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가까이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어 달큰한 배추 냄새도 나고 알곡 냄새도 풍겼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조용조용 움직이며 배추와 볍씨를 뿌리고 있었습니다.
“저기 넓적부리 있네. 물닭들은 참 많아요. 그런데 원앙들이 여기 안 보이네.”
사람들은 쌍안경으로 새들을 관찰하며 먹이를 뿌려주고 있었습니다. 야옹야옹. 저는 작은 소리로 기척을 냈습니다. 그러나 저의 목소리는 바람 소리와 차 소리에 묻혀 그들에게 닿지 못했나 봅니다. 먹이를 뿌리고 쓰레기를 줍던 그들은 이내 멀어져 갔으니까요.
밤이 되니 너무 추워서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몸을 아무리 작게 웅크려도 한기를 이기기 어려웠습니다. 배도 고팠습니다. 그러나 캐리어 바깥, 낯선 컴컴한 세계가 무서워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릅니다. 저는 하루하루 야위어 갔고, 목소리를 낼 기운이 없었습니다. 저는 점점 정물처럼 변하여 가는 숨만 쉬며 버티고 있었습니다.
밤에는 가까이서 수달과 너구리도 지나고, 한 번은 고라니도 겅중겅중 뛰어 갔습니다. 새들은 배추와 볍씨를 먹으러 몰려와서 야단스러웠습니다. 수십 마리가 몰려와서 먹는 통에 저는 더더욱 갈대밭 속에서 숨을 죽였습니다.
먹이를 주고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은 며칠에 한 번씩은 꼭 왔습니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지내며 저는 잠자고 꿈꾸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아늑한 누군가의 품, 고소한 생선 냄새가 풍기는 음식, 따뜻한 잠자리가 그리웠습니다. 저는 갈대 속에서 버려진 쓰레기처럼, 아무도 찾지 않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새들 먹이를 주던 그 남자가 쓰레기를 치우러 찾아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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