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밤이었습니다. 강물이 범람하고 장대비가 내리는 샛강숲에서 그 남자는 본 것은.
하늘이 뚫린 듯 폭우가 쏟아진 날이었습니다. 밖에 나서면 발목이 찰방찰방 물이 젖었습니다. 낮부터 팔당댐 방류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샛강 수위도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우리들은 공원 출입구 곳곳을 막고, 시설물들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묶어 두느라 분주했습니다. 팔당댐 방류량은 시시각각 알림이 오고, 그게 아니더라도 눈으로 숲에 물이 차오르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종일 지치게 일한 직원들을 퇴근시키고 저 혼자 남았습니다. 사실 명색이 여의샛강생태공원 운영 책임자인데 저는 현장에 나가지 않고 안애서만 이래라 저래라 요청을 했거든요. 그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해서 호기롭게 몇 시간 더 대기해 보겠노라 했지요.
우선 어둑해지기 전에 우산을 받치고 샛강문화다리에 올라갔습니다. 평소의 퇴근길 인파도 별로 보이지 않는 다리 위에서 비에 젖어가며 점점 더 잠겨가는 숲의 풍경을 담았습니다. 다리를 내려오는데 혼자 여유롭게 샛강을 산책중인(!!!) 여자를 발견하여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위험해요. 어서 나와요, 어서요!
센터로 돌아와 주출입구를 잠갔습니다. 찬 기운과 빗소리가 주위를 감쌌습니다. 라디오 볼륨을 높였습니다. 어두운 것, 차가운 것을 밀어내기라도 하듯이 감미로운 음악으로 허공을 채웠습니다. 그러나 제가 남은 건 한가로이 라디오를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으니 펼치려던 책을 덮고 발코니로 나갔습니다. 샛강에 위험은 없나,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나 보려고요.
아니나 다를까, 바로 아래 숲의 입구에서 한 남자가 우산을 받치고 쭈그려 앉아 있었습니다. 시간은 어느덧 저녁 여덟 시를 향해 가는데, 어둠은 곧 숲을 삼킬텐데, 대체 저 남자는 뭘 하는 것일까…..
이봐요, 아저씨, 아저씨! 거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지금 홍수이고 물이 넘치고 있어요. 어서 나와요!
저는 혼자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습니다. 한참 뒤에야 남자가 위를 올려다보고 저를 발견했어요.
개를 찾으러 왔어요. 뭐라고요? 우리 개를 이 근처에서 봤다는 이가 있어서… 아니 이 비 오는 날 개가 어디 있다고. 얼른 나가요. 제가 경찰서에도 말하고 왔는데, 개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저씨 되었고요. 근처에 개 없고요. 위험하니까 저기 앞으로 당장 나오세요!
남자는 무슨 끈인가를 주섬주섬 챙기더니 일어섰습니다. (아니, 자기 개를 찾는데 끈 매듭은 왜 묶어?) 잠시 뒤에 보니 남자는 더 이상 공원 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네 하고, 이제 책이나 좀 읽자 하고, 노래나 좀 듣자 하고, 몇몇 사람들 공원에서 내모는 것도 지치네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 순간 퍼뜩 저에게 이상한 상상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비 오는 어둑한 저녁, 중년의 남자, 양복을 입은, 우산을 받친, 그리고 끈으로 매듭을 짓고 개를 찾는다는 남자… 어, 이건 혹시 뭔가 극단적인?
경찰에 신고를 할까 말까, 산책로에 들어갔다 올까 말까. 동료에게도 전화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한참 묻고… 그러다 제가 소설책을 너무 많이 읽은 모양이라고 결론내리고 귀가했어요.
다음 날, 홍수에 떠밀려와 사람 키만큼 쌓인 나무조각 더미를 보고 흠칫 놀라긴 했습니다. 물이 다 빠지고 난 오후 늦게는 좀더 용기를 내어 구석구석 다녔습니다. 그 남자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과연 그 남자는 그 밤에 자기 개를 찾았을까요?
홍수에 많은 것들이 망가지고 부서졌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몇몇 분들이 와서 복구의 손길을 보태주셨습니다. 못 오신 분들은 미안하다면서 수박을 후원해주셨습니다. (보내주신 수박을 다 먹으려면 여름 내내 열심히 일해야겠습니다. ^^)
샛강 소식에 귀 기울여 주시고 함께 아껴주시는 선생님들께 언제나 고마운 마음입니다. 이제 장마가 끝나면 이번 주말부터는 여러 공연들이나 좋은 프로그램이 샛강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함께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폭염과 폭우가 지나가는 여름에 언제나 건강하시길 빌겠습니다.
홍수가 지나가고 회복하는 샛강에서
2022.07.05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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