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뭉쳐지고 풀어지고 서늘해지고 미지근해지고 타오르고 사그라들고 번지고 야위는, 길이 휘어지는 숲가에 긴 나무 의자가 놓여 있고
우리는 거기 앉았다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처럼
(조용미 시 ‘초록의 어두운 부분’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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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저녁에 기웃기웃 숲을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다가 시를 읽습니다. 시집에는 꽃과 나무들, 숲과 바람이 자주 등장하지요. 이 여름에 더없이 어울리는 시구나 싶어요.
저녁이면 혼자서 샛강숲을 걷곤 합니다. 이제 산책은 저에게 익숙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산책이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군요. 두 해 전 여름 호되게 병을 앓고 나서 더욱 그렇습니다. 나무들 아래 오솔길을 걷는 일은 건강을 지키기 위한 저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니까요.
며칠 전에 지인이 ‘초록의 어두운 부분’이라는 이 시집을 보내줬습니다. 시인은 우리 은덕언니처럼 숲해설사라도 되는 걸까요. 꽃 이름 나무 이름을 아주 잘 알고 있군요. ‘모슬포’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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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 멀구슬나무 우묵사스레피 까마귀쪽나무로 인해 너는 조금 살아났다 섬의 나무들은 왜 사철 푸르게 일렁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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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여러 시들에는 ‘우리’가 있고 ‘당신과 나’가 자주 등장하는군요. 어쩌면 시인은 자연에 빗대어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대체로 혼자서 산책을 합니다. 외롭지 않냐구요? 글쎄요. 외롭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시들을 읽고 나니, 혼자 걷는 한 중년여자의 모습이 조금은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초여름 숲에서 뱀딸기와
올 여름 샛강숲에는 모든 것들이 왕성합니다. 하얀 벌사상자꽃과 보라 석잠풀, 그리고 붉은 뱀딸기들이 숲의 구석구석을 수놓았습니다. 저는 느릿느릿 걷다가 자주 걸음을 멈추죠.
한 아이가 있습니다. 버짐이 군데군데 퍼진 얼굴, 뒤를 바싹 밀어 깎은 단발머리, 햇빛에 탄 팔을 흔들며 가느다란 다리로 걸어가는 아이. 아이는 오솔길에서 멈추어 섭니다. 초록으로 가득한 풀섶에는 사이사이 붉고 작은 보석들처럼 뱀딸기들이 달려 있습니다. 한 알을 따서 허기진 혀 안으로 뱀딸기를 밀어 넣습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오래 견딘 뱀딸기는 희미한 물기와 밋밋한 맛으로 입 안을 맴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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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자주 외로움을 탔습니다. 시골에서 일곱 남매의 중간에 태어난 아이는 부모에게 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랐죠. 어린 남동생이 가진 것을 자꾸 부러워하고 똑같이 달라고 해서 아버지에게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사방에 들어찬 여름의 소리가 적요를 깨우던 어느 여름날 오후에, 키 큰 관목 그늘에 앉았던 아이는 뱀딸기를 입에 물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걱정했어요. 세상은 여자아이에게 적대감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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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는 바람에 젖으며, 비에 흔들리며, 중력에 솟구쳐 오르며, 시선에 꿰뚫리며
녹색이 되어간다
웅크렸다 풀리며 초록의 세계로 진입하는 견고함이다
(조용미 시 ‘연두의 습관’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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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잘 자라 어른이 되어 샛강숲을 걷고 있습니다. 시골의 자연을 떠나 도시에서 살지만, 자신을 잘 키워준 자연에 대해, 어린시절의 뱀딸기와 팽나무에게 고마움을 잊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시에 나오는 연두처럼 ‘바람에 젖으며, 비에 흔들리며’ 녹색이 되었죠. 이제는 주위를 돌볼 줄도 알고 한결 너그러워졌어요.
40년 전 그 아이는 샛강숲에서 뱀딸기 덤불을 서성입니다. 어릴 때는 살아갈 날들이 막막하고 두려웠지만, 세상에 나와보니 다정한 사람들이 있고, 또 도심 속에서도 묵묵히 삶을 이기며 살아가는 자연 속 생명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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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는 한강유람단이 양평 남한강에서 카약을 타고 물소리길을 걸었습니다. 아침에는 더러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날이었는데, 유람단에는 어린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은 강과 숲에서 실컷 놀았어요.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저는 모릅니다. 지금보다도 더 자연이 없는 콘크리트 도시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이였을 때 강에서 놀았던 추억은 오래오래 이 아이들에게 힘을 주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 힘으로 언젠가 다가올지도 모를 인생의 파고들을 너끈히 넘을 수 있겠지요.
연두가 초록의 세계로 진입한 요즘, 날이 무덥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고 시원한 여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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