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 233_원앙 옆 까치와 너구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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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한 까치에게 물을 먹여준 안연수 자원봉사자 C.윤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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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풀섶에서 기진맥진 탈진한 까치를 보았습니다. 조심스레 다가가서 양손으로 들어올려도 까치는 저항도 없이 가만히 있습니다. 무슨 일이니? 그는 까치에게 눈빛으로 물었죠. 까치를 물가로 데려가자, 까치는 허겁지겁 물을 마십니다. 어느 정도 물을 마시자 그는 다시 까치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줍니다. 그는 자주 중랑천에 자원봉사를 하러 나오는 안연수 님입니다.
그녀는 유리창에 부딪혀 죽어 있는 붉은머리오목눈이를 보았습니다. 덤불 사이로 경쾌하게 드나들었을 이 작은 새는, 그 경쾌함으로 날아다니다가 투명한 창에 비친 하늘로 닿고 싶었나 봅니다. 단단하고 차가운 유리창은 붉은머리오목눈이를 내동댕이치고 죽음으로 몰았습니다. 그녀는 새의 죽음을 애도하며, 유리창에 조류충돌방지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진천 미호강과 미르숲에서 생물다양성 증진 활동을 하는 박비호 님이 어제 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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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붉은머리오목눈이, 뱁새라고도 불리는 사랑스러운 새입니다. C.박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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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모양의 작은 섬은 지난 1월에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자원봉사자들이 만든 섬입니다. 쉴 곳이 부족한 원앙과 같은 새들이 쉬어가라고 중랑천에 만든 몇 개의 섬 중의 하나인데, 기왕에 만드는 것이니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 모양으로 만들자고 해서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어제는 연인들의 사랑을 기리는 발렌타인 데이였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랑의 섬에서 숨을 거둔 새끼 너구리를 보았습니다.
겨울철 먹이가 부족했는지, 몸이 약해 죽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죽은 지 며칠 지났는지 연갈색 털에 덮인 너구리의 몸은 더욱 작아 보였습니다. 그는 양지바른 주변에 땅을 팠습니다. 봄이 가까워서인지 흙은 보드랍고 온기를 품은 듯했습니다. 그는 너구리를 땅에 묻고 근처에서 판판한 돌을 하나 골라 비석도 세워줬습니다. 너구리의 짧은 삶은 춥고 쓸쓸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너구리의 죽음은 애도를 받았으며 어미의 품처럼 따뜻한 흙 속으로 돌아갔습니다. 너구리에게 무덤과 비석을 마련해준 사람은 신석원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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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너구리를 잘 묻어주고 비석까지 세워준 신석원 한강조합 감사님 C.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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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은 여의샛강생태공원에 이어 성동구 중랑천과 진천 미호강 일대에서 생물다양성 증진을 위해 강 생태계를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올 들어 중랑천과 미호강에서도 각각 시민 운영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시민과학자 모임, 철새지킴이 모임, 모니터링단, 시니어 활동가단 등 시민들의 활약이 대단합니다. 시민들은 생태를 조사하고 배울 뿐만 아니라 생물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서식처를 보호하고 지켜주는 일들을 합니다.
중랑천에서 철새들의 서식처를 보호하고 원앙 먹이주기를 한 것은 작년 12월 22일부터입니다. 지난 1월에는 중랑천 원앙들이 세간의 관심을 크게 받기도 했죠. 한강조합 자원봉사자들은 사람들의 관심이 크건 적건 무관하게, 꾸준히 야생동물의 편에 서서 지키는 일을 합니다. 수요일과 토요일, 일주일에 두 번은 정기적으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모니터링은 수시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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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 하늘을 힘차게 나는 흰꼬리수리 C.최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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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나 궂은 비가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한강 중랑천팀과 자원봉사자들은 쉬지 않습니다. 어제도 열혈 자원봉사자들과 시니어 중랑천 활동단 (‘우리는 중랑천을 가꿔요.’라는 의미로 ‘우중가’란 재미있는 이름도 지었다는군요.)이 모여 많은 일을 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중랑천에서 온종일 살았던 최종인 선생님, 어디서 배추잎 네 망을 차에 가득 싣고 나타난 산타 같은 신석원 선생님, 휴가 중인데 근처 볼일이 있다는 핑계로 나타난 윤상희 활동가, 중랑천 시민운영위원장으로 봉사하는 민권식 선생님, 84세 고령에도 생태보호 활동에 자주 오시는 박종학 선생님, 단짝처럼 붙어서 매주마다 하루는 샛강, 또 하루는 중랑천에 가서 봉사를 하시는 고연희 김미경 선생님, 일을 너무 잘해서 사람들이 환호하는 안연수 선생님. 이분은 토요일마다 오시던 분인데 일을 잘하니 다른 분들이 수요일도 와달라고 부탁했다는군요. 자원봉사를 하러 수시로 오다가 이제는 아버지까지 모시고 나오는 정희정 선생님(영화 ‘수라’에 출연한 습지 연구자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중랑천을 삶터이자 일터로 삼은 염형철 대표와 함정희 팀장 같은 한강 일꾼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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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 데이에 중랑천 자원봉사에 나선 사랑이 넘치는 분들 C.함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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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집을 짓는 멧비둘기가 부지런합니다. C.최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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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하루 동안에도 중랑천 소식은 마치 야생동물의 왕국을 방불케 합니다. 시작은 원앙 밥주기였습니다. 원앙 밥을 주면 물닭들도 청둥오리들도 넓적부리들도 먹습니다. 비둘기와 까치들도 더러 먹고요. 사람들 마음은 누구는 더 주고 싶고, 누구는 덜 주고 싶겠지만, 자연은 적당하게 어울려 나누어 먹으며 살아갑니다. 새들에게 밥을 주고 쓰레기를 치우다 보면 많은 생명들을 만납니다.
최종인 선생님은 푸른 하늘을 활강하는 흰꼬리수리를 만났고, 날이 포근해져 집짓기에 바쁜 멧비둘기도 살폈습니다. 신석원 선생님은 봄날인줄 알고 해바라기 하는 거북이를 만났고, 안연수 선생님은 쓰러진 까치를 발견하고 물을 먹여주었고요. (까치가 은혜를 갚을지 기대해봅니다.) 추운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너구리는 잘 묻어주었습니다.
강의 작은 주민인 야생동물들은 도심에서 살아가는 일이 녹록치 않습니다. 환경은 갈수록 황폐해지기 일쑤이고, 애써 집을 짓고 새끼들을 키우다가도 개발과 정비의 포크레인에 모든 것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먹을 것은 부족하고, 수시로 위험에 노출됩니다. 한강조합의 자원봉사자들은 그런 존재들에게 연민의 마음을 가진 분들이 아닐까 합니다.
날이 꽤 포근해서 요즘은 봄날 같습니다. 샛강숲을 걷다 보면 흙이 한결 부드러워진 것을 느껴요. 봄이 오면 더 많은 동물들을 만나게 되겠지요.
주어진 삶을 부지런히 살아가는 동물들처럼, 우리도 하루하루 더 귀하게 살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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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들과 사이좋게 살아가는 강가에서 2024.02.15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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