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242_나무들에게 안부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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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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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242_나무들에게 안부를 묻다
이 봄에 나는 어느 잃어버린 말을 찾고 싶다 
어느 누구에게 못한 말을 다른 누구에게 하려는 것처럼 
일인칭의 어느 말을 누군가에게 하려는 것이다. 
매화에게 못한 말을 목련에게 
목련에게 못한 말을 산수유에게 
산수유에게 못한 말을 산벚나무에게 
앵두나무, 생강나무, 복숭아꽃, 살구나무에게 
이 봄에 나는 누군가에게 헤야 할 사랑의 고백을 
누군가에게 고백해야 한다 
(김승희 시 ‘미선나무에게’ 부분 인용) 
  
세월호 10주기인 4월 16일 아침에 친구가 보내준 시 ‘미선나무에게’를 읽었습니다. ‘당신에게 못한 일인칭의 사랑의 말을 / 오늘 나는 또 누군가에게 꼭 해야 한다’는 시인의 말을 듣고 온종일 마음에 품고 지냈습니다. 세월호 아이들에 대한 슬픔과 죄책감을 지니고 10년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 시는 가만가만 위로를 건넵니다. 

샛강숲에서도 작고 하얀 꽃을 조용히 피우고 거두던 미선나무들을 생각합니다. 시인은 다른 나무도 아니고 미선나무를 호명하고 있네요. 작고 여린 듯해도 존귀하게 서 있는 존재여서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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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윤중로 벚꽃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언제 꽃이 피었냐는 듯이, 윤중로 벚나무들의 화양연화는 사라졌습니다. 꽃그늘 아래서 웃고 떠들고 손을 잡았던 무수한 사람들도 어디론가 떠났군요. 지난 일요일에는 샛강센터에 홍콩 사람으로 보이는 외국인 두 분이 찾아왔습니다. 체리 블라썸, 어디에 있나요? 그들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체리 블라썸은 더 이상 없어요. 지난 주에 한창이었죠. 그러나 일주일 정도만 피는 걸요. 이제는 다 사라졌어요. 이 앞의 나무들이 바로 그 나무들이죠… 그들은 아쉬운 미소를 지으며 떠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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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개복숭아나무)

사월에 무수한 생명들과 눈맞춤을 하고 마음을 나눕니다. 그 중에도 단연 나무들과의 시간이, 나무들과의 교감과 추억이 많습니다. 벚나무가 지고 난 거리에 한참 서서 며칠 전까지도 꽃을 따먹으며 행복한 노래를 부르던 직박구리들을 떠올렸습니다. 벚나무 뒤로 화려하게 피고 좀더 오래 꽃을 달고 있는 개복숭아나무. 복숭아꽃을 바라보며, 어린시절 제주도 중산간 마을 빌레빼 웃가름 보리밭 가는 길에 사이사이 서있던 개복숭아나무를 생각합니다. 어린 아이에게도 아름다움이 주는 황홀함이 뭔지 알게 해준 나무, 여름이 지나가면 시큼털털한 열매로 공복을 채워주던 나무… 

개복숭아나무를 보며, 밭에서 소를 몰며 일을 하던 젊은 아버지의 모습도 가져옵니다. 허리춤에 낡은 라디오 하나 매고, 라디오를 들으며 어영차 일을 하던 아버지, 일로 왕 확확 일덜 허라, 우렁우렁 소리치던 아버지. 그리고 지금은 작은 먼나무 아래 고요히 잠들어 계신 아버지.   
세월호 10주기를 보내며, 떠나간 사람들과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나무들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버드나무야, 팽나무야, 모감주나무야, 미선나무야, 모과나무야, 먼나무야, 동백나무야, 벚나무야, 쥐똥나무야, 조팝나무야, 화살나무야, 능소화야, 인동초야… 

강의 생태를 보전하는 한강의 일을 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식들을 듣습니다. 나무에 관해서라면, 무참히 잘려나가거나 강전정을 당해 남루해진 나무들 소식도 자주 듣지요. 특히 전주천의 버드나무들을 비롯한 여러 하천의 나무들은 하천 정비라는 이유로 희생되곤 합니다. 그런 나무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우리들은 계속 나무를 심는 일을 합니다. 

작년 가을에는 미호강변에 모감주나무들을 심었습니다. 현대모비스 생물다양성 ESG 활동으로 심은 나무들이었지요. 그 때 가을에는 좀 가물었던 터라 우리 직원들은 매일같이 물을 주며 나무가 죽지 않을까 노심초사 돌봤습니다. 다행히 나무들은 잘 살아남았고, 어제 찾아갔을 때 보니 건강하게 잎사귀를 내기 시작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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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미호강에서 왕버들 어린 나무를 심다.)

농다리 인근 미호강변 도로에는 가로수가 없는 구간이 많습니다. 지난 주에는 어린 왕버들 묘목을 170주 캐서 미리 준비한 다음 강변에 심었습니다. 고맙게도 이번 주초에 비가 흠뻑 내려서 이 왕버들 나무들은 잘 뿌리를 내릴 것 같습니다. 

중랑천 강가에서는 지난 겨울을 지나며 어린 참느릅나무와 화살나무들을 심었습니다. 새들이 사는 곳을 보호하고 아늑하게 꾸며볼 요량이지요. 사람들이 오가는 길가 곁으로는 정원을 꾸미고 꽃들을 심고 있습니다. 시니어 봉사단 우중가(우리는 중랑천을 가꿔요) 분들이 심은 튤립 구근에서는 꽃들이 피어나고 있어요. 이 세상에서의 삶을 다하고 죽은 버드나무는 잘려져, 중랑천 정원 곁의 의자가 되었습니다. 버드나무 의자에 앉아 강물처럼 흘러가는 세월과 떠나버린 사람들, 다시 피어나는 생명들을 생각합니다. 사무치는 그리움과 회한을 나무 곁에 서서 잠시 부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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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에서 나무를 심다. C.김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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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나는 튤립 뒤로 보이는 버드나무 의자들. C.함정희)

세월호 10주기를 보내는 이 사월은 애도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아울러 생명을 돌보고 지키는 일도 쉬지 말아야겠습니다. 박준 시인이 어느 시에서 말했듯이, 나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사월의 샛강숲에서 
2024.04.18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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