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국
‘장마가 시작되었다. 산을 오르고 숲을 걸으며 만나는 풀과 나무들은 더욱 푸르고 선명하다. 비가 지나가고 난 뒤의 숲은 더욱 깨끗해서 눈이 다 맑아지는 느낌이다. 여름숲에서 산수국이 제철을 맞았다.
산수국의 꽃은 파랑도 보라도 아닌 청보라색이다. 잘 살펴보면 사실 우리가 꽃으로 알고 있는 꽃잎은 헛꽃이다. 가짜꽃인 것이다. 산수국이 가짜꽃을 피우는 것은 오직 수분 수정을 위한 것으로 생존전략이다. 이 화려한 헛꽃으로 벌과 나비가 날아오게 한다. 정작 꽃은 꽃처럼 보이지 않고 헛꽃에 둘러싸인 씨앗처럼 보이는 것이다. 벌 나비를 유인하여 수정이 이루어지면 이 헛꽃은 자기 역할이 끝났음을 알리듯 위화 꽃잎이 차례로 뒤집어진다. 신통방통한 전략으로 벌과 나비를 끌어들이고 번식하는 이 아이의 생존울 생각하며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세상에 귀하지 않고 예쁘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을까 싶다. 누구의 삶도 다 위대하다고, 수국꽃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벌들의 작은 날개짓이 말한다.’ (2022.06. 22 조은덕)
제주에서 숲길을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종종 제주에 내려가면 한라산생태숲이나 절물자연휴양림, 사려니숲길, 그리고 곶자왈공원 등 걷곤 하지요. 여름 숲에서는 지천으로 만날 수 있는 게 산수국입니다. 제주에 사는 은덕언니의 글처럼 ‘파랑도 보라도 아닌 청보라색’ 꽃을 피우는 산수국은 숲의 그늘 자리를 은근한 아름다움으로 채워줍니다.
은덕언니는 제주에서 영어통역관광가이드를 하는데 코로나 이후 외국 관광객이 없었지요. 그동안 언니는 숲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풀과 나무들과 눈맞춤하고 숲해설사가 되었습니다. 지난 번에 숲에 한창일 산수국 사진이라도 보고 싶다며 청했더니 사진과 함께 이 글을 보내주었습니다.
숲을 걸으며 산수국의 아름다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수국의 치열한 삶도 엿보게 됩니다. 사실 수국만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전략을 택하고 생명을 지켜가는 생태계의 무수한 존재들을 보면 존중과 찬탄의 마음이 절로 솟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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