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244_봄소풍을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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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4-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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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244_봄소풍을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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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에 봄소풍을 갔어요. C.함정희)

봄소풍을 갔어요. 때는 4월 중순이었고 맑게 갠 날씨가 맞춤했어요. 우리들은 줄은 지어 걸어갔어요. 올레를 지나 들길을 건너 당멀오름으로 갔어요. 좁은 길을 지날 때에는 보리수나무 가지를 제치거나 찔레덩굴을 피하면서 걸었어요. 달큼한 보리수꽃 향기와 아까시꽃 내음이 어우러져요. 햇빛 아래 오래 걸어서인지, 꽃 내음 때문인지 조금 어지러운 기분도 들어요. 체육복을 입은 다리 사이로 잘 자란 풀들이 스쳐요. 사락사락 기분 좋은 소리, 벌들이 잉잉대는 소리가 들려요. 

걸을 때마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이 가방 속에서 달캉달캉 소리를 내요. 분홍 소시지와 노랑 단무지 물이 들어 알록달록해진 김밥과 눈알사탕이, 과자 봉지와 삶은 계란, 음료수 같은 것들이 가방에 들어 있어요. 한참을 걸어 잘 자란 소나무들과 푸른 언덕이 있는 오름에 도착했어요. 나무 그늘 아래 가방을 부리고 몇 명씩 모여 앉아요. 소풍이 막 시작되는데, 벌써 허기가 느껴져요. 멀리서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요. 

친구들의 장기자랑을 구경했어요. 그리고 도시락을 먹었죠. 포만감에 젖어 나무 그늘 아래 누웠어요. 부드러운 바람과 아이들의 목소리가 아득해요. 뭔가 얼굴을 살살 간지르는 게 있어요. 자주빛 할미꽃들이군요. 보리밭 이랑 사이, 종일 일하고 있을 허리 굽은 외할머니가 떠올랐어요. 

보물찾기 시간에는 하나도 찾지 못했어요. 보물을 용케 찾고 크레파스나 공책을 선물로 받는 친구들이 부러웠어요. 행운은 나와 멀리 있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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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나무를 심어요. C.함정희)

봄소풍을 갔어요. 김밥은 쌀 시간이 없어 미리 주문했어요. 시장에 들러 고로케 같은 기름진 빵들을 샀어요. 과일도 이것저것 골랐죠. 음료수를 사는 것도 잊지 않았어요. 4월인데 날이 꽤 더웠거든요. 한낮의 기온은 28도까지 올라간다는 예보가 있었어요. 일행들은 먼저 장소에 와 있었어요. 더러는 모자를 썼고, 더러는 손으로 해 가리개를 하고 있네요. 모자를 챙겨오길 잘했어요. 그늘이 별로 없는 곳이었거든요. 

보물찾기를 했어요. 나무 가지 사이에, 돌 틈에, 애기똥풀 아래 작은 보물들이 숨겨져 있었어요. 저도 비취 색 씨글라스 (바닷가에서 주운 깨진 유리 조각이 보석처럼 닳아서 반짝이는 것) 보물을 찾았어요. 선물이 여러 개가 있었는데, 향수에 젖어 뻥튀기 과자를 골랐어요. 어린 시절 당멀오름으로 갔던 소풍이 떠올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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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 봄소풍에서 보물찾기 C.윤상희)

우리가 소풍을 간 곳은 중랑천 강가였어요. 그 곳은 아무 곳도 아니었어요 사실. 작년 겨울까지만 해도, 그냥 황무지였죠. 작년 여름에 처음 가봤어요. 가시박 덩굴이 황무지를 기세좋게 덮고 있어 걸어 다니기도 힘들었어요. 몇 그루 남아 있는 버드나무들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죠. 준설토가 오랫동안 쌓여 있던 그곳에서 우리들이 쓰레기를 걷어내고 흙을 고르고 나무를 심기 시작했어요. 지난 겨울 내내 주변에 와서 머물렀던 원앙들에게 밥을 준 곳도 그곳이었어요. 

여름에 큰 비가 오고 홍수가 진다면 이 언덕에 동물들이 대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에서 출발했어요. 그런 곳을 야생동물 생추어리라고 부른대요. 우리들도 이 황무지를 생추어리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점차 생추어리를 만드는 데 동참하겠다는 기업과 사람들도 생겼어요. 

보물찾기를 마치고 김밥과 과일을 먹었어요. 날이 더워서 오래 두면 음식이 상할 것 같았어요. 제주도 당멀오름과 같은 그늘이 별로 없었거든요. 우리가 심은 나무들은 아직 어리니까요. 가시박에서 해방된 나무들이 몇 그루 있었지만 생추어리 언덕에 드문드문 흩어져 서 있을 뿐이죠. 진짜 생추어리가 되려면 숨을 곳이 많아야 해요. 그래야 수달이나 너구리, 삵이 와서 은신처를 삼죠. 새들도 먹고 쉴 곳이 되어야 해요. 새들이 좋아하는 나무들을 심기로 했어요. 찔레와 산수유, 느릅나무와 참나무를 심었어요. 강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해바라기 모종도 많이 심었어요. 한 뼘 정도 되는 해바라기 모종을 흙 속에 넣고 잘 덮은 다음 물을 듬뿍 줬어요. 물은 강에서 부지런히 길어 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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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 봄소풍에서 꽃을 심다. C.함정희)

해마다 봄소풍을 갈 거예요. 해마다 나무들은 훌쩍 자라겠죠. 서너 번의 봄이 지나면 그늘도 드리워줄 거예요. 언젠가 고목이 되면 까막딱따구리가 구멍을 파고 원앙이 집을 지을 거예요. 그 때쯤이면 소풍 가서 꽃과 나무를 심는 대신, 나무 그늘에 누워 시를 읽고 노래를 부를 거예요. 당신과 같이 봄소풍을 가고 싶어요. 

참, 중랑천 생추어리는 이름을 붙여봤어요. 봄소풍을 가서 보니 생동하는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거든요. ‘생동 생추어리’라고 하면 어떤가요? 나무가 자라고 열매가 맺으면 동물들이 쉬러 올까요? 생동 생추어리에 언젠가 새들의 시간과 수달의 시간이 오겠죠. 그 때는 우리 다른 곳으로 봄소풍을 또 떠나요. 꽃이 없다면 꽃을 심고, 나무 그늘이 없다면 나무를 심어요. 

찔레꽃도 피기 시작했어요. 
행복하시길 바라요.   
2024.05.03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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