통장을 보니 50만원이 인출되었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나는 돈이 한 푼도 없다 등등 하소연을 하십니다.
평생 거친 노동으로 살아오신 당신은 70대 중후반까지도 자식들 몰래 밭일을 나가곤 했습니다. 당근을 캐거나 마늘을 거두는 일을 해서 하루 품삯을 받곤 했지요. 그렇게 해서 통장에 넣어둔 현금이 꽤 쌓였습니다. 엄마는 당신이 키워준 우리 아이에게 각별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보면 무조건 지갑을 여십니다. 문제는 치매이기 때문에 돈을 계속 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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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엄마 지갑에 지폐가 꽤 있었는데 “우리 지우 껌값이나 줘야지.” 하고 돈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몇 분 안 되어 잊어버려 다시 “우리 손지 껌값 받으라.” 하고 또 주고, 이게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고 합니다.
엄마를 보면 애잔한 마음이 듭니다. 평생 고생만 하셨는데도, 그나마 있는 돈을 어떻게든 자식들에게 주고 싶어 하시니까요. 자식들이야 당신 맛있는 거 드시고, 좋은 옷 입고, 즐거운 데 놀러다니는 데 썼으면 하는데 그렇습니다.
제주도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돈으로 합니다. 집들이에도 병문안에도 돈 봉투를 건넵니다. (그런 풍습을 몇 번 보고 나서 저도 오래 전에 은사님 병문안을 가서 돈 봉투를 건넸다가 몹시 무안한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이제는 누군가에게 뭘 해주고 싶을 때 차라리 돈으로 주는 게 편하다고 여겨집니다. 이렇다 보니 누군가가 역으로 저에게 돈을 주면 그게 어떤 마음이 담긴 것인지 단박에 알아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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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사랑 고백
부모님께 드리고자 해도
이미 부유하시고
자녀에게 주고자 해도
이미 마음이 부자네요
새 휴대폰을 사려고 해도
고장이 나질 않고
새 옷을 사려고 해도
있는 옷이 몸에 맞네요
저에게는 쓰임이 적으니
조합에서 써주세요.’
한강조합에 2023년 여름에야
우당탕거리며 들어왔습니다.
차후에 열정적인 사랑의 시기가 지날지 몰라도
아무튼 지금은, 제 사랑 고백을 받아주세요.
늘 응원합니다.
2023. 12. 11.
00 엄마 000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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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그녀로부터 불쑥 두 개의 봉투를 받았습니다. 봉투 하나에는 고운 손편지가, 다른 하나에는 빳빳한 신권으로 5만원짜리 지폐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평소 샛강에 오셔서 교육이나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하시고, 자원봉사에도 적극적인 분입니다.
그녀의 기부금을 받아 드니, 근심 걱정이 눈 녹듯이 사라지며 용기가 났습니다. ‘열정적인 사랑의 시기’라니, ‘사랑 고백을 받아주세요’라니…
제주도 할머니에게 ‘껌값’과 사랑을 받으며 자란 우리 아이와 오늘 카톡을 주고받을 일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대화 말미에 “아 글고” 하고 운을 떼더니 한강에 10만원 후원했다고 전합니다. 아이가 직장을 다니며 번 돈으로 기부를 해주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이가 보기에도 엄마가 일하는 한강조합이 기부할만한 단체라고 인정해주는 것이니까요.
며칠 전 한겨레신문을 보니, 연말에 단체들에 내는 기부금이 줄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기부금이 수혜자에게 얼마나 가는지 신뢰가 없어서 수혜자에게 직접 기부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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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경제도 어렵고 정치사회적 환경도 변하다 보니 시민단체들이 더 어려움을 겪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저희에게 기부해주시는 분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한강이 하는 일을 믿고 지지하는 사랑의 표현이시니까요. 연말이다 보니 누가 기부금을 더 안주나, 그런 데 관심이 쏠려 있는 게 솔직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을 받고 보니, 저도 다른 단체에 조금 더 기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사랑 고백을 받으니, 저도 누군가에게 사랑 고백을 할 마음이 생기는가 봅니다. 연말연시 주변에 사랑을 나누는 따뜻한 겨울 나시기 바랍니다.
2023.12.14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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